괴로움을 환영하기,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기
업(業)은 행위에 대한 흔적이다. 유식론(唯識論)에 의하면 악업이나 선업을 지으면 악업 선업의 흔적이 업장이라는 업의 저장창고인 제8식 아뢰야식에 저장이 된다. 업의 저장창고에 그렇게 저장되어 있는 업은 당연히 매일 매일의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업의 저장창고인 제8식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는 업장이 색안경(色眼鏡)이 되어 현실을 되비추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아뢰야식에 악업이 많이 쌓인 사람은 악업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현실을 본다. 그 사람은 어떤 대상을 보더라도 비뚫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기 쉽다. 반대로 선업을 많이 지어 아뢰야식에 선업이 많이 쌓인 사람은 현실을 보면서 선업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현실을 보기에 무엇이든 긍정적이고 밝으며 선한 쪽으로 보게 될 것이다.
업의 측면에서 본다면 악업에 대한 과보는 빨리 받을수록 좋고, 선업에 대한 과보는 늦게 받을수록 좋다. 업에 대한 과보는 늦게 받을수록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아직 과보를 받지 않은 선업의 씨앗들은 내면에서 공명하며 우주의 선한 에너지들을 끌어당긴다.
그러니 선업의 과보는 천천히 받는 것이 좋다. 선의 과보를 받기 전까지 계속해서 우리의 삶을 선한 에너지로 물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악업에 대한 과보는 빨리 받는 것이 좋다. 아직 과보로 나타나지 않은 악업의 흔적이 내면을 물들여 우주로부터 악업과 공명하는 탁한 에너지들을 끌어당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괴로운 일일수록 빨리 받고 털고 가는 것이 좋은 이유다.
그러니 선업은 천천히 받고, 악업은 빨리 받으라. 좋은 일은 지금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에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고, 요행이 일어나길 바라며, 운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업보의 법칙을 아는 사람이라면 애써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에 괴롭고 힘든 일일수록 자신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며 고통으로부터 도망치고자 애를 쓴다. 그러나 괴로운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이야말로 환영할 일이다. 아주 다행스런 일이 아닌가. 재빨리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고괴로움을 감당하리라는 활짝 열린 마음으로 수용한다면, 그 고통은 생각했던 것 보다 빨리 지나갈 것이다. 1달 동안 계속되어야 할 악업의 업보일지라도 그 괴로움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1달도 넘게 지속될 수도 있지만, 그 괴로움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 주도적으로 감당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1주일 만에도 빨리 왔다가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업장을 받아들이는 이에게 주는 우주의 선물이다.
인과응보라는 우주의 법칙, 업보라는 우주의 법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곧 내가 이 우주법계와 하나가 되어 흐른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이기심과 아상에 빠져 내가 원하는 방식의 삶만을 고집할 때는 우주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사사로운 ‘나’를 내세우는 것이지만, 이처럼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우주가 보내주는 업보의 법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는 아상과 아만을 넘어 우주와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는 우주 그 자신에게 고통을 오래도록 부여해 주고 싶은 의도가 전혀 없다. 삶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내가 우주 전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곧 우주와 하나되는 것이다.그렇기에 가장 좋은 것은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야말로 우주법계에서 가장 적절할 때에 보내주는 업보임을 알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좋은 일, 나쁜 일이라는 것 자체가 ‘나’가 내리는 하나의 판단일 뿐 절대적인 선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는 아상이 사라지고 우주와 하나가 된 사람이라면 당연히 좋고 나쁜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거나, 나에게 싫어야 하는데 그 ‘나’라는 것이 사라진 사람에게 좋고 나쁜 판단 분별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글쓴이: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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