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별로 평온하지 않은가?
16. 서바이벌 마인드의 만성화
생존 고민으로 장시간 긴장감 유지
명상 통해 생각을 쉬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느끼고 수용
마음의 여유 만들어갈 때 평온해진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간단하게 정의해 달라고 외국인이 물어본다면 뭐라 대답하겠는가? 혹자는 “정이 많은 국민” 아니면 “변화가 빠른 다이나믹한 사람들” 아니면 “민주화와 경제 선진화를 이룬 드문 민족”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얼마전에 읽은 ‘한국인의 탄생’에서는 매우 흥미롭게 우리나라 사람들을 정의했다. 바로 “극한 상황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라 했다.
여기서 극한 상황이라고 하면 척박한 자연 환경과 더불어 외세의 잦은 침입과 전쟁이 가장 큰 원인이 되겠다. 쌀농사의 경우,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일모작만 허락하는 기후에다 토지의 70%가 산이어서 농지가 적았다. 그래서 양식이 떨어지기 쉬운 혹독한 겨울과 가뭄, 태풍 등을 이겨내야 했고, 쌀농사로는 부족해 산으로 들로 나가서 나물이라도 캐고, 물고기라도 잡아야 겨우 먹고 살았던 것이다. 더불어 계속되는 침범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에 흡수되지 않고 살아 남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계속해서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전쟁이나 재난 상태에는 엄청나게 단결해서 문제를 다 같이 해결하지만, 평소에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남과 죽어라 경쟁하면서 시기 질투하는 것이 몸에 밴 것이 또 한국인이라 했다. 왜냐면 경제적으로는 척박하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땅에 살면서 경쟁에서 마저 뒤쳐진다는 것은 나와 우리 가족의 생존이 위협받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경쟁을 해도 경쟁 상대가 죽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이 또다른 우리나라 사람의 특징이라고 한다. 왜냐면 사촌이 땅을 사 배가 아파도 그가 죽어 버리면 같이 품앗이를 해 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것도 또한 생존에 위협이었다.
결국 지금처럼 정치 경제의 발전도 이루고, 전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문화 콘텐츠 강국이 된 것도 “내가, 나아가 우리가,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어렵게 만들어 낸 자랑스런 결과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서바이벌 마인드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우리 몸을 장시간 긴장 상태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어렵게 이루어 낸 눈부신 성장의 결과물에 비해 우리는 그리 행복하지도, 그리 마음이 평온하지도 않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바로 서바이벌 마인드의 만성화이다.
우리나라에서 회사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듯 짧은 기일 내에 갑자기 무언가를 만들어 내라는 요구가 위 상사로부터 뚝뚝 떨어진다. 이 긴급한 요구를 어떻게 하든 해내지 않으면 내가 경쟁에서 뒤처질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몸과 마음에 엄청난 무리가 가해진다. 이런 힘든 경험이 계속 누적이 되어 일상화가 되면 과도한 스트레스가 뒤따르고 이런 스트레스 상태는 평온함이 주는 세라토닌 계열의 행복 호르몬보다는 강하고 짜릿한 음식이나 음주가무에서 오는 도파민을 더 원하게 만든다.
더불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타인과의 유대보다는 단절감이 심화되면서 마음속에는 각자도생 해야 된다는 절박함과 긴장감이 떠나지 않는다. 주변엔 날이 서 있는 사람들이 많게 느껴지고, 타인을 신뢰와 의지의 대상이 아니고 끌어내려야 할 잠재적 경쟁자로 자꾸 느끼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되니 믿을 수 있는 것은 돈과 권력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그래도 좀 더 행복하고 평온할 수 있을까? 우선 눈을 감고 내면으로 마음을 자주 향해 보자.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서바이벌 마인드는 관심을 내면이 아니고 외부로 항상 향하게 한다. 왜냐면 누가 자기 생존을 위협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온함과 행복감은 마음의 경계심이 줄어들고, 내면에서 감사함과 즐거움,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을 때 온다.
항상 옳고 그른 것을 따지면서 생각 속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고, 명상을 통해 생각을 멈추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온전하게 느끼고 수용해 보자. 항상 급하게 먹고 뒤에서 누가 쫓아오듯 정신없이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음미하고 조금만 일찍 나와 걷는 것 자체를 즐겨 보자. 마음의 여유가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 순간을 먼저 만들어 갈 때 평온은 온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42호 / 2024년 8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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