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범어의 발성 원리 · 문자 체계, 한글 창제에 큰 영향
한글날 특집 - 한글 창제에 보이는 범어의 영향
‘자음·모음 결합으로 만들어지는 표음문자’ 공통점
후음 형태 다를 뿐 한글과 범어의 발성 형태 같아
신미에 ‘혜각존자’ 칭호…창제에 중요한 역할 짐작
10월 9일은 제578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한글날이 돌아오면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세종대왕(1397~1450)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이번 한글날에는 세종대왕의 위대한 발명품인 한글에 대해 그간의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훈민정음, 즉 한글은 1443년(세종 25년) 12월에 28자가 만들어진 이후 3년이 지난 1446년(세종 28년) 9월, 한글 창제의 자세한 설명이 담긴 ‘훈민정음해례본’이 출간되면서 그 전모가 드러났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그 의사를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게 한 한글은 실로 우리나라 전 역사상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한글 창제와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나 생각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되고 화제가 된다.
2019년 개봉된 영화 ‘나랏말싸미’도 한글 창제와 관련해 많은 화제를 낳았다. 특히 ‘나랏말싸미’는 한글 창제의 주역으로 세종대왕보다는 신미 대사(1403~1480)를 더욱 부각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필자는 한글 창제의 핵심인 문자의 제작과 운용 방식은 당연히 세종대왕의 독창성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한글의 발성 원리와 문자 체계 등은 범어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
‘훈민정음해례본’에는 한글의 자모 17자와 모음 11자의 28자가 만들어지고 서로 결합하는 원리가 상세히 나타난다. 이 문자 가운데 자음의 문자는 그 발성기관의 위치에 따라 아음(어금닛소리), 설음(혓소리), 순음(입술소리), 치음(잇소리), 후음(목구멍소리), 반설음, 반치음으로, 그리고 목에서 나오는 소리의 강세에 따라 전청(무성무기음), 차청(무성유기음), 전탁(유성유기음), 불청불탁(비음, 반모음 등의 공명음)으로 구분한다. [표1] 이러한 문자의 구분은 기본 문자(ㄱ, ㄴ, ㅁ, ㅅ, ㅇ)의 형태에서 획수가 더해진 가획의 형태(예: ㄴ-ㄷ-ㅌ)로 만들어져 한글 문자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모음은 아, 야, 어, 여 등 11개의 모음이 만들어지고, 이 모음과 앞서의 자음이 합쳐져 글자의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한글의 문자 형태는 기본적으로 범어와 상당히 유사하다.
범어는 인도의 언어인 산스크리트를 지칭하며, 그 문법적인 내용은 기원전에 이미 정리되어 인도는 물론 주변 국가의 언어와 문자 사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도 불교가 전래한 이래, 범어의 문자인 범자가 불교 의례나 의식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한글이 창제된 이후 고려 시대부터 다양하게 쓰이던 범자의 진언다라니를 한글로 번역해 집성한 ‘진언집’이 남아 있어 우리나라에서 범자가 실생활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진언집’의 대다수가 한글 창제 이후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글과의 관계를 언급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진언집’에 보이는 범어의 형태는 8세기 중국 당나라의 지광(760~830?)이 만들고, 유학승인 공해(774~835)가 일본에 전한 ‘실담자기’와 비교하면 그 문법적인 내용은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글 창제 이전에 동아시아에서 범어 내지 범자가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한글과 범어의 관계를 논하는 것이 무리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한글 창제에 범어의 지식이 도움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범어는 표음문자, 즉 소리글자로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 글자가 만들어진다. ‘실담자기’에 따르면 모음 16자(아, 아-, 이, 이-, 우, 우-, 에, 아이, 오, 아우, 앙, 아하, 리, 리-, 리, 리-)와 자음 33자(까, 카, 가, 그하, 앙 등)로, 이들 문자가 합쳐져서 까, 까-, 끼, 끼-, 꾸, 꾸- 등의 문자가 만들어지고 발음된다. 중국어와 달리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문자와 발음이 이루어지는 것은 한글 창제에 중요한 자극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두 번째는 범어 자음의 분류 방식과 발음이다. ‘실담자기’에 나타나는 기본 모음 ‘아’를 첨가한 자음의 형태를 살펴보면 [표3]과 같다. 이 ‘실담자기’의 자음 분류 형태는 오류성의 아성, 치성, 설성, 후성, 순성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것은 조선 시대의 ‘진언집’과도 같은 형태이다. 이 자음 분류의 형태로 [표1]의 한글 자모 23자에 모음 ‘아’를 더해 재정리해 본 것이 [표2]이다.
따라서 [표2]와 [표3]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한글 후음의 형태와 범어 후음이 차이 나는 것 외엔 다른 음들은 그 발성 형태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발음의 강세와 관련된 전청, 차청 등에서도 한글의 발음이 더욱 간략하고 효율적으로 표기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효율성은 당연히 세종대왕의 독창성과 창의성에 의한 것이지만, 한글 창제가 범어의 언어적인 토대에 근거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조선 시대 ‘진언집’에 나타나는 다양한 범자의 진언다라니는 고려나 조선 시대에 불교 의례·의식에 사용된 것이며, 그러한 범자의 전승은 그것을 필사하고 그 뜻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범어에 조예가 있던 승려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특히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 만난 것이 확실한 신미대사는 세종대왕에게 범어나 범자의 지식을 전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에 극도로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신미대사는 범어와 범자에 대한 지식을 알려줌으로써 세종대왕의 큰 고민을 덜어 주었으리라 추측된다.
그러한 한글 창제의 실질적인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세종대왕은 아들 문종에게 유훈으로써 당시 유학을 숭상하던 세상에서는 가히 상상할 수 없는 높은 법호인 ‘혜각존자’라는 칭호를 신미대사에게 내린 것으로 생각한다.
제578돌 한글날을 맞이하며 그간 한글에 대해 품었던 생각을 펼쳐보았다. 한국 불교가 오랫동안 전승한 범어의 역사적 전통이 한글 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든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 속에서 모든 백성을 이롭게 하고자 한글 창제에 고심하는 세종대왕의 모습과 범어의 지식을 전하는 신미대사의 모습이 더욱 영롱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이태승 지성불교연구원장
[1747호 / 2024년 10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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