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4) - 집착할 만한 가치가 없다면???
인간이 괴로운 이유는 나라는 오온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여덟 가지의 괴로움이 결국에는 ‘나’라는 아집(我執), 오온의 집착에서 생겨난다.
그렇다면 일체개고라는 괴로움의 현실을 넘어 고가 타파된 영원한 즐거움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바로 집착을 놓아버리면 된다.
그래서 모든 스승, 역대의 조사 스님들께서는 한결같이 ‘놓아버려라’, ‘비우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무집착’, ‘방하착(放下着)’을 역설했다. 붙잡아서 괴롭다면 놓아버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문제는 끝났는가. 모든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 분명한 가르침이 주어졌으니 이제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집착을 놓아버려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집착을 놓아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아주 기본적으로, 집착을 놓아버리려면 먼저 내가 집착하고 있던 바로 그 집착의 대상이 ‘그다지 집착할 만 한 것이 아닌 것’이 되면 가능해 질 것이다. 집착할 아무 이유도, 매력도, 가치도 없는 것에 어느 바보가 집착을 한단 말인가.
그러면 어디 한 번 생각해 보자. 내가 집착하는 것들이 정말로 과연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일까? 내가 집착하고 있는 대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사람에 대한 집착, 사랑에 대한 집착, 물질에 대한 집착, 생각에 대한 집착, 종교에 대한 집착, 나에 대한 집착, 생명에 대한 집착, 돈과 명예, 권력, 지위 등에 대한 집착 등 아주 다양하다. 내 생각에 그런 것들이 ‘집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것에 그렇게 집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자. 그것은 바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가장 큰 첫 번째 특징은 제행무상이다. 모든 집착의 대상은 언젠가는 소멸되어 없어진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바로 아주 중요한 삶의 본질이 드러난다. 우리가 집착하는 모든 것은 변하며[제행무상], 그렇기에 우리가 무언가를 집착한다는 것은 곧 괴로움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일체개고]이다.
두 번째 특성은 제법무아로, 집착하고 있던 대상들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고정된 것이어야 하고, 실체적인 것이어야 하며, 그로인해 우리에게 실질적인 어떤 것을 안겨주어야 한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대상이라면 그야말로 아지랑이 같고, 환영 같으며, 신기루 같아서 겉만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인데 거기에 집착할 이유가 있겠는가? 없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지키려고 애써왔고, 가지려고 애써왔으며, 목숨 걸고 지켜왔던 그 모든 집착의 대상들은 이러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라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삼법인의 가르침에서 보면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인 모든 것들은 일체개고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상과 무아인 대상에 대해 집착을 함으로써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삼법인이라는 가르침의 핵심이다.
내가 그동안 집착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삶 속에서 살펴보라. 그리고 낱낱이 그것의 무상성과 무아성을 사유해 보라. 무상과 무아를 사유하게 되면 저절로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곧 괴로움이라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것이 사실은 집착할 만한 것이 아니었음이 증명되면 저절로 그동안 붙잡고 있었던 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게 된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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