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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 무아 = 자비 = 중도

장백산-1 2024. 12. 15. 17:35

연기 = 무아 = 자비 = 중도

 

불교의 교 리와 사상은 사실 하나의 진리에 대한 다양한 설명으로 방편이다. 모든 가르침은 곧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며, 강을 건너는 뗏목과도 같다. 연기(緣起)가 곧 무아(無我)이며, 무아가 곧 자비(自悲)이고 중도(中道)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연기의 법칙은 큰 것이 있으므로 작은 것이 있고, 옳은 것이 있으므로 틀린 것이 있고, 중생이 있으므로 부처가 있고,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분별하는 모든 생각들을 거두어, 사실은 연기 무아 자비 중도는 둘이 아니게 연결되어 있음을 설하고 있다. 이를 초기불교에서는 중도(中道), 대승불교에서는 불이중도(不二中道), 선불교에서는 일심(一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볼펜은 긴 것일까 짧은 것일까? 있는 그대로 보면 긴 것도 짧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볼펜 옆에 긴 막대기라는 인연이 오면 작고, 반대로 성냥개비라는 인연이 오면 길다. 즉 연기적으로만 길거나 짧을 수 있을 뿐, 그것 자체에 고정된 실체성이 없다. 연기이며 무아(無我)다. 여기에서 무아라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라고 할 만한 고정된 실체성을 지닌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볼펜을 가지고 ‘길다’고 해도 극단이고, ‘짧다’고 해도 극단이다.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인 견해야말로 지혜로운 견해이며, 연기적인 관점이다.

 

이처럼 연기법에서 보면, 이 세상 일체 모든 것들은 전부 비실체성이며, 무아적 존재다. 그렇기에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양 극단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기에 중도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 어때?’ 하고 물으면, ‘키 크고, 성격 좋고, 능력도 있고, 외모도 잘생겼고, 돈도 많아’라는 식으로 답한다. 그러나 키가 큰지 작은지 정말 알 수 있을까? 큰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작고, 작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클 뿐이다. 성격도 인연 따라 어떤 경우에는 좋고, 다른 경우에는 나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1억도 많은 돈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100억도 부족한 금액일 수도 있다. 상대적이고, 연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기적으로, 중도적으로 상대방을 볼 때에는 그렇게 ‘결정론적으로’ 크다거나 작다고, 성격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능력이 있다거나 없다고, 돈이 많다거나 작다고 말할 수가 없다.

 

물론 필요에 따라 크다고도 작다고도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차별 분별심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내는’ 수행자의 마음자세다. 『금강경』에서는 이를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즉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고 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되 함이 없이 하라’는 것으로, 이를 무위법(無爲法)이라고도 한다. 즉 마음을 내지 않을 수는 없다. 좋다고도 말하고, 나쁘다고도 말하지만, 내면의 지혜에서는 그런 판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을 실천하는 자세이고, 무아와 중도의 실천이다.

 

이렇게 연기, 중도, 자비, 무아를 실천하면, 그를 있는 그대로 볼 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게 된다. 비교할지라도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기, 중도, 자비, 무아로써 보는 것은 곧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곧 위빠사나요, 사념처(四念處) 수행이고, 정견(正見)이며 정념(正念)이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대해주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 즉 자비심이다. 판단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판단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자비다.

 

이것이 곧 둘이 아닌 하나, 즉 중도적으로 보는 것이며, 그렇듯 둘로 나누지 않고 바라볼 때, 결국 둘이 아닌 하나로 보게 된다. 동체대비심이라고 할 때의 ‘동체(同體)’가 바로 ‘한 몸’으로 본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상을 연기적으로 보면, 실체성을 부여하지 않게 되고,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게 된다.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가 실천되고, 참된 자비가 실천된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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