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진정한 나’를 노래한 시낭송회, 눈 덮인 겨울날 종교의 벽을 허물다

장백산-1 2024. 12. 23. 13:25

‘진정한 나’를 노래한 시낭송회, 눈 덮인 겨울날 종교의 벽을 허물다

  •  박건태 기자
  •  승인 2024.12.22 23:15
  •  호수 1759

 

제8회 만해‧무산 시낭송 음악회, 서울 무산선원서
스님들과 이웃 종교인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위로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만해 한용운 스님 작 ‘사랑하는 까닭’ 중)

 

 

눈 덮인 성북구 무산선원에서는 한겨울 추위가 무색할 만큼 따뜻한 온기가 아지랑이와 같이 퍼져 나왔다. 스님과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문학인들은 선원에 삼삼오오 모여 밝고 담담하게 시를 읽어 나갔다. 사람이기에 누구나 그리워하는 ‘진정한 나’를 노래한 이 자리에선 종교가 달라도 모두의 마음엔 하나의 울림을 주었다.

 

 

 

만해 스님과 무산 스님의 시 정신을 기리는 ‘제8회 만해‧무산 선양 시낭송 음악회’가 12월 21일 서울 무산선원(주지 선일 스님)에서 재단법인 설악‧만해사상실천선양회(이사장 권영민)의 주최로 열렸다.

 

‘통합의 마음으로 동행하는 종교의 만남’을 주제로 한 시낭송회는 무산선원 주지 선일, 봉정암 주지 본원 스님과 가톨릭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부국장 이영제 신부, 예수의 소화수녀회 수녀들, 고진하 목사 등 이웃 종교인을 비롯해 김영배 성북갑 국회의원,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신달자‧이근배‧오세용 시인 등 한국문학 대표 시인들과 가수 최성수 씨가 함께했다.

 

 

신달자 시인.
 
 

‘구관조 씻기기’, ‘종로사가’의 저자 황인찬 시인의 사회로 펼쳐진 시낭송회는 대한민국 대표 여류작가 신달자 시인의 개회사로 막이 올랐다. “겨울이야말로 우리에게 따뜻함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계절이다. 척박한 땅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게 해 우리 삶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해주는 게 겨울의 의미”라며 고 이어령 선생의 가르침을 회상한 신달사 시인은 “부처님과 예수님은 불멸의 언어이고 우리는 그 불멸을 향해 시를 써가는 시인이다. 마음에 대해 만해 스님은 ‘유심’ 1호지에서 ‘이것은 절대이다. 그리고 자유이며 만능이다’고 하셨다”며 시낭송회가 12월의 가장 행복한 날이 되길 축하했다.

 

김보람 시조시인은 무산 스님의 ‘비슬산 가는 길’을 낭독했다.
이영제 신부는 구상의 ‘한 알의 사과 속에는’을 낭독했다.
 
 

시낭송회 1부의 시작으로 올해의 유심상과 무산문화대상 수상자들은 차분하지만 기쁨에 찬 목소리로 시를 낭송했다. 신철규 시인은 윤동주의 ‘십자가’, 김보람 시조시인은 무산 스님의 ‘비슬산 가는 길’, 조연정 평론가는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문성월 수녀는 김현승의 ‘절대고독’, 장영자 수녀는 전봉건의 ‘사랑’, 고진하 목사는 박목월의 ‘크고 부드러운 손’, 이영제 신부는 구상의 ‘한 알의 사과 속에는’을 낭독했다.

 

이육사의 ‘광야’를 낭송하는 무산선원 주지 선일 스님.
 
 

무산선원 주지 선일 스님은 이육사의 ‘광야’ 낭송에 앞서 ‘안수정등도’를 설명했다. “안수정등도의 광야는 불확실한 우리의 삶을, 코끼리는 무상함을, 독사는 죽음을 의미한다”며 “이렇듯 불확실한 우리네 삶이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가 잘 어우러져 오늘의 이 자리가 빛을 발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며 낭송을 마치자 참석 대중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어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성북동 답사기’ 특별강연에선 성북동과 관련된 유명인의 일화를 흥미롭게 설명해 나갔다. 특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儉而不陋 華而不侈]’라는 ‘삼국사기’의 말을 인용하며 유홍준 교수는 성북구를 한 문장으로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이어진 2부에선 이근배‧오세용 시인 등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18명의 시인들이 만해 스님의 ‘예술가’, 무산 스님의 ‘아득한 성자’ 등의 시를 읽었고 가수 최성수 씨의 축하무대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만해‧무산 선양 시낭송 및 음악회’는 만해 한용운 스님과 설악무산 스님의 시(詩)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작은 모임으로 두 스님의 자주독립 사상과 화합상생 정신을 다시 일깨우며 서로가 마음의 위로를 찾고자 만들어졌다. 매년 겨울 무산선원에서 열린다.

 

 

박건태 기자 sky@beopbo.com

[1759호 / 202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