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원수에 대한 복수(윤회)

장백산-1 2025. 3. 24. 22:14

원수에 대한 복수(윤회)

 

누가 자꾸 나를 화나게 한다. 참고 참다가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 같다. 이때 사람들 대부분은 내 손으로 반드시 복수를 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꼭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아들이 무술을 연마하여 우여곡절 끝에 원수를 죽이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런 결과를 사람들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사람들 대부분이 복수를 생각하는 통쾌하고 즐거운 결말이다. 평생 원수를 갚기 위해 ‘정의로운 증오심’을 불태우며 불같은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한다. 이처럼 원수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는 것이야말로 정의가 승리하는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평생 원한과 증오심을 품으며 산다는 것은 상대방이 아닌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일 뿐이다. 아버지 원수를 갚겠다고 20년, 30년 동안이나 마음속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원한으로 사무쳐있겠는가. 그 마음은 자신의 온몸의 세포를 파괴시키며 결국 자신을 죽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에서도 문동은은 학창 시절 학폭에 대한 증오심을 되갚아 주고자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었다. 문동은이란 이름보다 ‘연진아~’라는 대사가 여운이 남는 것을 보면, 우리는 성장한 연진이가 두려워 떠는 모습에 복수의 통쾌함을 맛본다. 동은이의 인생 원동력은 복수심이었지만, 만약 삶의 동력이 복수와 증오가 아닌 ‘사랑’과 ‘나눔’ 같은 아름다운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사실 우리는 원수를 갚을 필요가 없다. 세상의 이치로 봤을 때 원수는 무조건 갚아야 할 것 같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복수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무려 기원전 1700년 전에도 함무라비 법전에서 ‘눈을 멀게 하면 제 눈도 멀게 하라’, ‘이를 부러뜨리면 제 이를 부러뜨리라’는 말이 나오지만, 그 오래된 고전은 그 시대에 어쩔 수 없이 필요했던 것일 뿐이다.

 

불교에서는 대신 ‘놓아버려라, 용서하라’고 말한다. 내가 굳이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 우주법계가 복수를 더 확실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주법계는 업의 불균형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그는 평생을 갈고 닦은 실력으로 아버지의 원수를 결국 찾아 죽였다. 그런데 마침 원수를 죽이는 장면을 원수의 아들이 보게 되었다. 그러면 그 아들은 또다시 평생 무술 실력을 갈고 닦아서 그를 또 찾아올 것이다. 이렇게 서로 죽고 죽이는 무한한 반복 이것이 바로 윤회다. 원한을 품다가 복수를 하면 상대는 또 다른 원한을 품게 된다. 그러면 업이 쌓여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다름쥐 쳇바퀴 돌듯 끊임없이 돌고 도는 상황에 놓이게 될 뿐이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