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 소유에서 자유로
- 고미숙
- 승인 2025.04.04 15:58
- 호수 1772
폭우 앞둔 강변서 펼친 붓다와 목동의 ‘게송 배틀’
‘물질·소유’ 자랑에 ‘마음·자유’ 응수하며 자성 이끌어
소유 넘치는 오늘날도 마음은 여전히 ‘불타는 황무지’
우리 삶 방향도 소유에서 자유로 전면적으로 바꿔야

‘숫타니파타’는 청년붓다가 전하는 ‘길 위의 노래’다. 붓다는 북인도를 유행하면서 수많은 이들을 만난다. 바라문과 사문에서 농부와 장자, 천신과 야차같은 비인간에 이르기까지. 붓다는 한결같은 평등심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때론 붓다가 그들의 토론 현장을 방문하기도 하고, 때론 편력 수행자들이 아주 먼 길을 돌아 붓다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숫타니파타’는 ‘로고스의 대향연’이다. ‘진리와 대화’가 하나임을 보여주는!
가장 흥미로운 장면 가운데 하나가 ‘소치는 다니야의 경’이다. 붓다가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왓티를 유행할 즈음, 목동 다니야는 마히 강변 언덕에 살고 있었다. 3만 마리의 황소, 2만7천 마리의 소를 가진 대부호였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다 자란 송아지도 있고, 젖먹이 송아지도 있고, 새끼 밴 어미소도 있고, 성년이 된 암소, 또 암소의 짝인 황소도 있다’고. 붓다는? 암소는 물론이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흘러다닐 뿐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거기로! 정주민 다니야 vs 노마드 붓다, 둘의 게송 배틀이 시작되었다.
[소치는 다니야] “나는 이미 밥도 지었고, 우유도 짜 놓았고, 마히 강변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내 움막은 지붕이 덮이고 불이 켜져 있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
[세존] “분노하지 않아 마음의 황무지가 사라졌고 마히 강변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내 움막은 열리고 나의 불은 꺼져 버렸으니 하늘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뿌리소서.”(전재성 역주, ‘숫타니파타’)
인도의 우기는 5월에서 9월까지로 이때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몬순이다. 농부나 목동에겐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관건일 터, 다니야는 모든 대책이 마련되었다. 밥, 우유, 움막의 지붕과 불 등. 다니야는 비가 쏟아지기 직전, 곧 천지를 뒤흔드는 뇌성벽력이 몰아칠 때 이 게송을 읊었다. 그에 대한 붓다의 응답은 좀 엉뚱하다. ‘마음의 황무지’가 사라졌고 ‘나의 움막은 열리고’ ‘나의 불’은 꺼졌다는 것. 다니야는 ‘물질과 소유’를 말하는데, 붓다는 ‘마음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니야는 순간 당황했으리라. 아니, 그게 비를 막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나의 마음은? 내면의 불은?
하지만 그의 노래는 계속된다. 이젠 물질적 풍요에서 가족관계로 옮아갔다. “내 아내는 온순하고 탐욕스럽지 않”고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고 건강한 나의 아이들은” “그 어떤 악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노라고. 한마디로 사랑스런 처자식과 함께 ‘스윗홈’을 누리고 있다는 것. 붓다는 알고 있다. 그런 스윗홈이 결코 ‘스윗하지’ 않다는 것을. 또 그것은 무상한 시간 앞에서 여지없이 부서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하지만 붓다는 논쟁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 그리고 해방에 대하여. “내 마음은 내게 온순하여 해탈되었고” “내가 얻은 것으로 온 누리를 유행하므로, 대가를 바랄 이유가 없”다고. 다니야는 더한층 당혹스러웠으리라. ‘온순한 아내’보다 ‘내 마음이 온순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또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라니,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등등.
이 게송배틀은 언제 읽어도 흥미롭다. 목동 다니야가 처한 시대 상황은 우리와는 아주 멀리 동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삶의 태도와 지향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고액의 연봉, 아파트와 자동차, 연금과 보험, 우아한 아내(혹은 멋진 남편), 그리고 공부 잘하고 잘생긴 아들딸, 거의 대부분 여기에 붙들려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런 식의 행복이 삶의 고매한 이상으로 간주되었던 적이 있었다. 바로 내가 청년기를 보낸 20세기 중후반이 그랬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우리는 마침내 거기에 도달했다. 더 이상 굶주리지 않고, 누구든 공교육의 기회를 누리고, 세계 최고의 디지털 문명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야 마땅하다. 과연 그런가? 아니다! 다시 또 더 큰 아파트, 더 비싼 자동차, 더 많은 소유를 향해 달려간다. 더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그토록 치열한 분투와 열정으로 부를 이룬 다음엔 어떻게 사는가? 감각적 쾌락을 극대화하면서 산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쇼핑 아니면 투기가 대부분이다. 우리 시대 상류층 인사들의 삶을 보라! 거기 고매한 인격, 이타적 소명이 어디 있는가. 과시욕 아니면 인정욕망이 고작이다. 붓다의 말처럼 마음은 ‘황무지’가 되었고, 내면의 ‘불꽃’은 더한층 타오를 뿐이다.
언뜻 보기에 다니야와 붓다의 노래는 평행선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니야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 또 붓다의 노래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 과정에서 그의 마음은 조금씩 움직였을 것이다. 물질에서 마음으로!
2024.12·3 비상계엄 이후 우리는 몬순 못지 않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을 통과하고 있다. 단언컨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삶의 방향을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소유에서 자유로!
고미숙 고전평론가 bearheart0@naver.com
[1772호 / 2025년 4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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