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티끌이 우주이고 우주가 곧 한 티끌이다
시간과 공간은 감정과 생각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어
업의 과보 벗어나, 깨달은 존재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다
텅빈 마음 갖게 되면 티끌에도 들어가고 우주를 쥘 수도 있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한 티끌 속에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담겨 있고, 모든 시간과 공간 역시 한 티끌에 불과하다.”
한 생각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과거가 있었고, 또 한 생각을 일으키게 되면 수많은 미래가 생긴다. 수많은 과거의 생각들이 현재 지금의 한 생각을 낳고, 현재 지금의 한 생각은 수많은 미래를 만든다.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극미의 한 티끌 속에 모든 시간과 공간이 담겨있고, 그 한 티끌 속의 일체 역시 모두 담길 수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그렇다고 해도 지금 당장 내 걱정이나 고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바라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며, 부처님처럼 행동하는 것은 단순히 신앙의 차원만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고민이나 걱정을 덜고,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법성게(法性偈)의 내용을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성게를 이해해서 원하는 것을 성취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고 참선하고 보시하고 용맹정진하는 수행을 통해 마음의 업(業)을 씻고 깨달음, 즉 해탈에 이르면 자연스럽게 법성게의 의미가 환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법성게의 참 의미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저절로 확연하게 알게 된다.
그래서 깨달음 이후의 마음 상태를 미리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이번 법성게 9구와 10구는 지난 7구와 8구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티끌을 무한히 늘리면 우주보다 더 크게 확장할 수 있다. 동서남북과 상하를 합한 시방세계 전체가 한 티끌에 담긴다는 말이다. 반대로 우주 전체를 무한히 줄이면 티끌보다 더 작아질 수도 있다.
우리 몸의 세포 하나를 수억 배로 확대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보다 더 크게 보일 수 있음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이를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저 너머에서 우주를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티끌보다도 더 작게 보이게 된다. 마치 달에 서서 지구를 보면 지구가 아주 작은 공처럼 보이는 이치와도 같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살이에게 하루는 인간의 일생보다 더 길 수 있고, 거북이의 수백 년은 하루살이의 하루보다 더 짧게 느껴질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은 인간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며, 감정과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절대적이라 믿는 고정관념의 업을 지우거나 바꿔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업은 탐진치(貪嗔痴) 삼독심(三毒心)과 정비례하기에, 삼독심을 소멸하면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경계 또한 허물어진다. 역대 부처님과 보살, 깨달은 조사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적(異蹟)을 보였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깨달은 마음에서 비롯된 경계는 중생의 의식으로는 상상하거나 헤아리기 어렵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은 망상이라는 삼독심으로 가득 찬 중생에게는 욕망의 업이 작용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자연히 필요하다. 그래서 나고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윤회가 이어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업의 산물로서 생긴 임시적 시간과 공간일 뿐이다.
업의 과보에서 벗어난 깨달은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시공(時空)의 장벽이 사라진 무애자재(無礙自在)의 상태,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때는 티끌과 우주의 경계가 없고, 하나 속에 모두가 있고, 모두가 곧 하나가 된다. 한 티끌이 곧 우주이며, 우주가 곧 한 티끌이다.
굳이 말과 설명이 필요 없지만, 깨달음의 경계를 이해하기 쉽도록 법성게라는 노래로 그 뜻을 전한 것이다. 깨달은 자의 본래 성품 또한 이와 같다. 욕심 없는 텅 빈 마음에 시간과 공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 티끌 속에 들어갈 수도 있고, 우주 전체를 손안에 움켜쥘 수도 있다.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손오공의 처지와 같은 이치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잘살고 못살고를 따지며 아등바등 애쓴들 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극락과 지옥, 행복과 불행, 생사와 생멸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을 깨치지 못하면 그 나물에 그 밥 신세를 면치 못할 뿐이다. 하루빨리 마음을 비우고 탐진치를 소멸하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요령과 잔꾀를 부리지 말고,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만이 나를 구제할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진우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sansng@hanmail.net
[1768호 / 2025년 3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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