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中道) 10

유무에 집착함이 없이 지금 여기에 어우러진 모습 그대로 보는 것이 중도(中道)

인제 백담사 무금선원 유나 영진 스님 유무에 집착함이 없이 지금 여기에 어우러진 모습 그대로 보는 것이 중도(中道) 화엄경은 이 세상 모든 법을 통섭해서 한마음 밝힌 가르침 법문 듣고 기도 ‧참선하며 지혜의 눈을 떠 복 주는 주체 돼야 있는 그대로 간단 명료한 것이 선이며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 영진 스님은 “부처님 정각의 경계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 화엄경”이라며 본뜻을 이어받아 수행하고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저는 선원에서 화두를 가지고 정진하는 사람의 입장이며 교학자는 아닙니다. 그래서 ‘화엄경’을 주제로 법문한다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오늘은 ‘화엄경’의 전체 모습을 말씀드리고, ‘화엄경’이 어떤 사상(思想)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화엄경’의 본뜻을 이어받아서 수행하고 정진하고 기..

상(相)이 없는 중도(中道)

상(相)이 없는 중도(中道) ‘~주의’라고 불리는 모든 것은 극단으로 향한다 중도를 걷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스러운 존재 양상 사람들이 상을 만들고 집착해 중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상에 집착하고 극단으로 향하는 것은 지적 게으름이 원인 한때 공산주의를 동경했던 버트런드 러셀이 20세기 초반 신생 소비에트연방을 방문하고 돌아와 한 이야기가 있다. 유물론자임을 자처하던 공산주의자는 날마다 “강한 의지, 애국심, 충성심으로 소비에트 낙원을 건설하자”며 지극히 유심론적인 요소만 떠들고 있었다. 반면에 공산주의자가 유심론자(관념론자)라고 조롱했던 영국인은 재화의 생산과 돈밖에 모르는 유물론자처럼 살고 있었다. ‘이념’이라는 상(相)이 만들어낸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목도한 후의 소감이었다. 유물론을 추구하는 ..

둘이 아닌 관찰

둘이 아닌 관찰 - - 법상스님 몸이 나라고 여기는 '생각'만 없으면, 이 몸과 눈앞에 보이는 컵이 둘이 아닙니다. 이 몸은 '나'이고, 눈앞의 컵은 내가 아닌 대상이라는 분별 자체가 '실체가 없는 허망한 생각'일 뿐입니다. 그같은 생각, 아상, 에고, 아견이 없다면 어떨까요? 어떤 것에 대한 느낌에 '나'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몸이라고 이름을 지어 붙인 몸에 '내 몸'이라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그렇게 하면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가 아무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경험될 뿐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온 몸을 스칩니다. 바람이라고 이름 붙인 어떤 현상이 경험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코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들숨과 날숨이라고 이름 붙인 바람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말은 전부 ..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 - - 법상스님 사실 괴로움은 현실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나의 생각, 판단, 해석이 괴로운 것일 뿐이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괴로움이라고 판단하고 해석하는 생각이 없다면, 그래도 괴로울 수 있을까? 괴로움이든 아니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라. 진실한 부처님인 법신불(法身佛), 즉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의 본바탕, 본질, 근원을 수용신(受容身)이라고도 부른다. 분별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그것이 바로 부처, 즉 법신불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것이 곧바로 불이법(不二法), 진실한 법이다. 불이(不二)란 곧 둘로 나뉜 것이 아니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