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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5일, 노무현 내외를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사하러 나온 노무현 부부 모습. ? 이광표 기자 |
촌사람 '노무현'에게 환호하는 사람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평가되고 있는 것일까. 퇴임 직후 어느 새 그의 인기는 새 대통령을 능가하는 분위기다. 전국 곳곳에서 돼지저금통이 모여들던 때에 버금갈 정도다.
더불어 그가 청와대를 뒤로하고 돌아간 '봉하마을'은 전직 대통령과 대중들간 소통의 공간이 되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연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는 노무현과 그가 다시 찾은 고향 봉하마을. 그 곳에 기자가 직접 찾아가 봤다.
기자에게 봉하마을은 초행이었다. 노무현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직후, KTX를 타고 봉하마을에 내려갔던 것처럼 기자도 KTX 열차에 몸을 싣고 봉하마을이 있는 경남 진영으로 향했다.
지난 3월 초, 방송과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봉하마을 속 인간 노무현의 모습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다.
평일에도 수많은 인파 몰리는 봉하마을…현수막과 노란색 풍선 물결 장관
특히 노무현이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과 어우러져 사진을 찍는 모습, 동네 시골슈퍼에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들은 전직 대통령이라기 보다 영락없는 '촌사람'이었기에 더욱 신선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설정이든 아니든 간에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을 보고싶어 하는 듯 했다.
"무현씨, 미안해요"
동영상/ 이광표 기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노무현 부부는 며칠 전에 봉하마을의 주소지인 진영읍으로 전입신고도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제 법적으로도 '촌사람'이 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측근에 의하면 언론으로부터 퇴임막판까지 지겨운 공격을 받은 그이기 때문에 자칫 전입신고라도 미루다 보면 또 한번 억울한 공격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봉하마을은 진영읍에 속해 있다. 4시간여에 걸쳐 도착한 진영역에서 택시를 잡고 10여분 들어가자 노란 풍선과 현수막이 장관을 이루는 봉하마을이 나타났다.
지난 일요일, 노무현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뤘던 것을 상기시켜 보면 많지 않을 수도 있지만, 평일임에도 봉하마을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은 가득 메워져 있었고, 사람들의 발길도 계속 이어지는 듯 했다.
기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마을 입구부터 곳곳에 펼쳐져 있는 노란색 풍선 물결과 현수막들이었다.
노란색 풍선 속에는 노무현을 향한 애정 어린 글귀들이 적혀 있었고, 진영역 부근부터 봉하마을까지 펼쳐진 수 없이 많은 현수막에는 그의 귀향을 환영하는 여러 글귀들이 적혀 있었다.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노무현 때문입니다"는 현수막이 봉하마을이 시작되는 입구에 걸려있기도 했다.
한편 아담한 슈퍼도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이 곳에서 담배를 물며 가게주인과 담소를 나누는 사진이 인터넷에 게재됐던 것이 떠올랐다.
당시 전직 대통령이 어느 누구에게도 볼 수 없었던 장면이 공개되자 네티즌 사이에 커다란 화제가 됐었다.
댓글에는 "우리 아빠 같다" "담배끊으세요 노무현 아저씨" "이렇게 친근할 수가, 이제 욕도 못하겠다"는 등 재미있는 댓글이 수 백개 이어지며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노무현에 대한 관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 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는 슈퍼에 들어오자마자 "나 노무현이랑 손잡았어요"라며 가게주인에게 소녀팬이라도 된 마냥 기겁을 하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기자와 함께 봉하마을에 막 도착한 것으로 보인 한 아주머니 관광객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가게 주인에게 "노무현씨 자주 나오시냐"며 궁금해했다.
주인의 말에 의하면 새로 지어진 그의 사저 앞에서 '보고싶다'고 소리치다보면 이따금씩 얼굴을 비추고 손을 흔든다고 한다.
다만 지난 일요일 감당이 안될 정도로 관광객이 몰려 홍역을 치른바 있어 출입을 자제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손까지 잡았다는 그 아주머니는 운이 좋은 모양이라고 귀띔했다.
기자가 봉하마을에 도착한 직후 관광객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들어갔다는 소리다. 이러다 하루일정 접어두고 봉하마을에 내려왔는데 노무현 얼굴 한번 못보고 가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이 들었다.
슈퍼에서 나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묵는다는 사저로 향했다. 마을이 그리 크지 않아 그의 사저는 금방 눈에 들어왔다. 웅성대는 관광객 말소리와 노란색 풍선만 따라가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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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생가의 모습이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지만 노무현 생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 이광표 기자 |
사저 바로 앞에는 노무현이 태어난 시절부터 살았던 생가가 있다. 생가는 이미 다른 사람이 묵은 지 오래 되어 노무현의 어린 시절이 쉽게 그려지지 않지만, 사람들은 새로 지은 사저보다 대통령이 탄생한 생가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노무현이 다 망친다"고 욕했던 시민…"얼굴보고 나니 마음이 짠하고 미안"
사저 앞에는 합판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방명록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노무현을 못보고 돌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이런저런 메시지를 남기며 아쉬움을 달래는 듯 했다.
맞춤법은 틀려도 어린 꼬마가 남긴 진심 어린 응원메시지부터, "지난 5년 당신을 욕했던 것을 후회합니다"라는 글귀도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사저 앞에 무리를 지은 사람들 중 일부는 노무현 부부 얼굴이라도 보고 갈 작정인 듯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자리를 지키며 있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오고 갔다. 사람들 무리 속에 함께 어우러져 있던 기자의 귀에 가장 많이 들어온 이야기는 '후회'와 '용서'로 정리되고 있었다.
무리에 있던 한 사람은 "신문이고 방송이고 산을 다 깎아서 호화별장 지어놨다더니, 순 다 뻥이여∼대통령까지 한 양반이 시골구석에서 이만한 집에도 못사는 게 말이 되남"하며 퇴임을 맞는 마지막순간까지도 노무현의 귀향을 못마땅해 했던 언론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있던 한 시민은 "나도 죽일 놈 죽일 놈 그렇게 욕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뽑아줬더니, 장관들 데리고 나온 거 보면 노무현이 그건 백 번 잘했어"라며 "오전에 얼굴도 보고 악수도 했는데 마음이 짠하고 미안하네"라고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의 등장을 기다리며 사저 앞에 무리를 지어있던 사람들은 노무현 지지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때 "노무현이 나라 다 망친다"며 그를 욕했던 사람들도 절반은 되어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고, 노무현도 그 곳에서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고 있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촌사람 다 됐어요"
기자가 찾은 이 날은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내려온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 동안 많은 지인들이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고향에 내려 온 노 전 대통령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날은 한덕수 국무총리와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가 봉하마을 찾았다는 것을 관계자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저 앞에 무리를 지어 서 있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노무현 부부를 보고 싶은 마음에 한 목소리로 "나와주세요" "보고싶어요"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유세현장 방불케 하는 봉하마을…사저 앞 "나와주세요∼보고싶어요" 구호 연발
그러나 사저에는 경호원 몇 명과 마무리중인 공사인부들만 있을 뿐 노무현 부부의 인기척은 느낄 수 없었다.
기자가 노무현 부부의 동정을 묻자 이날 인사를 하러 온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권오규 전 경제부 총리 등과 함께 봉화산으로 산행을 갔다는 말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허탈해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한 시민은 "한 5년 있다 다시 찾아오면 마 그땐 만나서 커피라도 한잔 안 주겠나"라며 "그만 가자"고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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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한덕수 전 총리일행과 봉화산 산행을 다녀온 노무현 내외가 사저 앞을 떠나지 않던 시민들에게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 이광표 기자 |
그래도 떠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사저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나고, 이윽고 노무현 부부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 이들을 보기 위해 사저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이들 부부를 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촌사람 다 됐어요" "가까이 좀 오세요"라고 소리치자 노무현은 "악수하고 싶지요? 악수하려고 했는데, 내 팔을 빼갈려고 해서 안되겠어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중간에 한 시민이 "대통령 한번 더 나오세요"라고 소리치자 "왜요, 나오면 또 욕 하시려구요"라고 농담을 맏 받아치자 일제히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관계자들 말에 의하면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내려온 이후에도 대통령 시절 못지 않은 강행군을 펼치고 있으며 당분간 계속 될 것이라는 전언이다.
사람들이 몰려올 때마다 일일이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는가 하면, 마을 주변 살피기에도 여념이 없다. 지난 3월 1일에도 과거 같으면 삼일절 기념식 행사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을 그였지만, 마을 주변 곳곳을 살피며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들과 일일이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또 며칠 전에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www.knowhow.or.kr)'을 개설하고 '사진 찾아가세요'라며 관광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홈페이지를 통해 세상과의 소통을 계속하고 있는 그이다.
홈피를 통해 “여러분을 어떻게 부를까요”라면서 “노사모 여러분?, 친노 시민 여러분?, 민주시민 여러분?, 참여시민 여러분?, 국민여러분?, 아니면 그냥 친구 여러분?, 이것도 한번 의논해 보자”고 제안하며 아직은 어색해하는 모습이지만, 역대 대통령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았던 대중들과의 직접 소통을 즐기는 노무현이다.
사람들은 이런 노무현의 모습을 즐기는 듯 했다. 평범해진 그의 옷차림과, 시골마을에서 신발에 흙 묻혀가며 사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에 환호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도 이런 친근함이었다는 것이다.
한때 노무현이 보여줬던 '기타 치는 대통령' '포장마차에서 소주잔 기울이는 대통령' '떡값 검사들과 맞짱 토론을 즐기는 대통령'에 대중들은 환호한 적도 있지만, 이러한 인기는 오래가질 못했다. 그것이 노무현의 실수이든, 언론의 공격이든 말이다.
노무현은 퇴임을 즈음해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사회와 격리되는 것이 무서웠는데, 또 다시 격리될 까 두렵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 정치현실이 지난 5년 동안 그를 청와대에 가둬 놓으며, 세상과 격리시켰을지언정 '봉하마을' 그 곳에서는 분명 세상과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뜨겁게 말이다.
기자가 처음 찾은 봉하마을은 추운 겨울은 온데 간데 없이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에게 남아있던 세상의 싸늘한 시선도 그 곳에서 함께 녹고 있었다.
취재 이광표 기자 pyoyoy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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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에 물결치는 노란색 풍선들 모습. ? 이광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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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한켠에 길게 늘어서 있는 방명록.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응원 메시지가 가득하다. ?이광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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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노무현 내외가 직접 나와 인사하자, 조용히 응시하며 바라보는 사람들. ? 이광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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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과 인사를 마친 후 사저로 들어가는 노무현 내외모습. ? 이광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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