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주당
[총선분석] 민주정부 10년 성과 부정하고 올바른 의제 설정 못 해
조기숙 교수
새벽 6시부터 줄 서서 투표하던 우리 가족이 모두 불참하고 저만 오후 5시가 넘어 투표소에 갔습니다. 이렇게 투표장에 가기 싫은 적은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46%의 투표율을 기록한 국민을 원망하거나 질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찍을 사람이 없어 투표소에 가지 않은 민주시민의 괴로운 심정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치불신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았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원래 정치불신이 높은 선거에서는 초선 돌풍이 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번 선거는 최근 네 번의 선거 중에 초선의 당선율이 가장 낮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정당은 많았지만 찍을 만한 정당을 갖지 못한 불행한 유권자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박재승 효과는 없고 최악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다."
박재승 공천혁명 운운할 때 제가 했던 말이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사실 그때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민주당에 악영향을 미칠까 자제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너지기 시작한 이래, 재보궐선거에서 40전 40패를 했고, 대선에 이어 이번 총선에서도 참패했지만 민주당은 과거의 실패로부터 전혀 배운 것이 없습니다. 뻔히 앞날이 보이는 데에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그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81석을 했으니 그래도 선전했다?"
민주당과 통합하여 호남을 석권해서 얻은 성적이 겨우 지난 대선 득표율밖에 되지 않습니다. 손학규 대표 추대하며 중진의원들에게 정계은퇴 하라고 소리치던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 줄줄이 떨어졌습니다. 그나마 중진들 덕분에 체면이라도 유지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까?
박재승 공천 이후 반짝 지지도 올랐던 것을 박재승 효과로 착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민주당과의 합당효과가 뒤늦게 나타났을 뿐입니다. 대선 때와 달리 유권자들이 호의적으로 변했다고요? 이명박 정부 몇 개월 경험하고 학습한 덕분입니다.
열린우리당은 매번 선거에 지고 나면 노무현 탓을 했습니다. 이번 총선도 노무현의 한계를 넘을 수 없었으니 이 정도면 선전했다고 말하고 싶은가요? 만일 노무현 때문에 이렇게 참패를 했다면 사지(死地)라고 할 수 있는 경상도에서 친노 후보들의 당선을 뭐라고 설명하겠습니까?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만큼 심판을 받은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한나라당은 제주도, 충청도, 강원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고소영' 내각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박근혜계가 최다 무소속 의원 배출 기록을 세우면서 한나라당의 잘못된 공천에 대해서도 충분히 심판을 했다고 봅니다. 선진당의 선전도 결국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심판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수도권에서만은 이명박 대통령이 심판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뉴타운에 대한 기대가 한나라당 지지를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 유권자를 탐욕에 눈이 먼 이기주의자로 몰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도권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심판할 민주당이 대안정당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봅니다. 선거전략도 없고, 쟁점도 없고,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는데 왜 민주당이 대안정당이 되어야 합니까. 보수적 유권자는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한나라당을 찍었겠지만 진보적 유권자는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어떻게 다른지 알 길이 없으니 투표하지 않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낮은 투표율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결국, 수족을 잃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크게 심판을 받은 쪽은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그것이 박재승 공천의 결과입니다.
박재승 공천의 의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부정하고 손학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중동으로서는 신이 날 일이지요. 민주당이 할 일은 민주화 정부의 지난 10년을 긍정적으로 계승하고 두 정부가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는 정책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재승 위원장은 정치발전을 위한 두 정부의 핵심 희생양을(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시 희생양 삼음으로써 두 정부의 정통성을 뿌리째 무시해버렸습니다. 단지 경쟁력 있는 후보 몇 명을 날릴 것이 쟁점이 아니라, 그 행위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의도야 좋았겠지만 정치적 감각이 없는 분이니 그런 일을 했으리라고 봅니다. 게다가 손학규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과 사사건건 맞서며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민주화 정권은 10년간 실패했다고 하고, 한나라당 출신이 당대표가 된 상황에서 국회의원 개인을 보고 투표한다면 몰라도 진보적 유권자가 정당을 보고 찍을 이유는 없어진 것이지요. 게다가 비례대표 의원들의 면면을 보십시오. 한나라당과 무슨 차별성이 있는지. 그것이 손학규 공천의 한계입니다.
초지일관 소신을 지키며 지내온 의원들은 대부분 당선되고,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도 서슴없이 하던, 자신들이 잘나서 당선되었지 탄핵 덕 본 것 없다던 초재선 의원들은 우수수 낙선을 했습니다. 손학규를 당대표로 추대한 그들의 정치의식과 감각이 바로 열린우리당을 자멸로 이끌고 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뭔지도 모르고, 대통령을 돕지도 않았으며, 조중동 프레임에 빠져 해당행위를 했습니다. 결국, 민주당이 조중동 프레임에 빠져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는 이렇게 망한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으면서도 아직도 교훈을 못 얻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는 손학규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많이 변하려고 노력했지만 국민은 아직도 우리의 변화가 부족하다고 보는 것 같다."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니,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이고, 잘못된 쪽으로 변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들이 노무현 탓을 하며, 이 정도도 선전한 것이라고 자평하고 있다면 그들은 영원히 재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진보신당의 심상정, 노회찬 두 의원의 낙선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참여정부에 비판적이면서도 진보 동반자로서의 예의를 갖추었다면 저라도 나서서 두 지역구의 민주당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여론을 조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늘 참여정부를 공공의 악처럼 몰아붙였기 때문에 그런 조치가 한 편의 코미디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차마 나서지 못했습니다.
결국, 진보들이 지난 대선, 총선에 참패한 이유는 스스로 분열하고 아젠다를 설정하지 못하고 지난 10년 업적을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년을 부정하면서 유권자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자기모순 아니겠습니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마법에 걸린 나라] 꼭 한 번 읽어보고 민주당과 진보진영이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다시 시작하기를 바랍니다.
지난 민주정권 10년이 얼마나 우리나라를 진전시킨 성공한 시대였는지를 지금부터 국민에게 설파하기 바랍니다. 조중동 프레임에 맞서 싸우지 않는 한, 다음 지방선거에서도 참패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원문 - http://www.chammalo.com//sub_read.html?uid=8912§ion=section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