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찾아서..... |
번호 164153 글쓴이 파스텔 (pastel) 조회 397 누리 189 (189/0) 등록일 2008-9-13 09:56 | 대문 11 추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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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 파스텔 / 2008-9-13) 들어가기 전에...... 이 글은 지식과 지혜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인 내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명제를 놓고 나름 공부해나가며, 앎이 머릿속에서 엉클러 지기 전에, 공책에 끄적거려보는 복습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요즘 ‘노무현 민주주의Ⅱ’라는 시리즈로 노무현님의 민주주의 사상을 동영상으로 정리해 나가느라 고군분투하는 제베님을 보면서, 내 앎의 허접함으로 인하여 발벗고 도와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면해보려 함이다. 이 자리를 빌어 실천하는 제베님 행동에 경의를 표하며, 열렬이 응원을 보내는 바이다.
노무현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나의 캡틴인 그 분이“이게 콩이다”하면 무조건 콩으로 믿을 만큼, 그분에 대한 나의 신뢰는 두텁다. 허나,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승과 제자의 도리가 진정 아닐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배우고자 함이지, 교조주의를 배우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범생이처럼 인터넷을 뒤져가며, 머리가 빠개지도록 공부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욕하면 닮는다더니, 어느새 나는 2MB 뇌를 닮아 가나보다. 우라질......
우선 나는 민주주의라는 개념부터 챙겨야 했다 . 나와 같은 세대이거나 위에 세대들은 지금도 민주주의의 반대가 공산주의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아마, 초.중.고 교육기간 내내, 냉전의 시대를 거쳐오며 남과 북의 체제경쟁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 결과, “민주주의가 선이고 공산주의는 악이다”라는 삐뚤어진 이데올로기 교육정책이, 인간사회를 바라보는 나의 눈을 편협하게 만들고 ‘정신활동의 자유’ 인 천부적‘자연권’을 박탈해 가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국호가 쌩뚱맞게 보이기 시작했다. 롱롱타임어고......사실 그때는 제대로 된 저들의 국호를 접하기도 어려웠다. 그저 ‘김일성괴뢰도당’ 내지는 ‘북괴’ 또는 ‘북한공산당’이 전부였다. 그런데 풀네임에서 보다시피 ‘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이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 저쪽도 민주주의를 한다는 거네....?
그러면.... 도대체 민주주의의 반대가 뭘까? 지금부터 나는 그것을 찾아 인터넷을 헤매보련다 자~ 들어가보자구......
제1장 사람과 민주주의
사람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하려는 것은 수 만년에 걸친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터득한 공존의 지혜이다. 그 공존의 지혜는 마침내 인류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노 무 현- (첨삭-파수테에루)
사람은 생각이라는 특별한 행위를 하고 더불어 언어와 도구를 만들어가며 지구라는 공간 안에서 사회를 이루어사는 동물이다 . 이들이 신의 창조물이던, 아님 진화의 결과물이던, 지금 수만 가지 생물이 존재하는 지구라는 공간 안에서 가장 힘이 센 종(種)으로 진화되었다.
수 많은 생물 중에서 사람의 진화가 가장 두드러졌던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마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진보적인 마음과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거의 무방비 상태인 기나긴 영아(嬰兒)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이런 핸디캡으로 인해 자연과 천적으로부터 위험에 노출이 많이 되었을 것이고 이는 곧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져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동물이었을 것이다.
자연다큐멘터리 영상물을 보면은 사람과 같은 포유동물인 네발 달린 동물이 어미의 뱃속에서 나옴과 동시에 스스로 서서 어미의 젖을 찾아 무는 행동 능력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이에 비해 사람은 그런 능력이 전혀 없다. 스스로 서지도 못할 뿐더러 젖을 찾아 물지도 못한다. 간난애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목청껏 울어 제켜 천적으로부터 더 위험에 빠지게 하는 어리석음 뿐일 것이다.
이것은 작은 무리를 이뤄 사는 초기 원시공동체에겐 분명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어미와 젖먹이는 무리로부터 배척을 당했을 것이고 생존의 가능성도 더 낮았으리라 추측이 된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아버지라는 개념이 없었을 것이기에 그런 위험은 순전히 어미 혼자서 감당해야만 했을 것이다.
공동체이기는 하지만 서로간의 사랑의 감정이나 배려 따위는 아예 없는, 그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조금 더 안전하고자 무리를 지은, 어쩌면 최초로 발현되는 동물적 본능에 충실했을 것이라 추측이 된다.
인류최초로 발현된 민주주의
1981년에 개봉된 ‘불을 찾아서’라는 영화가 있다. 8만년 전, 불을 사용할 줄은 알았지만 아직은 만들지 못하는 어느 선사시대 동굴에 사는 원시인 공동체무리의 이야기이다. (대사가 하나도 없다.)
어느 날 이 동굴 공동체무리는 다른 무리의 습격을 받아 도망치던 중, 그들의 소중한 불을 꺼트리고 만다. 이들에게 불은,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는 늑대무리를 방어하는 무기이고 사냥한 고기를 맛있게 익혀먹으며, 추위를 막아주는 따뜻한 온기였다. 이처럼 불의 존재는 그들이 가장 아끼는 보물이며, 행복을 가져다 주는 최상의 가치였던 것이다.
그런 불을 잃어버린 그들은 낙담을 하고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공동체무리 중 3명이 용기를 내어 낯선 외지로 불을 찾아 떠난다. 이 여행은 그들에게는 한 발짝 더 내딛는 진보이고 엄청난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험난한 여행 길에서 굶주린 사자를 만나 나무 위로 피신 하기도 하며, 무작정 불을 찾아 광야를 헤매고 다닌 여러 날 끝에, 모닥불에 고기를 익혀 먹는 어느 원시인 무리들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식인 원시인 무리들이었다. 나무엔 그들과 다른 종족의 여자 원시인 두 명을, 마치 사냥한 사슴처럼 나무에 매달아 놓고 모두들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물론 사람고기였겠지...)
덤불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3명의 원시인은 그들을 유인하여 무리를 흐트러트린 후 공격을 하여 마침내 원하던 불씨를 챙길 수가 있었다. 그 와중에 원시인 한 명이 부상을 당하고 붙잡혀있던 여자 원시인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미묘한 감정을 최초로 느끼며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웃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접한다. (전에는 웃는 것 자체를 아예 몰랐음)
그들은 또 그들보다 더 진화된 그 여자 원시인의 부족에게서 불을 만드는 비법도 전수를 받는다. 요즘 같은 세상엔 꿈도 꿀 수가 없는 최고의 정보를 원시인들은 아낌없이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을 따라나서는 여자원시인과 함께 그들의 공동체 무리로 되돌아와 불을 영원히 소유하게 되고 웃음 또한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가 민주주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길게 썰을 풀었는가 하면, 영화의 어느 한 장면이 참 인상 깊게 남아 있다가 문득 떠오르더란 말이지, 그런데, 이거 해도 될려나 몰것서 19금인디......
영화에서 남녀가 운우의 정을 나누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좀 숙스럽겠지만 귀좀 일루 대봐봐!!
첫 번째 장면은 여자가 물가에서 엉덩이를 치켜 세우고 뭔가를 하는데 뒤에서 이를 지켜 보던 어느 원시인이 갑자기 득달같이 달려들어 막 거시기 하능겨, 누가 보거나 말거나 말이야, 자세는 뒤로, 동물들은 다 그런 자세지 왜, 여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할일 계속하고 남자는 지 볼일 다 보고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서로 눈이 맞는다던지 감정의 교류 따위는 아예 없는 거지.....
두 번째 장면은 여행 길에서 만난 그 여자 원시인하고 거시기 하는데 역시 여자의 동의를 얻는다거나 그런 거 없고, 마찬가지로 자세는 거시기로, 여자가 짜증을 내는 거 같더라고, 그 여자는 그 남자에게 처음 만날 때 관심이 있는 거 같더만 그래도 그 시점에선 거시기는 별로 생각이 없던 거지, 지금 같아선 강간이지 뭐......
세 번째 장면은 비를 맞는 남자가 추워서 몸을 웅크리자, 여자가 보기에 딱했던지 다가가서 남자를 감싸 안지, 그러자 남자는 거시기가 거시기 되는지 여자를 뒤로 돌려 세우고 또 거시기를 막 하능겨, 그때 여자가 남자의 몸을 살며시 앞으로 돌리며 정상위로 잡아 주자 이 남자 눈이 휘둥그래지는 거야, 처음 경험해보는 순간이지.....
그리고 서로 바라보며, 표정과 감각을 느끼며,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향으로 감정을 교류하는 거시기가 너무나 좋다는 표정인 거야.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 원시인들도 난생처음 보는 그 둘의 소통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지....... ㅎㅎㅎ 마치 감동을 받은 표정이 더만.......
여기서 뭐 느끼는 거 없어......?
한쪽의 일방적인 행위보다는 소통을 통해 쌍방합의 하에 그리고 서로 존중하며 하는 행위는 더 마음이 간다. 그래서 나는 민주주의는 진보이고, 도전이고, 소통이고, 합의이고, 존중이라고 말하겠어.
뭐?
원시인 거시기와 민주주의를 등가 시키는 것은 논리비약이라고...? 그렇다면, 아니라는 고고학적 증거를 대봐봐!! 덧붙여서 민주주의의 반대가 도대체 뭐야?
모두들 한가위 잘 보네시구요. 운전 조심하세요^^
제6회 옥천 언론문화제에서.....
ⓒ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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