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선민의 무한 행복
(서프라이즈 / 내과의사 / 2008-9-5)
민주주의 정치체계와 사회보장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현대 복지국가의 기본 개념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면 이명박 정부가 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최소 선민(選民)의 무한 행복"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물론 이명박과 그 추종자들은 나의 단정을 틀렸다 할 것이며,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자면 검찰은 나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엮어 넣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 시내를 뒤덮은 촛불을 보며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으며, 배후를 밝히라고 호통을 치다가 불과 며칠 만에 국민과의 소통 부족을 반성했다면서 가련한 모양새를 방송 화면에서 연기하고, 다시 몇 주 만에 그 반성을 불러온 주체들에게 불법 폭력 시위자라는 낙인을 찍어대는 이명박의 위선과 몰염치를 생각하면, '경제 성장'을 떠버리며 그가 내놓는 정책들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는 데에 그다지 높은 지능이 필요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가관인 것은 일부 언론에서 이명박의 이러한 행보를 '개혁 드라이브'라고 묘사한다는 사실이다. 국어사전에 실린 고유한 말의 뜻과 정치업계와 언론업계에서 사용하는 말뜻의 차이는 물가와 환율의 상승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이명박을 쥐새끼라고 표현하면 국가원수 모독죄로 잡혀갈 수 있다. 하지만, 청계천 시궁창에서 놀고 있는 쥐새끼에게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애완동물로 삼는 일은 민주시민인 나의 고유한 자유이다. 맞다. 이명박은 "대통령"이시다.
대한민국의 비극은 이명박과 추종자들이 '최소 선민(選民)의 무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정신분열증의 유병률은 약 1%이다. 그보다 심한 정신병으로 심심하면 시청 앞에 모여서 성조기 흔들며 집단 자위행위를 일삼는 인간들도 몇 천명은 된다. 그런 미친놈들 말대로 설령 대한민국에 간첩이 10만 명 있더라도 이들이 대한민국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오늘날 "적화통일"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방대한 간첩망을 유지하는 북쪽 아이들 등골만 휘어질 뿐이다. 쉽게 말해 세상에는 별의별 인간이 다 살고 있다. 이명박도 그 중 하나일 뿐, 그 존재 자체가 위협이나 비극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가 쥐새끼든,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비극은 사회구성원의 대다수가 이명박이 제시하는 최소 선민(選民)의 무한 행복 모델을 선호한다는 진실이다.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성공을 경험하면서 대한민국에는 강자에게 한없이 비굴하고 약자에게 끝없이 잔인한 처신이 습관화 되고 보편화 되었다. 악순환이고, 이율배반이다. 조중동, 한나라당, 이명박의 성공의 저변에는 우리 모두의 암묵적 동조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지지율은 바닥이지만 그 인간처럼 성공하고 출세하고 싶은 심정은 모두의 로망이 되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전쟁에서 시작하여 스포츠로 수렴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단순하게 이해한다. 전쟁에서 이긴 승자가 패자의 나라를 약탈하고, 초토화 시키며, 그 국민들을 노예로 삼는 것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였다. 제네바 협정 따위를 들먹이며 아무리 전쟁을 미화해 본들 전쟁의 본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서 상대를 짓밟는 것이다.
모든 스포츠에는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 규칙을 어기는 자는 벌칙을 받거나 퇴출을 당한다. 승자와 패자는 갈리지만 그것이 상대를 무제한으로 유린할 자격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승자는 축하 받고 패자는 위로를 받는다. 때로 패자에게 패자부활전이라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선택받은 사람들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그러나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 역시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며, 패자부활전처럼 그들에게도 선택의 문은 언제나, 한없이 열려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는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준과 과정이 전쟁이 아닌, 스포츠의 본질을 따라 한다는 점이다.
역사가 전쟁에서 스포츠로 수렴되어가는 이유를 나는 휴머니즘 같은 거창한 이상에서 찾지 않는다. 20세기 들어 터진 양대 세계 대전과 지구촌을 휩쓴 '혁명의 바람'에 승자든 패자든 같이 어울려 살아가지 않으면 결국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실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한 때문이다. 사회복지를 선택한 유럽은 수입이 발생하는 순간 세금을 걷어가고, 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한 미국은 부자들이 알아서 기부금을 낸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본질은 패자를 위한 '개평'이고, 승자를 위한 '보험금'이다.
노무현은 한국정치판에서 '스포츠 정신'으로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라간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그의 성공은 '게임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 자기파멸의 지름길이라는 정치업계의 불문율을 한 방에 무너뜨렸다. 참여정부는 그의 '스포츠 정신'을 대한민국 사회 전체에 접목시키려던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승리를 향해 최선을 다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야 하지만 아무도 죽을 위험이 없는, 그리고 승자와 패자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세상. 우리가 올림픽에서 보고 느꼈던 그런 감동이 가득 찬 세상 말이다.
험한 산을 오른다. 한 사람이라도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서로의 몸을 로프로 잇는다. 상황에 따라 이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추락이 굴비 두름처럼 모두의 추락으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그러니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서로를 북돋으며 험한 산 너머 아름다운 세상을 다 같이 누리자고 호소했고, 이명박은 빌빌한 한 놈 때문에 개죽음할 수도 있으니 줄을 끊고 체력 빵빵한 사람들만 달려나가자고 재촉했다. 칼은 당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줄을 끊었다. 내 체력은 빵빵하다는 착각 속에서, 내가 바로 빌빌한 한 녀석이라는 진실은 깨닫지 못한 채.
환율이 오른다고 아우성이다. 자식새끼들 외국유학 보내는 것이 럭셔리한 교육의 모범으로 자리 잡은 오늘. 개처럼 벌어서 정신없이 달러를 해외로 퍼 나르는 닭짓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이명박을 욕하지만 모두가 이명박이 되고자 한다. 무슨 수를 동원하든지 이명박의 최소 선민이 되어 무한 행복을 쟁취하고자 한다. 내가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냉혹한 전쟁의 법칙 속에서.
ⓒ 내과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