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젊음이여, 바람이 되어라

장백산-1 2008. 11. 8. 20:23

젊음이여, 바람이 되어라
번호 177199  글쓴이 유학생수학도 (pythagoras)  조회 1843  누리 860 (865/5)  등록일 2008-11-8 07:01 대문 51 추천


젊음이여, 바람이 되어라
(서프라이즈 / 유학생수학도 / 2008-11-08)


대학에 가서 세상을 새롭게 깨닫기 시작하면서, 한국에서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혹은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새겨진 상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정통성 없는 권력들이 사람들에게 새겨놓은 강요된 나라 사랑 또는 강제된 충성의 주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애국이라는 단어에서 군사독재 파시즘의 잔재를 연상하게 되었고, 그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제가 눈앞에서 본 장면들이 저의 이런 생각들을 요동치게 만듭니다.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후, 이 학교 캠퍼스 주변에서는 놀라운 광경들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기획하지 않았고, 연출하지 않았던 학생들의 자발적이며 자생적인 축제가 시작된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지난 월드컵 때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결정적으로 달랐던 것은, 이것이 축구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국기를 흔들어대며, USA를 외쳐대는 이 미국의 젊은이들은 조금도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들의 축제에서 분명히 그들이 말하는 애국을 들었고 느꼈지만, 거기에서 파시즘이 남겨놓은 구김살과 상처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이 선거의 승리를 마치 그들 혁명의 성공처럼 대했고, 그들의 돌아온 조국을 기꺼이 환영하는 듯 보였습니다. 적어도 제가 눈앞에서 본 젊은이들은 마치 전부 주술에라도 걸린 듯이 소리높여 'Yes, we can'을 외쳤습니다.

 

이들의 이 축제를 바라보며, 물론 저는 초라한 조국의 모습이 떠올라 슬프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기꺼이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도록 하는 상처가 있었고, 그래서 또 외롭기도 했습니다. 부러운 마음도 컸습니다.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겁니다. 많은 분들이 다음과 물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겐 오바마가 없을까.

물론 저에게도 이 질문이 떠올랐지요.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은 방향이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질문이 틀리면 답도 틀리게 됩니다.

 

선거가 끝나고 당선이 확정된 후, '헬로 시카고'로 시작되는 오바마의 가슴 떨리는 연설이 시작됩니다. 그 첫마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If there is anyone out there who still doubts that America is a place where all things are possible; who still wonders if the dream of our founders is alive in our time; who still questions the power of our democracy, tonight is your answer.

 

미국이 모든 것이 가능한 국가라는데 회의를 가진 분이 있다면, 우리 건국 선조의 꿈이 우리 시대에 살아있다는 것을 의심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의 힘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밤이 바로 그 답입니다.

지난 세월 방황하던 미국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가 되어줄 수 있게 만드는, 언제고 다시 되돌아갈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오바마가 언급한 이 건국 선조들의 꿈. 우리에게 없는 것은 오바마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것들이 있던가요?

 

그가 말하는 이 건국 선조들 중 중요한 인물의 하나인 제임스 매디슨의 삶을 조금 살펴봅니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사람. 그 미국 헌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 중 하나인 연방주의자 교서의 많은 부분을 작성한 사람. 초대 의회의 리더가 되어 자신이 설계한 정치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기여한 사람. 최초의 제정헌법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다시 수정헌법의 최초 10개 조항을 입안한 사람.

 

 독립선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오늘날 미국 민주당의 기원이 된 민주공화당(Democratic–Republican Party)을 만든 사람.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제퍼슨 시기에는 국무부 장관을 맡고, 그 뒤를 이어 제4대 대통령이 된 사람. 오늘날 미국이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준 가장 중요한 설계자 중 한 명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오바마가 언급하는 건국의 선조들일 것입니다. 물론 그들 대다수가 노예소유주였으며, 그 시대의 한계 속에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남겨준 꿈과 비전이라는 유산의 빛이 바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독립선언의 유명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됩니다.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이들이 말하던 'all men'- 모든 남자, 그것도 그들의 시대에는 여러 조건이 붙어 있었을 것이 틀림이 없던 이 단어 하나를, ‘모든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기까지 2세기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고 그 혁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노예소유주들의 위선을 묻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의 선언 속에 담긴 원대한 비전을 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미국의 역사이며, 이 도도한 흐름 속에 바로 링컨이 있고, 마틴 루터 킹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이제 오바마라는 미국의 대통령이 탄생합니다.

원대한 비전을 남겨준 선조들에게 감사하는 것, 그 나라의 리더라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우리의 현실을 봅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방황도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황을 시작했을 때, 다시 바른길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며 누구에게 다시 길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 그 지친 어깨를 기댈 수 있을까 물어봅니다. 그것은 이승만의 길입니까? 아니면 그것은 박정희의 길입니까?

 

우리는 오바마가 하늘에서 떨어져 주기를 기대하지 맙시다. 오바마를 보지 말고, 오바마가 자라나는 땅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바마가 아니라, 저 미국을 그 시작부터 떠받쳐주고 있는 원칙들입니다.

 

우리에겐 꿈을 가졌던 선조들이 남겨준 기댈 수 있는 원칙이 없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묶어주고, 그 동력을 현실 속의 정치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당이 없으며, 지역마다 촘촘하게 잘 짜여진 정치제도를 통해 정치인을 훈련시키고 키워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이런 땅에서 오바마 같은 열매가 알아서 맺혀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나도 지독한 불성실함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지금 코리아에는 할 일이 많습니다.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남과 북을 함께 말하는 단어로 코리아를 쓰는 것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코리아의 역사에 있어서 어제 오바마가 언급했던 그런 선조들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고, 아마도 그 시험의 때는 머지않아 찾아올 것입니다.

 

이러한 기회는 역사에 있어, 모든 세대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왕조 오백 년에서도 창조적이었던 단 한 세대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며, 미국의 건국에 있어서도 가장 창조적이었던 한 세대만이 그 과업을 실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오는 사람들은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가며, 그 길을 다듬고 넓히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언젠가 먼 훗날의 후손들이 언제고 다시 찾을 수 있는 창조적이었던 세대로 기억될지, 아니면 시대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원망스런 조상들이 되어 그저 잊고 싶은 악몽이 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쨌든 지금 코리아는 잠을 자고 있고, 침묵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애국이란 말에서 감추고 싶은 파시즘의 상처가 연상되는 나라가 아니기를 꿈꿔 봅니다. 젊은이들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구김살 없는 애국을 말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이 역사의 과업을 실행하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언급되는 미국인들의 그 선조들처럼, 새 시대를 열었던 창조적인 세대가 되면 좋겠습니다.

 

현실이 어렵더라도 우리는 세상을 원망하며 저주하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을 아끼고 키우며, 젊은이들을 깨워야 합니다. 바람이 없다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도록 합시다. 바람이 없으면, 우리가 바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유학생수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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