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를 위한, 지옥으로 모는 교육정책

현실로 다가온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길동초등학교 최혜원 교사]

장백산-1 2008. 12. 12. 16:58

현실로 다가온, 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

1inch 뉴스 2008/12/11 17:47 삐딱이


'그러게 조용히 살지...'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요?
이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고 싶었어요.
학원에 찌들어 나보다 더 바쁜 아이들에게,
시험점수 잘못 나올까 늘 작아지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우리 서로 짓밟고 경쟁하지 말자고
우리에게도 당당히 자기 의견 말할 권리가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후회하느냐구요...?
아니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양심있는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나도
잔인하고 폭력적이었음을 새삼 깨달으며,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명령에 복종하며 바닥을 기기보다는
교육자로서 당당하게, 양심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길동초등학교 최혜원 교사(사진 ⓒ오마이뉴스 권우성)가 아고라에 올린 편지 글의 일부.


어제 전교조 소속 교사 7명이 파면·해임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학업성취도 평가 대신 학생들의 야외 체험학습을 허락한 게 징계 사유다. 사립중학교 교사 1명도 조만간 비슷한 징계를 받을 예정이란다. 이번 파면·해임 사태는 1989년 8월 전교조 대량해직 사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징계다.

20년 전으로 후퇴한 황당한 사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닫힌 교문을 열며>(1991년, 이재구 감독, 장산곶매 제작, 16mm/90분)라는 독립영화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에 출연했던 영화배우 정진영씨가 남자 주인공을 맡았고, 이 작품은 그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지금 <파업전야>(1990년,  이은·장동홍·장윤형 감독)와 함께 독립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파업전야>는 당시 노태우 정부의 '형사처벌' 엄포 속에서도 전국 대학을 중심으로 상영됐고, 수많은 관객들이 '데모 하듯' 영화를 봤다. 심지어 전남대에서 상영될 때에는 사복경찰들과 경찰 헬기까지 동원되는 등 유례없는 '상영 저지' 탄압으로 더욱 화제가 됐다.

<닫힌 교문을 열며>도 <파업전야>보다야 덜 하지만, 영화를 틀기도 보기도 쉽지 않았다. 주로 대학교 총학생회 주최로 강당이나 학생회관, 식당 등에서 상영됐다. 그래도 관람 열기만큼은 후끈했다. 노동자들의 삶과 해직교사의 삶을 다룬 두 영화는 당시 시대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매끄럽지 못하고 거칠긴 해도 진정성만큼은 손에 꼽힐만한 작품이었다.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는 영화 홍보 포스터에 인용되기도 했던 비오는 날 굳게 닫힌 교문 앞에 서 있던 정진영과 아이들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나 깊이 각인되어 나는 지금도 정진영과 이 영화를 함께 떠 올릴 수밖에 없다. 스크린 쿼터 축소반대 시위 현장에 정진영이 서 있는 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상영관을 찾지 못해 대학과 일부 소극장에서 특별상영 형식으로 공개되었다. 이 영화의 제작사인 <장산곶매>는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오! 꿈의 나라>를 만들었고,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파업전야>를 만들기도 했다. 돈이 없는 제작사임은 분명하고 영화를 만들 때마다 온갖 고초를 당해야 했다.

이 비오는 장면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해직을 당했던 전교조 교사들과 실제 학교를 다니던 '함께 가자 우리'라는 고등학생 단체의 학생들이 참여를 했다. 그런데 비용 부족 등으로 촬영이 지연되면서 여름으로 설정되었던 이 장면은 영하 12도의 겨울에 촬영이 되었다. 무려 9시간 동안 진행된 이 장면의 촬영에서 급기야 6명이 실신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블루문의 블로그 '가장 거대한 아스피린 배포중' 포스트 '정진영과 닫힌 교문을 열며'중에서)


동감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모든 이야기가 마지막 이 장면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느껴질 정도다. 한 장의 사진으로도 영화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실제 당시 전교조 해직교사들은 교문 앞에서 장기간 출근투쟁을 벌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교육청 관료들이나 학교 동료교사들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다. 한 교실에 두 담임 선생님이 교단에 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시 <한겨레> 사진뉴스로도 나왔는데, 그 주인공은 도진식 선생님으로 기억된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영화가 현실에서 점차 멀어져가고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영화는 앞으로 계속 '과거'의 일을 기록한 것으로 남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일제고사 거부 교사들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해임·파면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노태우 정부의 '공안탄압'과 닮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열렸던' 교문이 다시금 닫히고 있고, 옛날 그 영화가 현실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다가왔다.

오늘 전교조 서울지부도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왔던 주경복 후보에게 불법으로 선거 지원금을 주었다는 의혹 때문이란다. 공정택 교육감이 학원들로부터 빌렸다는 선거 비용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인 채로 말이다. 이명박 정부가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노동, 교육까지도 쑥대밭을 만들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차량에 탑승해 무면허 운전자에게 목숨을 맡긴 채, 역주행하는 호송 차량 안에 갇힌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