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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탓만을 주절대는 이명박

장백산-1 2009. 1. 1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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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탓>만을 주저리는 정치가가 한 없이 부끄럽다.
번호 193389  글쓴이 명덕  조회 338  누리 127 (127/0)  등록일 2009-1-13 12:30 대문 11 추천


남의 '탓'만을 주절거리는 철면피의 '정치가'가 한없이 부끄럽다
(서프라이즈 / 명덕 / 2009-01-13)



모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여름 갈수기 때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시민들이 고생을 겪고 있었다. 아침 일찍 자치단체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의례 하는 인사로부터 시작한다.


"안녕히 주무셨쥬. 일 하느라구 바쁘시쥬. 고생이 많으시쥬. 아침진지는 드셨수. 근데, 세수도 하시구유."


대뜸 욕설이 튀어나오면서


"시민은 물이 없어 밥도 못해 먹는데, 넌 밥 처먹구 세수하고 사냐! 이 우라질 놈아! 목구멍에 밥이 들어가고 얼굴에 물이 찍히더냐."

한 단체의 장으로 산다는 것, 그것도 한 도시의 공동체를 이끌어 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성과가 많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시민에게서 원성을 듣지 않고, 모든 일이 잘되어 가도록 이끌어 간다면 그만큼 보람 있는 삶일 수 있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을 희생하며, 그를 통해 남들에게서 존경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게 말만큼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다.


칭찬보다는 원망과 욕을 많이 얻어먹기 마련이다. 게다가 칭찬에 인색한 우리네 특성을 생각해 보면 더 그렇고,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을 끄집어내 남을 깔보고 깎아내리려는 우리네 습성에 비춰보면 더 그럴 수 있다.
 

설령 그렇다고 해서 한 공동체의 장이 우격다짐으로 시민들을 몰아대고, 입을 봉하고,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그나마 이렇게 사는 것조차 고맙게 받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다스리는 쾌감을 누리기보다는 욕을 얻어먹는 일이 다른 사람을 이끌어가는 자리를 갖는 직업의 특성이다. 이 욕을 먹기 싫으면 그런 일에 종사하지 않고 그냥 편한 데로 많이 벌어, 남이 죽든 말든 제 혼자 잘 먹고 잘 사면 그만이다. 그게 싫으면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살면 된다.

 주례 연설 중인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KBS 1라디오 등에서 방송된
새해 첫 라디오 연설에서 '국회에서 일어난 볼썽사나운 폭력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의원들 탓'이라며 변함없이 '남 탓'론을 펼쳤다. ⓒ 뉴시스

욕먹기 싫으면 그만두면 된다.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두는 법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뽑아준 사람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명박 씨의 특징이 있다. 모든 게 제 탓이 아니다. 남의 탓이다. 국회에서 일어난 볼썽사나운 폭력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의원들 탓이다. 원인 제공자가 누구인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국제적인 경멸의 대상이 되다니,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 같이 아팠습니다."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사태에 대해 혹 아이들이 보면 어쩌나, 외국인들이 보면 어쩌나, 마음을 졸인 것이 비단 저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두고 어떤 분은 날마다 "해머가 ....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기를 기도합니다"라고 댓글을 썼다. '마음 졸이는 그 품성'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와 인권이 사그라지는 오늘 현실을 왜 뒤돌아보지 않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이명박 씨의 가슴 속에 앙금처럼 박힌 저 말의 숨은 의미가 사실 더 무섭다.

무슨 행동으로 다음 순서가 이어질지 그게 두렵다는 말이다. 저분은 말로 사고 칠 뿐만 아니라, 행동까지도 사고 치는 분이기 때문이다. 장소에 따라 말이 달라지는 이중적 태도, 일관성 없는 언어의 구사, 논리와 토론을 할 줄 모르는 독단적 태도.....


결국 연설 속의 저 말은 '그래 그랬어. 두고 보자. 저것들을 죄다 잡아들여 버릇을 고쳐놔야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독한 자기 결심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기 때문이다. 청와대 뒷산에서 뼈저린 반성 뒤에 오는 그 후회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 연장선상의 생각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복수의 칼날을 갈고, 앙심을 가진 썩은 웃음 뒤에 숨겨 있는 독한 결심이 더 두렵다. 보통의 민주주의 시민이 가져야 할 합리적 생각보다는 '감정의 원한의 칼날을 갈고 있는 느낌'이 전해오는 저 마음의 결심이 더 두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민주주의를 역행시키는 저 천박한 사고의 깊이가 또 어떤 일로 해외토픽감을 만들어 내지 않을까 그게 겁난다.


미네르바 한 사람의 구속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에게서 또 어떤 자유를 빼앗아갈지 그게 두려운 게다.
 

OECD 각료 회의 의장국 어쩌구 하는 저 말 속엔 겉만 화려하면 '모든 게 괜찮다(anything goes)'는 생각이 녹아 있다. 번지르르한 몇백 층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면 서울은 아름답다는 저 발상의 구조가 겁이 난다.


높은 명박산성에 앉아 바라보면 힘겨운 삶과 노동의 찌든 냄새가 젖어 있는 달동네도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그저 아무 탈 없이 '쥐죽은 듯이 쥐새끼 같은 소리'만 내며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겉모양의 화려함이 그 건물의 안전과 건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명박 씨는 그저 외양만 화려하면 모든 게 오케이다. 데모도 없고, 노조도 없고, 노예처럼 말없이 순종하며 시키는 대로 일만 하면 되는 그런 삶이 민주주의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국가의 선진화가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민주화 없이는 안 된다는 자명한 사실을 그는 외면한다. 그러니 모든 세상사를 시끄러운 것으로 치부한다. 선진화된 미국이라 치자.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비민주성이 어디서든 폭발한다는 것을 애써 외면한다. 인권의 사각 지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단연코 외면한다. 미국은 모든 게 아름다움 나라인 것으로 착각하고 산다. 그런 선진화된 미국으로 가자는 것이다. 흑인이, 유색인이, 약자가 고통받는 그 사회의 진면목을 애써 보려 하지 않는다.


언필칭 국격의 선진화라는 것도 외형의 선진화가 아니라, 국가 내부의 선진화가 선행되어야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다. 국가의 진정한 민주화와 선진화는 개개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가 실현되고, 평등한 권리가 발현되는 그 사회라는 것을.


그만 유독 모른다. 어쩜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그는 민주주의 역사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사회인지를 모르고, 교육받지 않았고, 공부하지도 않았고, 열린 사회의 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른바 '브랜드가치'를 언급한다. 결국 그는 '화려한 외형적 상품가치'를 말하는 셈이다. 내용물이 부실하면 아무리 상품을 포장한 껍데기가 좋아도 한 번은 구매자가 속아 구입할 수 있을지라도 다음번엔 절대로 속지 않는 법이다.


'격렬한 노사대립과 거리의 불법시위'가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칭얼대는 저 편협한 사고가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에서 몇십만의 시민이 거리에 나와 데모를 해댄다고 해서, 국가가 경영하는 철도가 파업했다고 해서 그 나라 브랜드 가치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자유, 평등, 박애에 기반을 둔 튼튼한 사회가 노동자가 좀 파업을 했다고 해서 그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겠는가? 통치하기 쉬운 독재의 법률을 만드는,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만드는 국회를 그냥 놔두는 것이 민주주의란 말인가?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반민주악법을 토론의 절차조차 거치지 않고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세력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는 저 빈약한 철학을 우리는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독재에 저항하지 않는 국민이 있다면 그는 민주화된 나라에서 살 권리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인권에 반하는 그 많은 일을 저지르고, 토론과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망각하고 모든 것을 제 뜻대로 밀어붙이려는 저 태도를 개선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일이 바로 국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국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폭력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 양립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모든 권력을 패배시킬 수 있는 사상적 비판, 언어적 대결, 인권적 폭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다.
 

저항권이 숨 쉬고 있다고요. 천만에요. 지금은 우리의 저항권마저 빼앗으려는 '영혼이 죽은 시대'로 되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해외토픽감 같은 일이 벌어지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같지만, 그 내용은 천양지차라는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오늘이다.


스스로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정권을 비판하는 양심의 시민들을 잡아 가두는 이 현실이 바로 해외토픽감이다. 법치주의를 내세우면서 억지춘향격으로 법의 잣대를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사용하는 이 현실이 바로 해외토픽감이다.


'자유는 공짜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부여한 권력이란 것도 '공화국'이라는 터 위에서 공공의 것을 위해 행사되고 실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이 권력을 부여할 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폭력의 방임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폭력이고, 국가에 의한 폭력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 폭력이 부끄럽다는 것이고, 그 폭력의 행사는 국가의 브랜드에 먹칠하는 짓거리에 불과하다.


그것이 또한 자유민주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다. 국민에게 실망을 넘어 절망을 안기는 권력 집단이라면 그 권력은 존립의 가치가 없다. 그 권력은 사라져야만 한다. 그게 공화국의 원리다.


앞서 말한 그 지역의 단체장은 무엇이라고 답변했겠는가? '이런 싸가지 없는 놈, 넌 누구이고, 어디 살고, 뉘 집 아들이고, 뒷조사해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검찰에 고발해 잡아넣을 것'이라고 겁을 주었을까?


행여 어떤 분이라면 그럴지 모르지. 하지만 그 지역의 단체장은 욕먹는 게 억울했겠지만, "제가 부덕해서,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시민들의 어려움도 모르고 세수를 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제발 남 탓하지 말고 모든 게 제 잘못인 것을 탓하며 생각 좀 하고
살자. ⓒ 새전북신문 만평

제발 남 탓하지 말고 모든 게 제 잘못인 것을 탓하며 생각 좀 하고 살자. 국민을 향해 그만 협박을 가하라. 자폐증에 두려워하는 것은 알 바 아니지만, 국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지 마라. 육신은 춥지만, 마음이라도 따뜻하게 살자. 민주주의가 무엇인 줄도 모르면서 방송에 대고 자유를 말하고, 국민에게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민주주의를 운운(云云)하지 말라.

 

ⓒ 명덕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93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