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은 쥔 자가 쓰게 마련이지만…
- 그러나 양 날의 칼은 쓴 자도 다칠 수 있다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09-01-11)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무슨 뜻인지 알지. 예민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대로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화를 참지 못하면 우선 주먹부터 쓰게 되고 실제로 주먹이 효과적인 경우도 많아서 조폭사회가 바로 그 경우네. 어디 조폭사회 뿐인가. 조폭사회가 아닌 바로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는 현상이기도 하지.
법이 주먹처럼 마구 휘둘러지는 사회라면 비정상이지. 법을 조폭의 주먹처럼 휘두르는 세상이면 야만이네.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가끔 언론에서 법은 살아있다는 기사를 보고 법원이 세상 최후의 양심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기쁘기 한량없네.
법관은 누구인가. 법관은 무오류의 전인인가. 인간이지. 무오류는 신의 몫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네. 그러기에 인간인 법관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오판을 한 법관이 스스로 법복을 벗고 종교로 귀의한 경우도 있네.
법관이 법에 의해 판단을 하고 판결을 하지만 주체는 역시 인간이지. 그렇다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사의 역할이라는 말은 아니네.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법관이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마지막 보루라는 국민의 믿음은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되고 믿음이 사라질 때 국민은 법을 믿지 못하게 되겠지.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던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구속됐네. 입 달린 사람은 모두 한마디씩 하더군. 그만큼 '미네르바'라는 사람의 구속 여부가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됐지.
도대체 왜 '미네르바'는 구속이 됐을까.
복잡한 법 이론이야 전문가들의 몫이고 영장발부 이유를 보지.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있고, 외환 시장 및 국가신인도에 영향을 미친 사안으로서 사건의 성격 및 중대성에 비춰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법 위반)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유라고 판사가 말했네.
'미네르바'는 뭐라고 했을까.
"공익을 해할 목적이 아니라 금융위기로 손해를 본 서민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도움을 주려 글을 썼다."
"온라인의 특성상 정제되지 못한 표현들이 있었지만 그런 글들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거나 혼란을 초래할 목적으로 쓴 게 아니다. 순수한 의도였는데 혼란을 일으켜서 죄송하다."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국민들이 관심을 보였고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실력을 인정한 '미네르바'는 어떻게 될까. 미네르바가 미국이나 서구에서 태어났으면 어떤 대우를 받을까.
앞일을 말하면 귀신도 웃는다는 말이 있네만 '미네르바'의 운명은 법이 알아서 현명하게 판단할 문제고 다만 민초인 쭉정이들이야 쭉정이의 상식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겠지.
언론사에 오래 몸담았던 자네 상식은 어떤가. 꼭 잡아넣어야만 되고 그래야만 수사가 가능한가. 그가 지은 죄는 쓴 글인데 글이야 고스란히 모두 남아있지 않는가. 그러니 증거인멸도 못 할 테고 미네르바 정도 됐으면 도주도 못할 것 같네.
사람마다 판단의 기준은 다르게 마련이지만 증거인멸과 도주의 위험이 없을 것 같은데 하기야 칼 든 사람이 과일을 이렇게 깎던 저렇게 깎던 그거야 그의 마음대로 아니겠나.
이제 정말 겁나서 글쓰기 힘들 것 같네. 잡혀갈까 겁나느냐고 묻나.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매우 걱정을 하고 인터넷에 올린 글도 지우고 있다네. 이제 글도 맘 놓고 못 쓴다면 참 빡빡한 인생이라고 한숨이 나오네.
칼 쥔 사람이 신중하게 생각해야지. 입도 닫게 할 수 있고 글도 못 쓰게 할 수 있지만 생각이야 무슨 수로 막을 수가 있겠나. CT 촬영을 해도 생각을 찍을 수는 없겠지.
외국에서도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야. 왜곡 과장 편파 보도를 하는 형편없는 언론도 아닌 매체의 기사니 참고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쥐나 개나 모두 글로벌을 떠드는 세상인데 신경 좀 쓰이지 않을까 생각되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부터 볼까.
"미네르바 체포는 한국 정부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 언론과 인터넷 여론을 척결하려는 과정에서 터진 사건"
"이는 한국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것"
로이터 통신도 한 번 보세.
"한국 검찰이 경제슬럼프로 고전하는 정부를 전복시키는 우울한 예측을 내놓은 금융시장 예언자를 체포했다."
"한국 정부가 국내 경제전문가와 애널리스트들에게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위기라고 하면 틀리나. 제까짓 것들이 뭘 안다고 지껄이느냐고 치부하면 속은 편하겠지만 지금은 한국을 좁은 땅덩어리로만 생각하고 살 때가 아니어서 걱정이 되네. 대통령도 글로벌을 강조하는데 이건 해당이 안 되는지.
그러나저러나 신동아 기사는 어떻게 된 것인가. 미네르바는'신동아와 인터뷰한 적이 없다'고 한다는데 그럼 귀신이 인터뷰를 했단 말인가. 귀신이 곡을 할 일이군.
문제가 불거졌으면 동아일보는 문제 기사에 대해서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 서둘러 자초지종을 밝혀야 되지 않겠나. 참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네.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가.
'미네르바'를 구속한 칼 쥔 분들은 '미네르바'가 우리 경제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했는데 글쎄. 미네르바는 경제위기 징후에 경종을 울리고 MB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썼지.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환율 급등,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은 미네르바의 분석과 예측이 상당수 현실로 드러났고 이에 대한 찬성과 반대 토론은 민주사회의 정상적 여론형성 과정이라고 할 수 있네. 여기에 제동을 건 것이 바로 미네르바의 구속이라면 잘못된 생각일까. 여론 같은 거 만들지 말라가 아닐까.
미네르바로 말하자면 정책을 결정할 권한도 없고 다만 남보다 뛰어난 경제 감각과 분석력으로 우리 경제를 진단 예측했고 그것도 힘없는 사람을 위해서였다고 했네. 이걸 칭찬해 주면 안 되는지.
그동안 국민들에게 온갖 무지개 꿈을 꾸게 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주가 3000 돌파'를 말하고 747을 약속한 사람들도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말들이 있네. 뭐라고 대답할까.
그야말로 국민들이 사기꾼이라고 욕을 해도 말을 못할 정도의 황당한 경제성장을 들먹이며 국민을 현혹시켰던 사람들 지금쯤 양심의 통증이나 느끼고 있을는지 속 좀 들여다보고 싶네.
참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어. 아무리 인터넷 논객들과 네티즌들에게 혼이 났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한다고 국민들이 주저앉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정도를 걷는 것이야. 비상경제체제라고 해서 지하벙커로 기어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오히려 위기의식만을 느끼네. 겁준다고 해결이 되나.
국민이 신뢰를 하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야.
"기는 만수 위에 뛰는 백수가 있다"는 말과 '미네르바'를 강만수의 가정교사로 모시라는 우스개는 그냥 웃자는 소리만이 아닌 것 같네.
법의 집행은 법관의 양심에 따라 하는 것이겠지만 '미네르바'가 구속되는 과정을 보면서 칼을 꼭 저렇게 써야만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드네.
그러나 칼은 역시 쥔 자가 쓰는 것 아닌가. 그리나 양날의 칼은 자칫 쓰는 자도 다치게 한다네. 과연 법은 정의의 편인가. 국민은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번 던져보는 질문이네.
참 장기나 바둑을 둘 때 실수를 하면 물러주는 경우가 있지. 일수불퇴라는 것도 있고. 혹시 '미네르바' 구속을 물릴 수는 없을까. 그냥 한번 해 본 소리네.
2009. 1. 10.
ⓒ 이기명 / 칼럼니스트
덧붙여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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