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MLB 바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인데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기자가 쓴 것치고는 너무 인상적이어서 글쓴이의 허락을 받지 않고 퍼왔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마이니치신문 펌] http://mainichi.jp/select/world/news/20090601ddm007070108000c.html
From: 한국「탈권위주의」의 좌절 From:韓国 「脱権威主義」の挫折
지난달 29일에 서울에서 행해진 한국의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는 경찰추산 약 18만명의 시민이 모였다.「사상 최대 규모」의 장례식에서 드러난 것은「새로운 한국」을 꿈꾼 사람들의 깊은 좌절감이었다. 29日にソウルで行われた韓国の盧武鉉(ノムヒョン)前大統領の国民葬には警察発表で約18万人の市民が集まった。「史上最大規模」の葬儀が示したものは「新しい韓国」を夢見た人々の深い挫折感だ。
한국 정치는 오랫동안 권위주의에 지배되어 왔다. 군인 출신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대는 물론, 민주화 후에도 그런 경향은 계속 돼 왔었다. 韓国政治は長く権威主義に支配されてきた。軍人出身の朴正熙(パクチョンヒ)、全斗煥(チョンドゥファン)、盧泰愚(ノテウ)各大統領時代はもちろん、民主化後もその傾向が続いた。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氏의 「3김 정치」는 지역의 대표가 집중한 권력을 잡는 정치체제였다. 金泳三(キムヨンサム)、金大中(キムデジュン)、金鍾泌(キムジョンピル)各氏の「3金政治」は地域代表が集中した権力を握る政治体制だった。
0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한국 국민이 권위주의 정치에 아주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대학에도 가지 못하고,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 성공 이야기만으로도 많은 국민은 감동했는데, 권위주의의 아성인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것이니까 많은 지지를 모은 것은 당연했다. 02年の大統領選で盧武鉉氏が当選したのは、韓国国民が権威主義の政治に飽き飽きしていたからだった。貧しい家庭に生まれ、大学にも行けず、独学で司法試験に合格した。その成功物語だけでも多くの国民は感動したのに、権威主義の牙城である大統領選に挑戦したのだから多くの支持を集めたのは当然だった。
대통령 취임 후의 정권 운영을 봐도, 노무현씨가 권위주의를 버리고「새로운 한국」만들기를 진지하게 모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권력과는 인연이 없었던「386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사람들을 청와대 간부로 등용했다. 지금까지의 정권이라면, 절대 권위자인 대통령의「한 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을, 젊은 스탭들과 철저하게 논의하고 결론을 냈다. 大統領就任後の政権運営を見ても、盧氏が権威主義を捨て「新しい韓国」づくりを真剣に模索したことが分かる。政治権力とは無縁だった「386世代」と呼ばれる若い人たちを青瓦台(大統領府)幹部に登用した。これまでの政権なら、大統領の「鶴の一声」ですべてが決まるところを若いスタッフたちと徹底的に論議して結論を出した。
「386세대」는 90년대에 30대로, 80년대에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60년대에 태어난 층을 가리킨다. 한국의 궁핍한 시절과 전쟁을 알지 못하고, 고도 경제성장 속에서 자란「무서움을 모르는」 세대다. 「386世代」は90年代に30代で、80年代に大学で民主化運動に参加した60年代生まれの層を指す。韓国の貧しい時代や戦争を知らず、高度経済成長の中で過ごした「怖いもの知らず」の世代だ。
장례식중에 대로에서 울부짖으면서 마지막 이별을 아쉬워하는 여성. (REUTERS/Jo Yong-Hak) 葬式中に通りで激しく泣き叫びながら最後の別れを惜しむ女性 (REUTERS/Jo Yong-Hak)
강대국의 위협이나 회유에 굴하지 말고「할 말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스탭들의 소리를 노무현氏는 인내심 강하게 듣고, 실행하려고 했다. 그 결과, 일・미와의 마찰이 확대됐지만, 그것은「새로운 한국」만들기를 우선한 결과 생겨난 것 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大国の脅しや根回しに屈しないで「言うべき事は言う」と主張するスタッフたちの声を盧氏は辛抱強く聞き、実行しようとした。その結果、日米との摩擦が拡大したが、「新しい韓国」づくりを優先した結果生じたものとも言えた。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협력한 친일파를 조사하는「반민족 행위 진상규명법」제정으로 일본에서는 평판이 나빴지만, 기득권 세력과의 유착없이 태어난 노 정권이기에 가능했던 시도였다. 수구 보수파가「핵실험으로 이어졌다」고 비판하는 친북한 포용정책도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시종일관한 낡은 정책을 버리려고 한 결과였다. 그러나, 노무현氏의「새로운 한국」만들기가 성공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자신도「낡은 한국」으로부터 아주 완전하게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퇴임 후, 고향에서「농부」로서 사는 노무현氏를 덮친 것은, 낡은 한국을 상징하는「권위와 돈」의 함정에 빠진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日本の植民地統治に対する協力者を調査する「反民族行為真相究明法」制定の提案は日本では評判が悪かったが、既得権力との癒着なしに生まれた盧政権だからこその試みだった。保守派が「核実験につながった」と批判する親北朝鮮政策もイデオロギー対立に終始した古い政策を捨てようとした結果だった。しかし、盧氏の「新しい韓国」づくりが成功したとは言い難い。自身も「古い韓国」から完全には抜け切れなかった。退任後、故郷で「農夫」として暮らす盧氏を襲ったのは、古い韓国を象徴する「権威と金」の落とし穴にはまったことへの批判だった。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한국에서 가장, 깨끗한 정치가였는데, 왜」 「盧武鉉大統領。あなたは韓国で一番、きれいな政治家だったのに、なぜ」
「미안합니다.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서」 「ごめんなさい。最後まで支えられなくて」
분향소에 남겨진 시민들의 메세지의 일부다. 弔問所に残された市民のメッセージの一部だ。
「새로운 한국」만들기에 진지하게 임한 노무현氏는, 너무 진솔하기 때문에 비판에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물론 동정론도 있지만, 「지켜주지 못했다」고 느끼는 지지층의 좌절감은 뿌리 깊은 것처럼 보였다. 【서울에서 오오사와 분고】<끝> 「新しい韓国」づくりに真剣に取り組んだ盧氏は、真剣さゆえに批判に耐えられずに自ら死を選んでしまったのだろう。むろん同情論の高まりもあるが「置き去りにされた」と感じる支持層の挫折感は根深いように見える。【ソウル大澤文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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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전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하는 여성들. (c)AFP/Philippe Lopez 盧・前大統領の死を嘆き悲しむ女性たち(2009年5月29日撮影)。(c)AFP/Philippe Lopez
김해시 교외의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한국 전 대통령의 조문에 방문하고 눈물에 잠긴 지지자 (2009년 5월 24일 촬영). REUTERS/Korea Pool 韓国南東沿岸部の金海(Gimhae)市郊外の烽下(Bongha)村で、盧武鉉(ノ・ムヒョン、Roh Moo-Hyun)韓国前大統領の弔問に訪れ、涙にくれる支持者(2009年5月24日撮影)。REUTERS/Korea Pool
노·전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하며 오열하는 지지자 (2009년 5월 25일 촬영). REUTERS/Jo Yong-Hak 盧・前大統領の死をいたむ支持者(2009年5月25日撮影)。REUTERS/Jo Yong-Hak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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