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진 교수의 과학과 불교사상] 37. 상호 연관
- 지구 전체가 자율조정 기능 갖춘 생명체 -
- 연기와 공의 세계 태양계까지 확대 가능 -
우리가 미지의 천체로 여행을 하면서, 그 천체에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를 탐사한다고 하자.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구조와 행태를 보이는 생명체가 다른 천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지구의 생명체를 접하면서 얻은 경험만으로 그러한 탐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생명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제시하고, 이에 대한 답에 근거하여 (지상의 생명체와 다른 것가지 포함하여) 생명체가 존재하는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 항공 우주국에서는 1960년대 중반에 화성에 생물이 존재하는지를 탐사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참가하였던 과학자의 한 사람인 러브록도 이상과 같은 이유로 생명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생명체란 비평형의 상태 즉 낮은 엔트로피의 상태라고 결론내렸다. 다시 말하면 자유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낮은 엔트로피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생명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우리의 체온이 주위의 온도와 다르다는 것은 우리 몸이 환경과 비평형 상태에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비평형 상태 혹은 낮은 엔트로피의 상태는 음식물에서 얻는 자유에너지를 소비함으로서 유지된다).
그런데 생명을 이렇게 정의하고 보니 다름 아닌 지구가 거대한 생명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되었다. 지구는 그 전체가 낮은 엔트로피의 상태 즉 탈평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령 지구의 대기는 금성이나 화성의 대기처럼 화학적 평형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심한 탈평형의 상태에 있다. 한 예로 현재의 지구는 40억년 전의 원시 대기에도 없었고 다른 천체에는 없는 산소를, 생명 현상이 유지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조성비인 21%정도로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탈평형 상태를 유지하는 이러한 자율조정 기능은 생명체가 특징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인데, 지구 대기의 조성비나 지구의 온도 등 여러 곳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러브록은 지구의 생물권과 대기권, 대양, 토양까지를 포함하여 이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를 이룬다고 가정하였으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가이아라고 불렀다.
여기서 가이아라는 것이 정말 과학적으로 입증된 하나의 실체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이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일체의 사물은 오직 상호 연관이라는 연기의 망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어떤 사물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는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즉 어떤 존재가 지속적 존재 양상을 나타내어 마치 실체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그렇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며 그렇게 나타나게끔 인연이 성립한 것일 뿐이니 그 존재에 대해 자성을 상정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가이아를 논의하는 것은 가이아의 실체를 인정해서가 아니라, 가이아 이론이 제시하는 사물의 상호 연관성에 주목하기 위해서이다. 피상적으로 관찰한다면 생명이 아닌 지구는 자신의 머리 위에 그저 생명체들을 얹고 있을 뿐이다. 그런 시각에서 보았을 때 그들 사이의 연관성이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에 대하여 더 깊고 더 폭 넓게 이해하게 된다면, 그들 사이에는 그 이전에 알지 못했던 심오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가이아 이론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생명체는 지구라는 천체 위에서 그 환경에 일방적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바꾸면서 역동적 상호 연관의 관계를 꾸며 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생태계는 고도의 자율 조정 기능을 지닌 상호 연관의 체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이아 이론은 이 상호 연관의 체계가 생태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까지 확대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 연관의 체계는 지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태양계까지는 확대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세계의 완벽한 상호 연관성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연기와 공을 자연의 세계에서 이해하게 된다.
글: 양형진<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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