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으로 치료한다
심혈관계 질환 · 각종 신경증 등 자가치유 효과 입증… 발상의 전환 이끌고 두뇌 활성화에 이바지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심혈관계 질환·각종 신경증 등에 자가치유 효과가 있다는 사실도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물론 중증의 환자에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을 모아 생각을 바꿔보자. |
무엇인가를 골똘히 바라보는 이정욱(38)씨는 언뜻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 그가 지내는 곳곳에는 A4용지에 지름 10cm 정도의 검은색 원이 그려져 있다. 안방의 천장과 거실의 벽에도 검은색 원이 있다. 심지어 착탈식 용지까지 있어서 어디에서든 바라볼 수 있을 정도다. 그에게 A4용지의 검은색 원은 보약보다 낫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혈압은 고공 널뛰기를 거듭했다. 평상시 혈압이 170에서 200을 오가기 일쑤였다. 의사는 그에게 혈압약을 상복해야 합병증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학습효과가 좋다는 집중력 훈련을 받으면서 검은색 원 명상에 입문했다. 검은색 원 바라보기로 혈압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집중력 훈련으로 고혈압 다스려
그는 눈을 모으는 것으로 아침을 맞는다. 다른 고혈압 환자들이 혈압을 잡기 위해 아침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려고 할 때 그는 천정과 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면 원 둘레에 생체나 물체에 생기는 에너지장으로 알려진 ‘오라’(Aura)가 나타난다. 이씨는 오라가 형성될 때 “정돈된 마음이 원에 투사되어 나타나는 기분을 느낀다. 그 상태를 유지해 마음에 좋은 씨앗을 뿌리고 생기 있는 물을 주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틈틈이 “옴~, 옴~, 옴~” 하는 식의 만트라나 짧은 시를 되풀이해서 암송하기도 한다. 검은색 원 바라보기는 외부 정보를 입력해 처리하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의식이다. 더불어 혈압을 다스리고 스트레스를 날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명상으로 질병을 스스로 치료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명상은 하지 않더라도 명상의 이로운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래 전부터 명상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강력한 무기인 동시에 항노화 효과까지 있는 건강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신의 주의력을 몸 전체로 확산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데 쓰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명상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생리 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으로 주로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다른 하나는 심리 상태의 변화나 정서적인 문제에 미치는 영향으로 불안과 불안장애, 공황장애를 가진 정신과 환자들의 증상을 다룬다. 이런 연구에서 명상의 치료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명상이 혈관을 확장하고 혈압을 낮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미국 조지아 의과대학의 베론 바네스 박사는 명상으로 심장질환의 위험인자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명상이 혈압을 낮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바네스 박사팀은 32명의 건강한 성인을 명상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누어 심혈관 검사를 했다. 그 결과 휴식 동안에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수축기 혈압은 2.5mmHg가 감소했고 명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0.5mmHg 감소했다. 베론 박사는 혈관저항이 줄어드는 것은 호르몬이 영향을 끼친 때문으로 여긴다. 명상이 강력한 혈관수축 물질인 ‘엔도텔린(endothelin)-1’의 인체 내 농도를 감소시키거나, 강력한 혈관확장제인 산화질소(nitric oxide)의 체내 농도를 증가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결과는 명상이 신비의 치료약으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명상은 중독성 약물을 예방하고 중독자의 재활을 돕기도 한다. 또한 스트레스 관리에 효과적이며 불면증, 시험불안과 읽기장애 등을 보이는 아동을 치료하는 데 쓸모가 았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자기실현 증진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간단한 노력의 놀라운 성과다.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고 집중이 잘될 때 뇌파의 파동이 느려진다. 반대로 뇌파가 높으면 마음이 심란해지고 에너지 소모도 많아진다. 물론 명상을 하면 뇌파가 낮아진다. 뇌파가 낮아지면 외부 의식의 감각에서 벗어나 육체적으로 피로를 쉽게 극복하고 질병에 대한 예방 능력이 생긴다.
느린 뇌파의 효과… 베타 엔도르핀 분비
명상은 두뇌 활성화에도 이바지한다. 인간의 뇌는 기분이 좋으면 베타 엔도르핀(endorphin)을 분비하고, 화가 나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혈압 상승제 구실을 하는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한다고 한다. 그런데 명상이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중 가장 긍정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베타 엔도르핀을 생성하는 데 특효가 있다는 것이다. 명상을 생활화하면 혈당치가 억제되는 알파파 상태에 이르는 게 간단히 이뤄진다. 이런 효과는 상업적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뇌세포 활성화 장치를 통해 인위적으로 명상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장치에 대해 명상연구가인 박재준씨는 “명상은 프로그래밍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기기에 의존하는 것은 효과가 지속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진/ 김수병 기자
명상의 생리학적 효과는 하버드 의대 허버트 벤슨 교수가 35년 전에 처음으로 규명했다. 그 뒤 70년대에 하버드 의대 정신과 그레그 제이콥 교수는 명상훈련 그룹, 소리도서 독서 그룹 등으로 나눠 뇌파를 비교했을 때 명상이 마음의 평정을 가져오는 세타파가 많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1999년 하버드대 연구팀은 신경과학회 연례 학술회의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연구에서 학자들은 적어도 5년 이상 매일 명상을 한 사람 다섯명을 자기공명영상장치로 검사하면서 처음에는 다른 생각을 하도록 하다가 명상을 유도했다. 그 결과 감정 처리를 하고 심장 및 호흡기에 영향을 미치는 뇌의 일부가 그들이 명상을 하는 동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명상이 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펜실베이니아대학 신경학과 앤드루 뉴버그 교수는 불교 승려들이 깊은 명상에 이르렀을 때의 뇌 혈류 움직임을 추적했다. 팔 부위 정맥에 방사성 물질을 주입해 뇌가 명상 상태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그 결과 뇌의 혈류 순환에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달리 위스콘신대학 의학자 리처드 데이비드슨 교수는 명상을 할 때 뒷부분인 전전두 피질의 오른쪽은 활성이 떨어지고 왼쪽은 활성화되는 것을 찾아냈다. 전전두 피질의 오른쪽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활성화되고 왼쪽은 심리적 만족감을 나타낸다. 하버드 의대 벤슨 교수도 명상할 때 뇌 전체의 혈류 속도는 느려지지만 감정과 기억, 심박, 호흡 등을 관장하는 변연계의 혈액 흐름은 활성화되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런 가운데 명상은 정신과 진료를 위해 임상에 적용되기도 한다. 미국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는 종합 의료서비스 프로그램에서 전통적인 치료법과 함께 명상을 도입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배리 카셀리스 박사는 “명상은 환자에게 많은 부담을 주지 않고 부작용도 없으며 엄청난 치료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가능성을 말한 뒤 “환자들이 혼자서도 실천에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비용도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명상은 불치병의 치료법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증상 완화를 돕는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혈압과 심장 박동수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또한 환자들이 좀더 차분한 기분을 가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치료 효과를 높였다.
신경증 환자의 혈중 코티졸 수치 낮춰
국내에서도 명상이 신경증 치료에 적용되면서 임상실험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은 10여년 전부터 명상을 치료술로 적용하고 있다. 신경증 환자들과 함께 자율적인 명상을 실시하는 이정호 교수는 “명상은 노이로제 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준다. 명상의 효과를 느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효과는 반영구적이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교수팀은 신경증 환자 5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약물치료와 명상을 실시할 경우 우울감과 불안감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줄어들고 문제해결 능력과 인지·지각 태도가 좋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실험에서 명상은 스트레스에 관련된 혈중 코티졸 수치를 낮추는 데 특효를 발휘했다.
◁ 명상의 효과를 보여주는 뇌 영상. 명상 전에 활성화돼 있던 베타파(위 그림의 밝은 부분)가 명상을 실시하면 사라진다(아래 그림).
불면증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의사의 권유로 명상에 입문한 주부 정아무개씨. 불면의 밤으로 끔찍한 고통을 겪은 정씨는 약물로라도 잠에 빠지고 싶었다. “약물중독이 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약물 의존도가 높아질 즈음에 명상을 실시하면서 약을 복용하는 횟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명상의 치료 효과를 몸으로 느낀다는 정씨, 요즘에는 약물을 거의 복용하지 않아도 편안하게 잠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씨의 치료 효과 원인을 명상으로만 단정하기는 힘들다. 신경증으로 인한 고통을 떨치려는 ‘치료동기’가 높은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효과가 높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명상과 유사한 다른 치료법들과 비교하면서 치료 효과를 증명하는 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명상의 치료 효과는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명상은 깨어는 있지만 아주 고요하고 정적인 특성을 갖는 새로운 의식상태를 만들어낸다. 이때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적혈구 대사가 느려진다. 동시에 호흡과 맥박수가 감소하고 뇌혈류는 증가한다. 연구자들은 생리적인 변화로 인해 신진대사가 감소하는 이완상태에서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다른 한쪽에서는 무념무상의 몰입을 통해 둔감화(desensitization) 과정에서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몸이 느리게 움직이면서 괴로운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면서 불안을 떨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완과 둔감화 과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지적 재구조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마치 교통사고 후유장애 치료 등을 위해 가상현실을 사용하는 것처럼 명상으로 발상의 전환을 이뤄내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명상의 의학적 효능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명상의 자기치유(self-healing)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자체만으로는 효험이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그것의 효능을 믿기에 치유력을 발휘하는 일종의 플라세보(placebo·위약효과)로 인정하는 것이다. 명상의 효과를 인정하더라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명예교수 이호영 박사(한국결혼지능연구소 소장)는 “명상은 신경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증세를 면밀히 파악하지 않고 무턱대고 적용하는 것은 병을 키울 수도 있다. 현실감이 없는 사람들에게 명상치료는 매우 위험하다. 누구의 지도를 받기보다는 혼자서 치료하는 ‘자기요법’으로 의미가 있다”며 명상치료의 한계를 지적한다.
개인별 효과 달라… 자기요법으로 활용
어쨌든 명상이 정서적 장애에 놀라운 치유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자신이 내면 깊숙이 들어가 흐트러진 마음의 회로를 부분적으로 바로잡는 평안의 백신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 끝내 명상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어쩌면 초월적 상태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욕심인지도 모른다. 명상은 세상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의식에 가깝다. 과학적 규명이 이뤄진다 해도 뇌의 신비가 완전히 풀리지 않는 한 부분적인 증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선 명상의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집중과 무상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각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출처/한겨레 21, 2003년09월17일 제476호,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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