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는 문자를 돌아보기 전에 먼저 전제로 다짐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문자학이하는 학문이다. 도라는 문자를 들여다보려면 문자학이라는 학문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도라는 문자를 들여다보기 위하여 문자학이라는 학문을 이야기 할 때 우리가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이 한자漢字로 불리는 문자의 의미를 추적하는 문자학이다. 한자漢字만으로 도의 의미를 추적한다면 이상하게도 도의 진짜 의미를 완벽하게 추적할 수 없게 된다. 무엇인가 해명하지 못한 미진한 것이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간과해 버린다. 그들의 눈에는 한자漢字만 보이기 때문이다. 한자만을 추적할 때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미진한 것이 남게 된다는 사실을 되풀이하여 체험한 사람들은 과연 한자가 중국사람 만의 한자인가? 하는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진 한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한자에 대하여 어떻게 개념을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한다. 필자는 이러한 한자를 한자桓字라고 한다. 먼저 桓字의 의미를 추적하고 나서 부가적으로 漢字의 의미를 추적한다. 漢字의 의미는 추적해도 그만이고 추적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놀랍게도 桓字가 漢字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桓字는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漢字에 편입되어 그 본래의 의미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漢字의 역사를 따진다면, 후한後漢 때 허신許愼이 지은 <설문해자說問解字>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허신이 옛 글자 9,353자를 모아 해석하였다. 해석하였다는 이 점이 중요하다. 이전에 漢 때 양웅揚雄이 5,340자를 모아서 썼다. 이때 <설문해자>에서와 같은 해석은 없었다. 한나라 때 학자가 해석을 했다는 것은 동이東夷(지금 우리의 조상)의 문자를 하화夏華(지금 중국인의 조상)문자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하여 시도한 해석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夷자이다. 지나인에 의하여 오랑캐이자로 폄하된 이자가 양웅의 시대엔 엄연히 동이를 나타내는 문자이자 ‘춘분의 기’를 나타내는 문자로 쓰이고 있었다. 이때 오랑캐라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았다. 양웅이 찬하였다고 전해오는 <태현경太玄經>에 이쾌夷卦가 있는데, 이쾌에서 춘분의 기라고 하였다.
21세기는 문화가 주도하는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대에 우리문화가 세계문화를 주도하는 세력권에 들어가려면 중국이나 일본처럼 한자문화를 외면하고선 공염불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한글국수주의 정책을 과감하게 버리고 한자주도문화정책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때 한자주도는 漢字主導가 아니라 桓字主導이다. 설문해자시대 이전시대로 돌아가서 동이의 한자桓字를 찾아 지금의 漢字를 동이의 桓字로 재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桓字와 漢字가 갈라져 나가게 된 시대를 언제쯤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필자는 설문해자를 기점으로 하여 설문해자 이전의 문자를 桓字로 보고, 이후를 漢字로 본다.
이렇게 시대적인 개념정립을 하고 나면 출판 년대가 모호한 중국의 온갖 고전들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시대를 우리는 신화시대라고 한다. 중국 사람은 이 신화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빠져나오기를 꺼려한다. 역사시대로 나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상당히 많은 고시대의 문화와 전적들을 동이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아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날이 오게 된다면 중국 5,000년의 찬란한 문화 중에서 신화시대에 쌓아 올린 상당수의 문화유산이 동이문화의 거품문화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먼저 도마에 올려야 할 것은 <역경易經>과 <논어論語>이다. 필자는 <역경>을 桓字로 번역하여 <역경>이 신화시대에 우리 선조가 쓴 역사서임을 밝혀 본 바가 있다.
신화학자들은 세계 신화에서 풀 수 없는 3가지가 있고, 이들 신화시대에 세계의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쓰던 '인공언어'가 있었다고 한다. 이 인공언어는 지금 사라져 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 인공언어의 단서가 桓字와 우이 언어에 들어있다고 본다. 桓字와 우리 언어에서 이미 사라진 인공언어의 비밀이 풀린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우리의 국어는 이 桓字언어의 후예언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漢字라고 하여 버리는 우리 桓字는 절대로 버려서는 아니 되는 문자이다. 지금 우리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탓에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실력으로 내 것을 찾지 못하면서 내 것을 남의 것이라고 고집만 부리고 있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것과 하화족의 것을 구별하지 못하여 우리의 것을 하화족으로부터 찾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2. 桓字로 해석하는 道의 의미
道라는 문자도 우리가 하화족으로부터 찾아와야 할 문자 가운데 들어 있는 문자이다. 우리가 하화족으로부터 찾아와야 할 문자가 桓字인데, 이러한 문자는 부지기수로 많이 있다.
예컨대 동양철학에서 쓰는 말인 오행五行을 우리는 쉽게 우리의 실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를 오행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음식은 오행철학을 그대로 음식에 적용한 음식이다. 음식의 흰 색깔은 금을, 누런 색깔은 토를, 붉은 색깔은 화를, 검은 색깔은 수를, 푸른 색깔은 목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재료를 써서 음식을 만든다. 그러나 하화족-중국인의 음식은 기름으로 지지고 볶는 것 이외엔 별 특징이 없다. 오행철학이 반영되지 않은 음식이다.
또한 5라는 홀수는 중국인이 쓰지 않는 수이다. 우리는 홀수를 쓰고, 중국인은 짝수를 쓴다. 이러한 점이 우리와 중국인의 다른 점이다. 인간이 갖게 되는 사유체계思惟體系는 수리체계數理體系를 기본으로 하는데, 우리는 홀수의 수리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5라는 홀수를 선호한다. 그러나 중국인은 짝수의 수리체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당연히 5라는 수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2, 4, 6, 8, 10이라는 수리체계를 기초로 한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사람들은 우리처럼 홀수의 수리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사유체계가 우리에 가깝다. 우리가 어떠한 수리체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밝혀주는 것이 술을 마시는 습관이다. 술잔을 1, 3, 5, 7, 9로 비우는 것이다.
道가 우리사상을 나타내는 桓字임을 추적하기 위하여 桓字가 있음을 논증하였는데, 桓字의 관점에서 도라는 문자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는 도를 말하기 위하여 노자老子가 <도덕경道德經>에서 한 “도를 입에 올리면 이미 도가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한다. 도의 실체가 언어로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도의 속성이 드러나지 않고 숨으려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입에 올려 도를 말한다고 말해 보았자 그 실체를 찾지 못하여 공허해질 뿐이다.
도의 이러한 특성을 간파한 장자莊子는 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극단적인 비유법을 동원하였다. 그가 동원한 것이 실체가 있지도 않은 곤이라는 물고기와 붕이라는 새였다. 실체가 있지 않은 물고기와 새의 크기를 부풀리면서 도를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도를 깨닫지 못하고 장자로부터 언어 농락을 당했을 뿐이다. 곤이라는 물고기 뒤에는 놀랍게도 장자가 비유의 대상으로 쓴 중여곤衆艅鯀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붕의 뒤에는 朝鮮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중여곤이라는 인물에게서 조선이라는 문자가 태어났다. 붕이라는 새는 봉황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가 대통령의 문장으로 봉황을 쓰는데, 이 봉황이 바로 붕이다. 붕은 단군왕검시대의 고조선을 비유하는 말이고, 곤은 단군왕검에게 조선이라는 桓字를 물려준 한 인물이다. 곤과 붕으로 표현된 말의 실체가 바로 道이다. 그러므로 장자는 도를 곤과 붕에 비유하였던 것이다.
노자는 또 도에 대하여 “곡신불사谷神不死”라는 말을 쓴다. 곡신은 여자의 성性을 은유하는 말이다. 여성의 성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이다. 도에 대하여 이처럼 절묘하게 표현한 사람은 아마 노자 이 이외에 없을 것이다. 여자의 성이 죽는다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인류는 전멸을 면치 못하고 세상은 인간의 생명이 사라진 이상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곡신불사를 위하여 불철주야 애를 쓰는 것이 남성의 성이다.
곡신불사 하는 곳엔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거기엔 다만 생명의 파동만이 있을 뿐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도이다. 생명의 파동은 곧 생기生氣이다. 생기가 사라지면 생명체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생기가 없으면 생명체가 태어나지도 못하다. 생기의 원천이 바로 곡신이다. 생기는 최소화 하여 숨는다. 숨어 있으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도이다.
왜 도는 숨으려 하는가? 그것은 도가 무無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무는 도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도를 말하려면 무를 말하는 수밖에 없다. 도의 실체가 태어나는 곳을 <천부경天符經>에서는 무시無始라고 하였다. 무시란 시작이 없다는 뜻이다. 무시한 곳은 이理만 있고 이와 표리관계에 있는 기氣가 없는 곳이다. 그래서 무기無氣한 곳이다. 그러나 기가 없는 이는 있을 수 없으므로 무는 무존재無存在한 곳이다. 물리학에서는 무존재한 곳을 무공간대 무시간대라고 한다. 공간과 시간이 없는 곳이다. 이곳이 도가 있는 곳이다.
도를 길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가 길로 표현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무無에 심心이 반영하여 심안心眼에 길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길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가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시一始이다. 시始의 끝에는 덕德이 있다. 말하자면 도는 사라지는 곳에 있고, 도의 반대편 드러나는 곳에 있다. 드러나는 덕이 있음으로 해서 보이지 않는 도의 실체가 있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도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이理가 되고 덕德은 눈에 드러나는 기氣가 된다.
그렇다면 도와 덕 사이에서 어디까지를 도로 보고 어디까지를 덕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무조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도로 본다면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무에서도 실체 없는 움직임이 감지되어야 도이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이를 양자라고 한다. 양자는 최초의 최소 단위의 공간이자 파장이다. 공간으로 보면 파장이 없고, 파장으로 보면 공간이 사라지는 최소단위이다. 이 공간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다. 따라서 정신의 집이자 영혼의 집이 된다. 도가 스스로 도를 감지하는 이유가 그곳이 정신의 집이자 영혼의 집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도가 있음을 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우리의 사유체계를 통해 본 道
앞에서 도와 관련하여 동원되는 여러 문자를 보았다. 道, 無, 理, 一始, 無始, 德, 氣, 偶數, 奇數, 衆艅鯀, 朝鮮, 心, 心眼, 谷神不死, 天符經, 桓字와 같은 문자들이 桓字의 카테고리 안에서 우리의 문자로 쓰이고 있다. 이 글에서 이러한 문자를 모두 漢字라고 하여 쓰지 않는다면, 우리의 언어는 죽은 언어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유체계 안에서 이러한 문자들이 쓰였는가를 따져서 그 사유체계가 중국인의 사유체계가 아니라면,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쓰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道에 대한 사유를 위하여 위에 인용한 桓字들이 무리 없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도는 사유 안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가시적으로도 얼마든지 쓰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이름에 쓰인 도를 보기로 한다. 우리주변에서 가깝게 볼 수 있는 것이 도봉산道峰山이다.
도봉산은 道라는 문자가 山에 쓰인 경우이다. 숨기만 하고 드러나지 않으려 하는 속성을 가진 도가 산으로 형상화 하였다. 자연이라는 대상물에 대하여 인간의 철학적인 사유가 반영된 경우이다. 그러므로 도봉산은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어야 할 산이다. 아마 옛날엔 도봉산이 숨어 있는 신성시하는 산이었을 것이다.
선조가 남긴 글을 일별하니, 도봉산 따로, 삼각산 따로 시문을 지어 남겼고, 그것도 조선기 후대에 집중되어 있다. 당시가 성리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하였던 때라, 도를 의미하는 도봉산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글을 쓰다 보면 도교 쪽으로 빠지지 않을까 우려하여 이를 경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도 도봉산에 대한 기록을 보면, 도봉산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지 않고, 삼각산에 치중하여 기록하면서, 도봉산을 경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도봉산에 대하여 의미를 정립하지 못한 때문이다. 아직도 도봉산에 대하여 깊이 있는 글이 나오지 못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사유체계를 반영하는 글을 쓰지 못한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의 사유체계가 정립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사유체계와 관련하여 도봉산에 대한 생각의 일단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우리의 사유체계는 불교나 유교나 기독교적인 사유체계가 아니라 우리가 오래 전부터 전수해 오는 <천부경>적인 사유체계이다. <천부경>적인 사유체계는 순환론적인 사유체계, 유기체론적인 사유체계, 조화론적인 사유체계이다. 이러한 사유체계를 갖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수론적奇數論的인 수리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1, 3, 5, 7, 9의 수리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수론적인 수리체계라야 순환론, 유기체론, 조화론의 사유체계로 갈 수 있다. 이러한 철학체계로 가려면 1과 3의 수리체계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발상이 있어야 한다.
「천부경」에서는 이러한 수리체계를 일석삼극一析三極이라고 하였다. 일석삼극이 바로 우리 사유체계의 기본이 된다. 일석삼극이란 1이 3으로 분화分化한다는 이론체계이다. 1과 2는 대립하는 수이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특성이 있다. 애초부터 1과 2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흰 콩과 검은 콩을 섞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 흰 콩은 흰 콩끼리 모여 있고, 검은 콩은 검은 콩끼리 모여 있다고 한다. 자연계에 끼리끼리 모이는 유유상종類類相從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질이 다른 1과 2는 대립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 만약 1의 힘이 2의 힘보다 미소하나마 세다면 1이 무한대로 확장하여 폭발한다. 반대로 2가 1보다 소량이나마 힘이 세다면 무한소로 축소하여 소멸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대립을 조정해 주는 조화라는 제 3의 힘이 존재한다. 3이 있어서 1과 2를 조화하게 한다는 이론이 일석삼극론이다. 이를 음양론으로 말하면 1은 양이고, 2는 음이고, 3은 조화이다.
음양조화에 이러한 일석삼극의 수리체계가 있다. 3이 하는 역할이 바로 신이 하는 역할이다. 이를 힘으로 말하면, 1은 강剛이고, 2는 유柔이고, 3은 중용中庸이 된다. 강이 우세하면 확대하려고만 하고, 유가 우세하면 축소하려고만 한다. 여기에 중용이 있어 중력中力이 작용한다. 이리하여 힘의 조화가 일어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시끄럽고 불안하기만 한 것은 우리의 고유한 사유체계대로 사유하지 않고 대립하고 투쟁하기 때문이다. 대립과 투쟁의 끝은 폭발하거나 소멸한다. 우리는 이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서구인이나 하화족의 사유체계는 대립과 투쟁의 사유체계이다. 미국 대통령 부시가 이라크와 이란과 북한을 향하여 행한 발언 ‘악의 축’은 바로 대립과 투쟁의 사유체계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서구인의 사유체계를 이해하고 이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대화와 타협을 강조한다고 해도 저들의 사유체계를 근본적으로 뒤집을 수 없다. 우리가 ‘악의 축’이라는 관념적 사고를 억제하려면 우리의 힘이 미국과 대등해지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므로 부시가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약속에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유효기간이 경과하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국란이라는 재앙뿐이다.
도봉산의 도에는 우리 사유체계의 시발점이 되는 일시一始라는 의미가 있다. 이것이 곧 도이다. 도봉산이 일시가 됨으로 해서 삼각산이 석삼극析三極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도봉산이 우리 사유체계의 1이 되고 삼각산이 우리 사유체계의 3이 되는 것은 우리 선조가 「천부경」적인 사유체계를 지명에 활용한 때문이다. 이런 사유체계는 지금으로부터 9,800년 전에 한인천제가 세운 한제국桓帝國과 6,000년 전에 한웅천왕이 세운 배달나라倍達那羅를 규율하던 사유체계-국가이념이었다.
도봉산과 삼각산과 대응하는 산으로 이들 산 주변에 불암산과 수락산이 있다. 불암산은 ‘불알산’이다. 불의 알이라는 뜻이다. 즉 불을 뜻한다. 수락산은 물이 떨어지는 산이다. 도봉산과 삼각산에 일석삼극이라는 철학체계를 부여하고, 이어서 불알과 물방울이라는 오행의 기본요소를 도봉산과 삼각산 주변에 배치함으로써 도봉산과 삼각산에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게 한다. 도는 1이므로 오행이 물이다. 삼각산은 다른 이름이 화산華山이므로 불이다. 물과 불은 음이나 양의 성질을 띠지 않는 자연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다.
필자는 불암을 불교적인 의미의 불암佛巖으로 해석하지 않고, 소리가 갖는 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해석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이러한 해석 방법이 桓字가 갖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해석하는 방법이다. 우리의 문자와 말에는 이러한 방법으로 해석을 해야만 풀리는 부문이 많이 있다. 따라서 漢字를 해석하듯이 해석하면 아무 것도 찾지 못하는 하나마나한 해석이 되고 만다.
일석삼극의 사유체계가 발전하여 운삼사성환이 된다. 이 사유체계는 고조선시대를 규율하던 사유체계였다.
도봉 삼각 불암 수락의 네 산을 하나로 묶으면 4라는 수리체계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4는 3이 발전하여 완성한 4이다. 「천부경」에서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이라는 사유체계를 차용한 경우이다. 운삼사성환은 3이 확대하여 4를 완성한다는 논리이다. 예컨대 해와 달과 지구가 태양계의 궤도를 공전하면서 사계절을 완성하는 이치가 운삼사성환이다.
서울을 도읍으로 정한 당시의 사대부들은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사유체계를 습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러한 사유체계를 잘 활용하여 한양을 도읍으로 정했다.
한양漢陽의 漢이 은하수이고, 陽은 태양이다. 서울에서 은하수는 한강이고, 태양은 서울이다. 삼각산은 해와 달과 북두칠성이 지나가는 길이고, 인수봉 앞에는 북극성이 떠 있다. 한강 넘어 관악산 뒤에는 삼신산-지금의 삼성산이 있다. 왜 여기에 삼신산을 정했을까? 관악산冠岳山의 冠을 관을 쓰는 최고의 머리로 보면 하나라는 의미가 도출된다. 하나 이전은 도이고 하나 이후는 덕이다. 도는 무無로 가고, 덕은 유有로 간다. 관악산이 하나의 의미를 갖기 때문에 그곳에 셋의 의미를 갖는 삼신산을 정한 것이다. 이는 一析三極이라는 「천부경」적 사유에서 나온 것이다.
4. 도의 역사성
결론을 말하면, 우리 사유체계의 밑바닥에는 도가 개념화 되어 있다. <천부경>적인 사유체계가 있기 때문에 도의 개념화가 가능하였다. 우리처럼 <천부경>이 없는 하화족은 노자가 나와서 <천부경>을 풀어 쓴 <도덕경>을 내놓았고, 또 장자가 나와서 「도덕경]을 풀어 쓴 <장자>을 내놓았다. 우리에게 <천부경>이 있으므로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천부경>적 사유는 그 역사가 1만년이나 된다. 한제국을 세운 한인천제 때부터 구전되어 오던 것을 배달나라의 한웅천왕 때 신지혁덕이 이를 녹도문자鹿圖文字로 기록하였고, 신라 말에 최치원이 漢字로 해석하였다.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는 물론이고 또 한글이라는 문자에서도 <천부경>적인 사유체계를 찾아낼 수 있다. <천부경>에는 天地人이 있다. 어간에 쓰는 자음子音은 천에 해당하고, 받침에 쓰는 자음은 지에 해당하고, 모음은 인에 해당한다. 또한 한글의 28자는 1에서 시작한 27이다. 27은 3×9이다. 3은 1의 확대이고, 9는 3의 확대이다. 일석삼극의 논리로 한글의 수리체계가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한웅천왕은 일석삼극에서 일도삼덕一道三德을 만들었다. 천지인삼신天地人三神을 개념화한 것이다. 이를 천부天符라고 하였고, 이를 가르치는 것을 태백진교太白眞敎라고 하였다. 단군왕검은 일석삼극의 사유체계를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의 사유체계로 발전시켜 일도사덕一道四德을 만들었다. 사덕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이를 가르치는 것을 덕교德敎라고 하였다. 이로써 원형이정을 주제로 하는 <역경>-<주역>이 중국 사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다 <천부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때 1은 도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