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구 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속에 十方(宇宙)를 머금고
화엄(華嚴)에서 나투는 부처님의 세계는
티끌 먼지 하나에서부터
온 宇宙 全切에 이르기까지
대소장단(大小長短)의 어느 것에나 差別 없는
법계(法界)이면서 大小長短으로 나툽니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불성(佛性/宇宙法界 緣起의 場)이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연기법계(緣起法界)
房 안에 있는 먼지 하나, 우리는 이것에 對해서 事實 關心조차 없습니다. 關心이 있다면 귀찮은 淸消의 對相일 때 뿐일 것입니다. 대체 우리의 關心은 언제나 어디에 있을까요? 더 重要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먼지 하나에 있지 않음은 分明합니다. 그리고 먼지는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래서 關心조차 끌지 못하는 티끌 하나에 對한 이야기보다 우리 自身에 對해 먼저 이야기를 하고 나서 티끌 하나에 對해서 다시 生覺해 보기로 합시다.
예를 들어 洪吉童이라는 사람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고 그 사이에 어떻게 살다 갔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分明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는 다른 個別者로서 洪吉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에게도 무상(無常), 무아(無我)는 그 삶의 본 바탕입니다. 그리고 그 無常, 無我는 시공(時空)으로 制限되지 않는 언제 어디서나 참으로 있는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다.
때문에 個別者로서는 태어나고 죽는다고 하지만 本來面目은 時空에 遍在해 있는 모습으로 언제나 있습니다. 홍길동의 無常, 無我나 宇宙 全切의 無常, 無我는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홍길동이라는 個別者의 制限된 時空에서도 그 自體로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홍길동의 現狀은 나고 줒는 모습 속에 있으나 이는 因緣和合에 의한 잠시 모습일 뿐이며 無常, 無我의 삶은 그 自體로 宇宙의 총체상(總體相)이라는 事實입니다. 곧 個別者 홍길동은 宇宙의 部分이 아닌 宇宙 그 自體입니다.
만일 홍길동이 宇宙 自體가 아니라면 宇宙에서의 혼길동은 단지 部分일 것이며 이때에는 部分과 全切, 部分과 部分은 斷絶을 뜻하게 되어 단멸상(斷滅相)이 되거나, 部分 없는 全切도 可能하게 되어 全切의 常住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고 현수 법장스님께서는 <화엄경일승교의분제장>에서 서까래와 집의 關係를 예로들면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아울러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비추어 봐도, 홍길동이 있음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존재할 수 있고, 홍길동이 없음으로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제 오늘도 쉬지 않고 많은 存在들이 태어나고 죽어가고 잇습니다. 또한 그것과 相關 없이
우리 自身을 보면 늘 있는 대로 있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知覺은 늘 同一한 모습을 對相으로 해야만
認識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깊은 修行을 통해 時空의 制限된 同一領域을 設定해 놓고 事物, 事件을 把握하고 있는 意識을 넘어설 때, 우리는 홍길동 한 사람의 태어남에서 새로운 宇宙의 태어남을 볼 수 있으며 홍길동 한 사람의 죽음으로서도 한 宇宙의 죽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태어남은 죽음과 같이하고 죽음은 태어남과 같이하는
생멸동시(生滅同時)의 變化들이 無限히 겹쳐진 宇宙, 곧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를 보게 될 것입니다.
홍길동이라는 사람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티끌 하나도 無常, 無我이며 진여공성(眞如空性)으로써 時空을 넘어 언제 어디서나 제 모습을 나툽니다. 때문에 인연화합(因緣和合)의 場에서 하나라고 보면 티끌 하나라고 할지라도 그 참된 性稟은 宇宙의 모든 存在를 감싸고도 남습니다.
이것과 저것이 있기 때문에 티끌 하나의 生滅이 한 宇宙의 生滅과 아무런 差異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티끌은 티끌이며 홍길동은 홍길동으로 個別者로서의 特殊한 모습을 잃지 않으니,
그 모습 그대로가 眞如空性인 無常, 無我의 나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바람 한 점 이는 것도 宇宙의 모든 움직임이며, 흩날리는 나뭇가지의 律動도 그대로 온 宇宙를 貫通하는 법계신(法界身)인 비로차나불(毘盧遮那佛)의 법음(法音)입니다. 이와 같은 無常, 無我의 超越. 그리고 現狀의 同一性과 差別性이 그대로 드러난 世界를 시작도 끝도 없는[無始無終] 緣起의 法界라고 합니다.
現狀 그대로가 불성(佛性/眞空如來藏)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華嚴에서 나투는 佛性의 世界는 티끌 먼지 하나에서부터 온 宇宙 全切에 이르기까지 대소장단(大小長短)의 어느 것에서나 差別 없는 법계(法界)이면서 大小長短으로 나툰다는 事實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特히 時空의 制限을 넘어선 時作도 없고 끝도 없는 데서 불성(佛性)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正和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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