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一切塵中亦如是 모든 티끌마다 우주를 품고있네

장백산-1 2013. 7. 7. 17:15

 

 

제10구 一切塵中亦如是
 모든 티끌마다 또한 그러하네
 
무명(無明)의 한 生覺이 온 宇宙법계(法界)를 무명화(無明化)하며
진여(眞如)의 빈 生覺도 온 宇宙法界의 울림입니다.
無常의 흐름을 分明히 아는, 마음이 깨어 있는 瞬間이
법신(法身)의 나툼입니다.
이때에는 티끌 하나하나도
總體的  宇宙法界의 빛인 비로차나(毘盧遮那 Vairocana)佛의 나툼입니다. 
 
 
티끌 하나가 우주의 몸
 
앞서 이야기한 始作도 없고 끝도 없는 世界가

본래면목(本來面目)의 빛인 毘盧遮那佛의 世界이며 우리들의 현존(現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毘盧遮那 부처님의 얼굴과 衆生의 얼굴입니다.

毘盧遮那 부처님의 얼굴인 진여법계연기(眞如法界緣起)의 場에서

衆生은 무명업장(無明業障)에 依해 시비분별(是非分別)을 일삼으며 歪曲된 삶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 關係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는 한 마음[一心]에 두 가지의 면목(面目)을 세워 이야기 하고 있으니, 毘盧遮那 부처님의 本來面目인 진여문(眞如門)과 本來面目인 毘盧遮那 부처님을 떠난 것은 아니지만 無明業障에 依해서 갖가지 是非分別로 差別相을 나투는 생멸문(生滅門)이 그것입니다.

이 두 얼굴의 根幹인 眞如空性과 無明業障도 여기서 이야기하는 모든 티끌의 이야기와 다름 없습니다.

 

 

始作도 없고 끝(終)도 없는 世界는 언제 어느 때를 占有한 時空의 現存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이면서 同時에 언제 어느 때를 넘어선 무시무공(無始無空)의 現存을 말합니다. 無明의 現存과 眞如의 現存은 공성(空性)의 바탕에서는 完全히 같은 것으로, 삶의 모든 곳, 곧 몸과 마음이 活動하는 모든 곳에서 恒常 같이 합니다.

 
때문에 한 生覺이 일어남이 眞如이기도 하고 無明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은 無常, 無我의 법계신(法界身)과 아무런 差異가 없습니다. 다만 無明의 이어짐은 修行에 依해서 眞如의 빛을 回復할 때 사라지는 데서

다를 뿐입니다. 無明의 한 生覺이 온 法界를 무명화(無明化)하며 眞如의 빈 生覺도 온 法界의 울림입니다.

 

 

이것을 <원각경(圓覺經)>에서는 "한 몸이 淸淨하면 온 몸이 淸淨하고 온 몸이 淸淨하면 한 몸이 淸淨하고, 한 몸이 물들었으면 온 몸이 물들었으며, 온 몸이 물들었으면 한 몸이 물들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生覺이 일어나고 사라짐이 單純히 自己 한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波動이 아니라 宇宙法界의 모두에게

미치는 波長이며 이것이 매 瞬間 새롭게 宇宙法界를 創造하고 있습니다. 한 生覺의 波動, 한 몸짓의 波長이

그대로 世界의 創造이며 이것에 依해서 宇宙世界가 하나 되어 있습니다.

 

 

無明業障의 무시(無始)도 저 먼 옛날의 어떤 時点에서의 無明이 아니라 새롭게 創造되고 있는

바로 지금에서 無常의 흐름을 놓치는 것일 뿐입니다. 無常의 흐름에 分明할 때가 眞如空性이 빛으로

나투어 毘盧遮那佛의 華嚴世界인 宇宙法界緣起가 펼쳐지고 있는 것을 如實히 아는 때 입니다.

깨어 있는 마음이 作用하는 바로 지금 여기 이 瞬間이 宇宙法界身의 나툼(現存)입니다.

 
이때에는 티끌 하나하나도 總體的 宇宙法界의 毘盧遮那佛의 나툼이 됩니다. 티끌 하나가 온

宇宙法界의 原因이며 온 宇宙法界가 티끌 하나를 만들기 위한 原因으로 存在합니다. 따라서 原因으로

볼 때나 結果로 볼 때나 티끌 하나하나는 宇宙 全切의 몸으로 있습니다. 티끌 하나하나가 自身의 全體를

드러내서 宇宙를 創造하고 宇宙의 모든 存在도 自身의 全體를 드러내서 티끌 하나를 創造하고 있는 同時

인과(因果)의 眞如空性이 참된 宇宙法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因果關係에서 볼 때 일(一)과 다(多)의 關係는 全的으로 相互 포섭인 상입(相入)과 相互 同一性인 상즉(相卽)의 世계에서 하나 속에 全切가 들어 있으며 하나가 그대로 全切가 됩니다. 또한 個體 하나하나는 自身의 빛을 온 宇宙法界로 發散하여 法界 全切를 自身의 몸으로 하고 있으니 한 個體의 몸이 그대로

宇宙法界身(法界身)이 됩니다.

 
이와 같은 뜻에서 보면 하나하나마다 全切의 모든 生命의 빛이 겹쳐(중첩되어) 있으니 하나가 一切가 되며 다른 하나하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아가 하나가 설 때 그것을 中心으로 一切가 제 모습대로 설 수 있으니 하나는 단지 自身의 하나로만 存在하는 것이 아니라 온 宇宙의 中心이 돼서 一切가 제 모습을 갖게 하는

하나가 됩니다.

 

主人으로서의 하나가 될 때 客으로서의 모든 것이 成立되는 關係에서

하나와 全切는 相卽과 同時에 相入의 華嚴緣起(華嚴緣起)를 이루고 잇습니다.

이것은 하나인 全切를 相互關係를 이루고 있는 낱낱의 本來面目이 虛空이기 때문입니다.

 
正和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