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一卽一切多卽一

장백산-1 2013. 7. 7. 18:21

 

 

제8구 一卽一切多卽一

 
하나 그대로 모든 것이며 모든 것 그대로 하나다
 
이것과 저것을 나눌 수 없는
하나의 宇宙法界 緣起의 장(場)에 함께 있습니다.
우주법계(宇宙法界)의 셀 수 없는 많은 것들의 관계(關系)도
이와 같습니다.
그 낱낱이 宇宙法界를 이루는 원인(原因)이면서
同時에 宇宙法界의 모든 것의 原因이 되어 그 낱낱의 얼굴이 存在합니다.
일체만물(一切萬物)이 이 연기실상(緣起實相)의 場에서
完全히 同一한  한 生命을 이루는
전체(全체)이며 부분(部分)이고,
部分이며 全體입니다.
 
 
상즉(相卽)의 世界
 
華嚴에서 말하는 緣起의 다른 表現 가운데 하나인 相卽의 世界에 들어가 봅시다. 앞 장과 이 장에사

중(中, 相入)과 즉(卽, 相卽)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이 모두가 緣起法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差異가 없습니다. 다만 緣起法의 內容을 서로 다른 側面에서 설명하고자 할 뿐으로 相入과 相卽은

서로가 서로를 成立시키는 原因이 됩니다.

 

 

다시 이것과 저것의 상관관계(相關關系)를 가지고 이야기해 봅시다. 이것과 저것이 서로 原因과 結果가

되어서 이것과 저것이 있다고 할 때 이것과 저것은 나눌 수 없는 하나된 場에 함께 있습니다. 宇宙法界의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의 關係도 이와 같습니다.

 

 

그 낱낱이 宇宙法界를 이루는 原因이면서 同時에 宇宙法界의 모든 것의 原因이 되어 낱낱의 얼굴이 存在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있고 이들은 因緣의 場에서 하나되어 있습니다.

하나가 그대로 모든 것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울러 이 하나는 모든 것의 原因이 되어서 存在하고 있습니다.

 

 

앞의 句節에서 말했듯이 結果가 原因을 만들며 結果가 除去될 때 原因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곧 하나하나가 總體的인 原因이 되어 모든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은 하나의 總體的인 原因에 全的으로 依持하게 되어 一切가 그대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의 部分이 全切가 되지 않는다거나 全切가 그대로 하나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全切와 部分은 서로서로 獨者的인 要素를 갖게 되므로 緣起法에 맞지 않습니다. 스렇게 되면 部分 없이도 全切가 있을 수 있으며 全切를 이루지 않고도 部分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는 矛盾에 빠지게 되고 맙니다.
 
나와 너가 서로서로 原因과 結果가 된다는 점에서, 나가 原因이 되어서 네가 있게 됐을 때 너는 스스로 存在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 依한 結果이기 때문에 너 스스는 공(空)입니다. 이 反對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아가 存在들의 場을 無限히 늘린다고 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모든 存在는 存在하되 空으로 存在하고 잇습니다. 이것을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는 

色 그대로 空이며, 空 그대로 色[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存在는 상즉(相卽)으로 同一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곧 모든 個體는 獨立된 實體를 갖지 않고 공(空)인 연기법(緣起法)에서 自身을 나투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一切 萬物은 연기실상(緣起實相)의 場에서 完全히 同一한 生命을 이루는 全切이며 部分이고 部分이며 全切임을 自覺하고, 修行이 깊어져서 分別된 自我意識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때 깨달음의 場인

비로차나불(毘盧遮那佛)인 宇宙法界身의 世界가 우리 앞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華嚴에서 말하는 緣起法의 다른 表現인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智慧와 慈悲가 完成됐다고 하는 것은 모든 衆生이 完全히 부처님의 세계를 具現할 때입니다.

 

 

여기에서 菩薩의 限없는 誓願이 있게 되는데 이 서원조차도 同時에 自己 完成의 길입니다. 때문에

菩薩들께서 모든 중생들이 열반의 세계에 들 때까지 實踐하는 멈춤 없는 慈悲行은 다른 이에 대한

慈悲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베푸는 慈悲로, 이는 穩全한 生命의 場을 이루는 바탕입니다.

 

 

 

 正和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