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삼귀의계는 우리 안에 내재한 세부처께 귀의하는 것

장백산-1 2013. 8. 26. 14:20

 

 

 

[종광스님의 육조단경 강설] 8. 삼귀의계는 내 안의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 |육조단경(六祖壇經)

갠지스 | 조회 25 |추천 0 |2011.09.03. 16:07 http://cafe.daum.net/okryunam/Nth4/9 


三歸依戒는 내 안의 부처님께 歸依하는 것

法身佛은 깨끗한 우리의 마음이요
化身佛은 그 마음 따라 일어나는 것

報身佛은 성불할 우리의 완전무결함
自身이 光明이니 自身에게 歸依해야



10. 삼신(三身)

선지식들아,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모양 없는 계(無相戒)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삼신불을 보게 하리라. “나의 색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善知識 須自體 以受無相戒 一時逐惠能口道 令善知識見自三身佛 於自色身 歸依淸淨法身佛 於自色身 歸依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 歸依當來圓滿報身佛)

가장 처음에 받는 계(戒)가 삼귀의계(三歸依戒)입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스님들 혹은 승가에 귀의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삼귀의계입니다. 그런데 혜능 스님은 삼귀의계를 조금은 달리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정법신불에 귀의한다는 말은 내 안에 내재돼 있는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한다는 뜻이고 천백억화신불에 귀의한다는 말은 부처님의 화현인 내 몸의 다양한 기능과 작용에 귀의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당래원만보신불에 귀의한다는 것은 미래에 성불할 우리의 완전무결함에 귀의한다는 말입니다.

중국 신흥현 국은사 전경. 혜능 스님의 생가터에 세워진 국은사는 혜능 스님이 열반하신 곳이기도 하다.


색신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의 세 몸은 自己의 法性 속에 있고 世上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迷惑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自己 色身 속의 세 性稟의 부처는 보지 못하느니라. 선지식들은 들으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自己의 色身에 있는 自己의 法性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하리라.(色身是舍宅 不可言歸 向者三身 在自法性 世人盡有 爲迷不見 外覓三身如來 不見自色身中三性佛 善知識聽 與善知識說 令善知識 於自色身 見自法性 有三身佛)

色身은 부처님이 깃들어 있는 집입니다. 부처님을 모신 法堂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歸依 對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색신이 아닌 내 안에 內在돼 있는 세 가지 몸에 귀의해야 합니다. 바로 淸淨法身佛, 千百億化身佛, 圓滿報身佛입니다. 이 세 부처님은 내 마음 속에 있으며 모든 사람에게 平等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부처님이 되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內在돼 있는 부처님이 부처님으로 作用할 수 없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헐뜯고 미워하고 탐욕을 부리는 까닭으로 중생의 어두운 業緣이 부처님의 밝은 光明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內在된 부처님을 드러낼 수 있는 方法은 무엇일까요. 부처님의 行動을 그대로 따라하면 됩니다. ‘금강경’에 “여래(如來)는 시진어자(是眞語者)이며 실어자(實語者)이며 여어자(如語者)이며 불광어자(不狂語者)이며 불이어자(不異語者)니라”라고 했습니다. 如來는 眞實을 말하는 분이시며, 價値 있는 말만 하는 분이시며, 事實만을 말하는 분이시며, 거짓된 말을 하지 않는 분이시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말도 이러해야 합니다.

이 세 몸의 부처는 自性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法身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性稟은 本來 스스로 깨끗하여 만 가지 法이 自己의 性稟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生覺하면 곧 악을 行하고 모든 착한 일을 生覺하면 문득 착한 行動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法이 다 自性 속에 있어서 自性은 恒常 깨끗함을 알라. 해와 달은 恒常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日月星辰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智慧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此三身佛 從性上生 何名淸淨法身佛 善知識 世人性本自淨 萬法在自性 思量一切惡事 卽行於惡 思量一切善事 便修於善行 知如是一切法 盡在自性 自性常淸淨 日月常明 只爲雲覆蓋 上明下暗 不能了見日月星辰 忽遇慧風吹散 卷盡雲霧 萬像森羅 一時皆現)

어떤 것이 깨끗한 法身, 卽 淸淨法身佛일까요. 여러분들의 깨끗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의 本質입니다. 이런 까닭에 착한 것을 생각하면 착한 일을 하게 되고 악한 것을 생각하면 악한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항상 착한 일을 생각하고 착하게 살지 못하는 것은 三毒에 물든 衆生心이 淸淨한 法身의 부처님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구름이 해와 달을 가리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맑은 바람이 불어 구름을 걷어 버리면 해와 달이 밝게 드러나듯이 지혜의 바람이 무명을 걷어 버리면 우리의 깨끗한 法身 부처님이 本來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의 自性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慧)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다. 智慧는 恒常 밝되 밖으로 境界에 執着하여 妄念의 뜬구름이 덮여 自性이 밝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 法門을 열어 주어 迷妄을 불어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사무쳐 밝아 自己의 性稟 가운데 萬法이 다 나타나나니, 모든 法에 自在한 性稟을 淸淨法身이라 이름 하느니라. 스스로 돌아가 依持함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돌아가 의지함이라 하느니라.(世人性淨 猶如淸天 慧如日 智如月 智惠常明 於外著境 妄念浮雲蓋覆 自性不能明 故遇善知識 開眞法 吹却迷妄 內外明徹 於自性中 萬法皆見 一切法自在性 名爲淸淨法身 自歸依者除不善行 是名歸依)

지혜는 해나 달과 같습니다. 해와 달이 언제나 환하게 빛나듯이 지혜 또한 밝음입니다. 만약 해와 달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지혜가 없다면 이는 하늘에 해와 달이 없는 것과 같아서 미망의 어둠이 우리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해가 비춰야 주변이 보이듯이 지혜가 밝게 비춰야 내가 속한 세상도 보이고 이웃도 보이게 됩니다. 淸淨法身은 부처님의 自性인 眞如 그 自體로 大日如來, 卽 毘盧遮那佛을 뜻합니다. 비로자나불은 光明입니다. 우리의 自性이, 內在돼 있는 부처님이 바로 毘盧遮那佛입니다.

어떤 것을 千百億化身佛이라고 하는가? 生覺하지 않으면 自性은 곧 비어 고요하지만 生覺하면 이는 곧 스스로 變化한다. 그러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變化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變化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變化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變化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變化하여 윗세계가 되고 우치함은 變化하여 아랫나라가 된다. 이같이 自性의 變化가 매우 많거늘, 迷惑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生覺이 착하면 智慧가 곧 생기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自性의 化身이라 하니라. (何名爲千百億化身佛 不思量 性卽空寂 思量卽是自化 思量惡法 化爲地獄 思量善法 化爲天堂 毒害化爲畜生 慈悲化爲菩薩 智惠化爲上界 愚癡化爲下方 自性變化甚多 迷人自不知見 一念善 智慧卽生 此名自性化身)

우리 마음 狀態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化身부처님입니다. 착한 생각을 하게 되면 그곳이 바로 천당이 되고 나쁜 생각을 하게 되면 거기가 바로 지옥입니다. 六途輪廻라고 하면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을 말하는데 그 육도윤회가 마음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現在의 마음 狀態에 따라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 畜生의 세계이고 욕심을 내면 餓鬼의 세계입니다. 우리의 欲望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곳간과 같습니다. 옛 말에 다투면 온 天下를 다 줘도 不足하지만, 나누기로 하면 콩 한쪽도 남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것을 圓滿報身佛이라고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千年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萬年의 어리석음을 없애나니, 過去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未來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하여 報身이라고 하느니라.(何名圓滿報身佛 一燈 能除千年闇 一智能滅萬年愚 莫思向前 常思於後 常後念善 名爲報身)

지금 現在의 모습은 遇然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만들어 온 것입니다. 마음을 조금이라도 맑게 썼다면 맑은 모습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맑지가 못할 것입니다. 報身佛은 흔히 미래에 오실 미륵불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自性이 바로 부처님임을 감안하면 미륵불은 自己 自身인 것입니다.

한 생각의 악한 果報는 천년의 착함을 물리쳐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착한 과보는 천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나니,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미래의 생각이 착함을 報身이라고 이름하느니라. 法身을 쫒아 生覺함이 곧 化新이요, 순간순간의 생각마다 착한 것이 곧 報身이요, 스스로 깨쳐 스스로 닦음이 곧 돌아가 依持하는 것이다. 가죽과 살은 色身이며 집으로 귀의할 곳이 아니다. 다만 세 몸을 깨치면 곧 큰 뜻을 아느니라.(一念惡 報却千年善止 一念善 報却千年惡滅 無始已來後念善 名爲報身 從法身思量 卽是化身 念念善 卽是報身 自悟自修 卽名歸依也 皮肉是色身 是舍宅 不在歸依也 但悟三身 卽識大意)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 한 순간에 환해집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밝은 지혜가 생기면 천천히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확 밝아지는 것입니다. 未來를 生覺하지 말고 過去에 執着하지 말아야 합니다.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이란 말이 있습니다. 과거는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瞬間도 끊임없이 變化하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저 瞬間만이 있을 뿐입니다. 法身佛, 報身佛, 化身佛은 모두 내 안에 內在돼 있습니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法身佛은 깨끗한 우리의 마음이요, 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化身佛입니다.

그리고 착한 생각이 未來로 이어진 그 結果가 바로 報身佛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새겼습니다.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우리들에게 하는 경책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