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장백산-1 2014. 12. 4. 19:53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는 것   |불교방송 다시듣기

 

 

 

본래의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어제는 처음 태어난 天眞한 갓난어린 아이가 世上 속에서 어떻게 온갖 分別 妄想과 煩惱에 汚染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스스로 괴로운 삶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그 속에 빠져 괴로워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우리는 本來부터 汚染되고, 分別 妄想을 일으키며, 괴로움 속에 꼼짝 못하는 그런 나약한 存在가 아니었습니다.

 

처음 태어났을 때의 어린 아이는 아무런 分別도 없고, 좋고 나쁜 差別도 없으며, 世上을 둘로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성공하려고 애쓰지도 않을뿐더러, 성공과

실패라는 觀念 槪念조차도 없었습니다. 그저 每 瞬間  本來의 自己自身으로써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 갓난어린 아이 때의 天眞한 첫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唯一한 마음工夫입니다.

天眞한 첫마음으로 歸依하는 것 그것은 바로 本來의 自己 自身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처럼 살려고 애쓰거나,

남들의 눈치를 보거나, 내가 願하지 않더라도 世上이 시키는대로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저 自己自身의 內面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남들이 어떻게 볼까, 이렇게 살면 밥이나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미래나 노후를 위한 준비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을 내려놓고, 그저 이 世上에 처음 왔던 그 初心으로 돌아가 自己自身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부모님, 학교, 사회, 이 세상으로부터 강제로 注入받았던 그 모든 觀念과 强制 條項들, 特定한 삶의 方式들로부터

解放되어 自由로와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마음工夫의 全部입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처럼 사는 것,

타인에게 배운대로 사는 것, 남들이 원하는대로 사는 것, 혹은 다른 사람 눈치 보며 사는 삶 代身에 가장 나답게

本來의 나 自身으로 사는 것, 나 自身이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方向인 것입니다.

 

그 모든 外部로부터 들어 온 모든 注入된 信念들을 우리는 그동안 ’, ‘내 生覺이라고 여겨 錯覺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닙니다. 그저 宇宙法界의 因緣에 따라서 내게 잠시 왔을 뿐이고,

내가 그것들을 붙잡아 執着하고 사로잡혔기 때문에 내 生覺이라는 幻想이 생겨났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 生覺이 나이고, 그 生覺으로 因해서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다고 여겨왔겠지만, 事實 그것이야말로

나를 拘束하고 가두고 束縛했던 苦痛의 原因이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그 모든 나 아닌 것들을 걷어내기 시작하면, 本來의 나 自身이 드러나게 됩니다.

法華經에서 말한 옷 속 보석의 비유처럼 自己 안에 천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自己自身이라는 寶石이

숨겨져 있다는 事實을 모르고 우리는 그동안 바깥으로만 自己自身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바깥에서 얻어들은 것들,

宇宙法界의 因緣에 따라서 잠시잠깐 나라는 존재에게 온 것들을 진짜 나의 전부라고 錯覺해 속아지내왔던 것이지요.

 

내 안에 本來 갖추어져 있고, 언제나 이미 드러내며 쓰고 있는 우리 안의 本來의 自己自身이라는 보배구슬이

단지 허망한 분별 망상 번뇌 생각이라는 먼지와 티끌에 가려져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보배구슬의

바깥에 덕지덕지 묻어 있던 먼지와 티끌을 나라고 알아왔지만, 이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本來의 自己自身이라고 하는 보배구슬, 마니주, 如意珠가 숨겨져 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일어나는 妄想이나 煩惱, 判斷과 分別들을 보자마자 그것들을 나와 同一視하던 習慣에

빠져 살아왔습니다. 이제부터는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否定的인 生覺이 올라올 때 그 生覺을 따라가고

휩쓸려 괴로워하거나, 우울해하거나, 비관에 빠지기 前에 그 일어난 生覺을 알아차려서, 나와 同一視하지

않은 채로 그 生覺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어난 生覺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生覺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虛妄한 生覺 妄想 分別에 속지 않는 것이고, 生覺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려면 일어나는 生覺을 알아차리고 觀察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生覺이나 行動이나 말이 올라올 때 잠깐 멈춤을 한 뒤, ‘이 生覺은 정말 내 生覺인가?’

 ‘이 行動은 그저 習慣的인 行動은 아닌가?’ ‘이것은 나 自身이 眞正 願하는 것인가?’ 하고

質問을 던져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生覺과 行動이 나와 同一視되는 것을 막아주며

眞正한 나 自身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他人에게 휩쓸려 살기보다는 나 自身으로 살기를 選擇하고,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삶이 아닌 나 自身이 眞正 願하는 삶을 選擇하며,

虛妄한 生覺과 妄想에 끄달려 가는 삶이 아닌 生覺 너머의 참本性이 드러나는

本來의 自己自身의 삶을 스스로 選擇하시기 바랍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生覺할지를 걱정하는 限 우리는 내 삶의 主導權을 相對方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나를 보는 남들의 視線에 걸리지 않고, 남들에게서 그 어떤 認定이나, 關心도 求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나다운 나 自身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때 비로소 나 自身의 眞正한 主人이 될 수 있게 됩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