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삶이라는 연극의 역할놀이

장백산-1 2014. 12. 9. 12:57

 

 

 

삶이라는 연극의 역할놀이|불교방송 다시듣기

 

 

삶이라는 연극의 역할놀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라는 모습, 그것이 나는 아니다.

社會的인 存在로서의 ’, 내가 이러이러하다라고 알고 있는 바로 그 내가 진짜 나일까?

그 모든 것으로써의 나는 다만 아상(我相), 에고의 감옥일 뿐이다.

 

나는 누구인가? 선생님일 수도 있고, 사장일 수도 있으며, 스님일 수도, 학생일 수도, 공무원일 수도,

혹은 부모이거나 자식일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는 狀況에 따라, 環境에 따라, 때에 따라

끊임없이 變한다. 회사에서는 사장일 수도 있고, 과장일 수도 있으며, 말단 사원일 수도 있고, 집에 돌아오면

한 가정의 가장일 수도, 자식일 수도 있고, 또 주말에 있는 모임에 가면 회장일 수도, 총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의 我相, 우리의 에고, 우리의 位相은 달라진다. 狀況에 따라 우리가 바로 그 곳에서

해야 할 몫의 演劇을 해 내면서 살아간다.

 

어디 그 뿐인가. 가게에 가면 손님의 위치로 바뀌었다가, 차를 타면 승객이 되고,

복지시설에서는 자원봉사자로 탈바꿈한다. 하루에도, 아니 每 瞬間마다 우리의 自我/我相/에고는

그 狀況에 걸맞은 演劇의 연기를 한다. 바로 그 演劇에서의 演技役割이 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役割들의 特性은 어떠한가?

어느 한 가지 역할만이 나의 本來的인 자아이거나, ‘나의 本質은 이거야라고 할 만한 定해진 本然의 역할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역할을 바꿀 뿐이다. 바로 이 역할 놀이, 연극의 배역을 끊임없이 상황 따라 바꾸어가는 바로 이 영화 같은 배역 놀이야말로 우리 삶이라는 생생한 現實이다. 그때그때마다 바로 이 狀況劇을 잘 演技할 줄 아는

것이 삶에서 매우 중요한 초점이 된다.

 

그 삶의 배역을 온전히 잘 해 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나에게 배역이 주어질 때 바로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배역에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완전히 용해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순간, 바로 그 배역과 그 배역의

행위와 완전히 하나 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순간, 그 배역이야말로 내가 삶에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다.

 

최고의 배우는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 배역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완전히 그 역할에 몰입함으로써 바로 그 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 영화가 끝나고 다른 영화, 다른 배역이 주어지면 곧바로 또 다시 새로운

배역에 완전히 용해됨으로써 이전의 역할을 잊고 새롭게 주어진 역할과 새롭게 하나를 이룰 줄 안다.

 

그런데 人生이라는 이 연극 역할놀이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그 역할이 주어질 때 그것에 온전히

깨어있는 意識으로 最善의 演劇을 다하되 錯覺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즉, 바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할지언정

그 역할이 本來의 나 自身인 것으로 錯覺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잠시 宇宙法界의 因緣에 따라서 주어진

配役을 나 自身과 同一視해서는 안 된다. 그 配役을 最善의 集中力으로 消化해 낼지언정 그 役割 自體에 欲心을

부려서는 안 된다. 本質的인 次元에서는 그 配役이 實體的인 내 것이 아니다. 잠시 내가 演劇을 한 것일 뿐이다.

바로 이 點을 理解할 수 있어야 한다.

 

훌륭한 俳優는 한 影畵가 끝나고 새로운 영화를 시작할 때 이전 영화 속의 配役을 완전히 잊고 새로운 配役에

100% 에너지를 쏟는다. 과거의 배역이 아무리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배역이었을 뿐임을 알기 때문에 과거의 배역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 배역에 빠져 있는 한 새로운 배역을 消化하기가 힘들것을 안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우리 삶이라는 演劇舞臺에서 精神 똑바로 차리고 지켜보아야 할 삶의 實踐德目이다.

이것을 놓치는 순간, 우리 삶은 고통과 번뇌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놓이게 된다. 그 配役을 自身과

同一視함으로써 그것이 單純히 하나의 配役이 아니라 나 自身이라는 正體性인 것으로 誤認하는 것,

그 잘못된 認識 그것이 바로 我相 , 에고의 거친 감옥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내가 이 生에서, 또 지금 이 瞬間, 삶이라는 演劇 속에서 펼쳐내고 있는 그 役割에 충실하며,

그 역할을 통해 삶의 智慧를 배울 지언정, 그 役割을 라고 同一視하지 않고, 그 役割에 執着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智慧로운 삶이다. 언제든 재미있게 삶이라는 演劇에서 役割놀이를 할지라도, 役割을 그만 두고

삶을 떠나야 할 때가 오면 가볍게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다면 삶이라는 演劇은 아름다운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