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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역할놀이를 진짜라고 집착하게 되면

장백산-1 2014. 12. 9. 13:31

 

 

 

역할놀이를 진짜라고 집착하게 되면 |불교방송 다시듣기

 

 

 

연극 역할놀이를 진짜라고 집착하게 되면

 

 

 

우리는 이 生에서 다양한 삶의 配役을 맡아 演技하는 演技者와 같다. 우리는 저마다 自己 影畵의 主人公이다.

삶이라는 이 연극놀이의 主人公은 多樣하다. 그 중에는 매력있고, 호감 가는 配役도 있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配役도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特히 이 가운데에도 좋은 役割이나 配役을 맡을 때 일수록 우리는 그 配役을

진짜 自己 自身으로 錯覺해서 執着하기 쉽다. 사장이라는 配役, 회장, 부장, 국회의원, 교수, 선생님, 의사, 변호사,

스님, 성직자등등 그 配役을 진짜 自己 自身의 實體라고 錯覺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 이 삶에서 나에게 주어진

職業이나 配役役割을 나 自身의 正體性이라고 誤解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아는 한 회사의 중간 관리자 분께서 오랜 회사 생활을 마감하면서 한 말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25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도대체 무엇을 하며 어떻게 달려 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죽자 살자

뒤도 옆도 안 보고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 사는 것인 줄 알았고, 회사를 위하는 일이고,

동시에 가족을 위해 잘 하고 있는 일인 줄 알았지요. 그동안 오직 회사와 회사에서의 성공과 진급만이

내 삶의 中心이었어요. 그동안 가족들과는 맘 편히 휴가 한 번 다녀오지 못했고, 주말에도 밀린 업무 때문에

가족과 기억에 남는 나들이 한 번 못했습니다. 평소에는 아이들과 대화를 못 하다 보니 이제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서먹서먹해 졌을 정도지요. 이제서야 精神 차리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려 해도 이젠 애들이 다 커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어떻게 살아 온 건지,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되, 퇴근 후에는 완전히

회사 일을 마음에서도 퇴근을 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아버지와 남편의 역할에 최선으로써 집중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평일에는 회사 일에 집중하더라도 주말에는 완전히 주말을 보낼 줄 알아야 한다.

 

현대인들의 엄청난 일중독은 하루 24시간, 주말도, 휴가도 반납하며 일에 매달리고, 심지어 자신의 삶조차

반납해가며 일에 매달리는 것을 능력 있고, 우수한 인재인 것으로 떠받들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그럴까?

 

퇴근 후에 완전히 아버지로 남편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완전히 순수하게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순수하게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 欲心과 執着이라는 我相에 基礎한 위에서

일을 행한다. 進級도 해야 하고, 認定도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저 순수하게

오직 나에게 주어진 삶의 配役役割로써 그저 그 일 自體로써 일하는 것이 아니라 我相이라는 삿된 欲求가

介入된 채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我相이나 欲心이 介入됨 없이 오직 순수한, 내 삶의 주어진 몫으로써

오직 그 순간에 함이 없이 그 일을 행한다면’ ‘집착 없이 그 일을 행한다면분명히 그 사람은 퇴근과 동시에

그 일을 놓아버리고 또 다른 가족 구성원으로써의 몫에도 순수하게 동참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役割에 執착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장’이라고, ‘연예인’이라고, ‘회장’이라고,

‘성직자’라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그 자리가 나인 것으로 錯覺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삶이라는 演劇의 

每 瞬間 우리는 演劇 役割놀이를 할 지언정 그 配役役割이 나 自身이 아니라는 點을 分明하게 思惟해야 한다.

 

그 演劇 役割은 하나의 놀이일 뿐이며, 잠시 아주 잠시 내게 주어진 이번 생의, 혹은 잠시 동안의 配役일 뿐이다.

그 事實을 깨달을 때 우리는 昧 瞬間 어떤 役割로서가 아닌 純粹한 한 存在로써 바로 그 瞬間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된다.

 

부모가 자식을 對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부모이고 너는 내 자식일 뿐이다’ ‘너는 내 말에 따라야 한다’고

하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一方的인 偏見과 役割의 同一視가 없을 때, 오직 순수한 한 존재가 또 다른 한 존재와

自然스럽고  香氣 나는 關係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모든 존재와의 만남은 붓다와 붓다가 서로 만나는 것과도 같은 깊은 靈的인 交感이자 靈的 盛熟의 場이

될 수 있다. 다만 演劇役割을 하되 그 役割과 自身을 同一視하지 않을 때, 비로소 모든 關係는 純粹해지며 삶의

靈的 進步가 始作된다. 이렇게 만나는 모든 關係는 存在의 盛熟과 進化를 위한 創造的인 關係로 발돋움한다.

 

어떤 演劇 配役에도 머물러 執着하지 말라. 配役은 단지 配役일 뿐 내가 아니다.

그러면 참된 진짜 내 배역은 무엇인가. 가짜의 역할이나 배역 말고 진짜배기 는 누구인가!

 

配役 役割을 하되 配役에 執着함이 없이 다만 純粹한 意識의 깨어있음으로 瞬間瞬間의 純粹한 配役 役割을

觀하게 될 때 비로소 가짜의 役割이 아닌 진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答을 찾게 된다. 참된 나를 찾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것뿐이다.

 

이번 生에서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演劇의 配役 몫, 삶의 配役 役割을 온전한 集中과 알아차림으로

行하되 거기에 집착하거나 얽매임 없이 행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참나로 이끄는 至高의 修行이요,

 붓다가 말한 涅槃에 이르는 길이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