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괴로움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화가 많이 납니다. 아이가 학교에 갔다 와서
숙제도
안하고 텔레비젼만 보고 있어 화가 납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 화가 납니다.
부모님이 잔소리를 해서 화가 납니다.
믿었던 친구가
돈을 갚지 않아서 화가 납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왜 화가 났을까?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화가
난 것입니다.
왜 아이가 공부를 안 하는지?
왜 남편이 직장에서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 하는지?
왜 아내가 외출을
자주 하는지?
왜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는지?
왜 친구가 돈을 갚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화나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세상의 中心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기만을 바라고,
정작 '나'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을 좀
알아줘."이렇게 '상대'에게 자기마음을 알아달라는 요구만 하는겁니다.
"도대체 네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이 말은
"나는 너를 이해하고 싶지 않아."
"나에게는 너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라는 말입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의 상태는 어떤가요?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말소리는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됩니다. 얼굴이 굳어집니다.
잠도 잘 안옵니다. 이런 것을 괴로움,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괴로움,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해결이 될까요?
모든 사람이 다 내 마음을 잘 이해해서
'잔소리 않해도 아이는 공부
잘 하고,
남편은 집에 일찍 들어오고,
아내는 집을 안 비우고,
부모님은 잔소리를 안하고,
친구는 빌려간 돈을
갚고,'
이러하면 해결이 되는 것일까요?
만약에 이것이 事實이라면 내 人生의 幸福과 不幸 등의
모든 키는 相對方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나가 아닌 相對가 어떻게 生覺하고 말하고
行動하느냐에 따라서
내 人生이 幸福해지기도 하고 不幸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과연 主體的인 主人公의 '삶'일까요?
그러한 人生은 이미 더 이상 나의
삶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生覺과 말과 行動에 딸린 '노예적인 삶'일 뿐입니다.
'오늘 학교에서 이런 일들이 있어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구나'
'오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술
마시고 늦게 왔구나.'
'오늘은 이런 일이 있어서 집을 비웠구나.'
'친구는 그런 이유가 있어서 돈을 못 갚았구나.'
이렇게 '구나'하고
相對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내 마음이 便安해지고, 괴로움 고통은 사라집니다.
찡그렸던 인상이 펴지고, 목소리가 부드러워집니다.
내 마음이 더 自由로워지고 幸福해집니다.
相對方의 生覺이나 말이나
行動이 내 삶에 큰 影響을 주지 못합니다.
그가 웃어도 '아!!! 그래서 웃었구나..'하고
그가 인상을 써도 '아!!! 그래서 인상을
썼구나'하고 理解하는 마음이 되면,
想對가 웃든, 인상을 쓰든 거기에 휘둘리지 않아서 괴롭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내가 그걸 몰랐구나!!'
'내가 그걸 잘 못 생각했구나'하고 뉘우칠 때,
내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풀어집니다...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둡던 마음이 밝아지는
이것을 "참회"라고
합니다.
- 기도, 내려놓기 / 법륜스님-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화 다스려, 복 많이 받으세요" (0) | 2015.02.19 |
---|---|
진심직설[眞心直說]① - 보조 국사[普照知訥] (0) | 2015.02.19 |
절대화된 관념을 타파하는 것이 불교의 출발이다. (0) | 2015.02.18 |
마음의 고향을 찾아서 / 보경(普鏡/함현준) (0) | 2015.02.18 |
천지창조의 새로운 버젼 (0) | 2015.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