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진심직설[眞心直說]① - 보조 국사[普照知訥]

장백산-1 2015. 2. 19. 04:44

 

 

 

 

 

 


 


 

 

 

진심직설[眞心直說]① - 보조 국사[普照知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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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마음을 바로 가리킴 - 說 무비 스님 [無比]


 

 

 

   ○  들어가는 말씀

 

화엄경[華嚴經]에 유심게唯心偈라는 글이 있습니다.

"마음은 그림을 잘 그리는 畵家와 같아서 모든 世上事를 다 그린다. 五蘊도 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났으며,

마음이 世上의 一切法을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만약 過去, 現在, 未來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應當  法界의 本性을 잘 觀察하라. 一切를 다 이 마음이 만들었느니라."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그렇습니다. 마음은 모든 것의 根本이 되므로 모든 것에 우선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든 幸福과 不幸도 이 마음이 만들며, 天堂과 極樂도 이 마음이 만듭니다.

佛敎는 한마디로 말하면 이 마음을 깨달아 알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나라의 高麗時代에 보조지눌普照知訥이라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불교의 根本이 되며 萬有의 核心이 되는 이 마음의 問題를 철저히 깨달으시고

그 內容을 잘 整理해서 眞心直說이라는 글로서 오늘날까지 傳해오고 있습니다.

 

강의에 직접 동참하신 분이나 테이프를 통하여 공부하시는 분이나 모두가 불교의 根本이며

참 나의 主人公이라고 할 수 있는 自身들의 마음을 이『眞心直說』공부를 통하여 깊이 깨닫

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디 이 因緣, 이 功德으로 언제나 건강하시고 가정이 恒常  和睦하시기를 부처님 전에

기도드립니다. 모두 부처님 되십시오.

 

  1997년 3월 23일    여천如天 무비無比  합장

 

 

 ◎  머리말[自序]

 

어떤 이가 물었다. “祖師들의 妙한 道를 알 수 있는 것인가?”

 

答하였다.

“옛사람이 말하지 않았던가? 卽, 道는 앎<知>에도 속하지 않고 모름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는 것이라면 그것은 妄想이요, 모르는 것이라면 그것은 無記이다.

만일 참으로 疑心 없는 境地에 이르면 그것은 마치 텅~텅~비고 탁~트인 虛空과 같거늘 太虛寬廓(태허관확)

어찌 이것이 옳으나 그르다는 生覺을 내겠는가?”

 

또 물었다. “그렇다면 祖師들이 世上에 나오심은 중생들에게 아무 이익이 없는가?”

 

답하였다.

“부처나 조사들이 세상에 나와서는 사람들에게 따로 法을 준 것이 없고,

다만 중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本性을 보게 한 것뿐이다."《只要衆生 自見本性》

 


화엄경華嚴云에,


“一切 法이 現在 그 마음이 自性임을 알면 智慧의 몸을 이룬다. 남에 의해 깨닫는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부처나 조사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文字에 執着하지 않고, 다만 마음을 아주 쉬어

제 本心을 보게 하였다. 《只要休歇 見自本心》

 

그러므로 덕산德山 스님은 누구나 門에 들어오는 이를 곧 방망이로 때렸고,[棒]

임제臨濟스님은 누구나 門에 들어가면 곧 소리를 질렀었다.[喝]어찌 다시 말이 있었으랴?”

 

그는 또 물었다. “일찍 들으매, 마명馬鳴 보살은 起信論을 짓고, 六祖 스님은 단경壇經을 설하고,

황매黃梅 스님은 般若를 傳하였는데 그것은 다 점차로 사람들을 위하신 것이니,

어찌 法에 方便이 없다 하여 되겠는가?”

 

나는 답하였다. “묘고산妙高山봉우리 위는 原來 헤아림을 許諾하지

않지마는 둘째 봉우리는 祖師들이 약간 말로 알게 함을 許諾하였다.”

 

또 물었다. “감히 바라노니, 둘째 봉우리에서 약간 方便을 가르쳐 주겠는가?”

 

나는 답하였다.

“말이 옳다. 큰 道는 심오하고 비어서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참 마음은 그윽하고 미묘하여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음을 어찌하랴?

그러므로 그 門을 앉아 들어가지 못하면 비록 五千부의 장경을 살펴보더라도 많이 아는 것이 아니요,

참 마음을 밝게 깨달으면 다만 한 마디 말이라도 그것은 벌써 군더더기 法이다.”

 


이제 눈썹을 아끼지 않고 삼가 몇 장章의 글로 참 마음을 밝혀,

道에 들어가는 基礎와 節次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에 서序한다.

今不惜眉毛. 謹書數章. 發明眞心. 以爲入道之基漸也. 是爲序

 

          

 

 1  참마음에 대한 올바른 믿음[眞心正信]

 


화엄운 신위도원공덕모 장양일체제선근 우유식운 신여수청주 능청탁수고

華嚴云 信爲道源功德母 長養一切諸善根 又唯識云 信如水淸珠 能淸濁水故

 

시지만선발생 신위전도 고불경수립 여시아문 생신지소위야

是知萬善發生 信僞前導 故佛經首立 如是我聞 生信之所謂也

 

華嚴經에 이르되 ‘믿음은 道의 根源이요, 功德의 어머니로서 一切 善根을 全部 길러낸다’ 하였고,

또 唯識論에서 ‘ 믿음은 물을 맑게하는 구슬과 같아서 能히 흐린 물을 깨끗하게한다’ 하시니라.

 

만 가지 善이 發生하는 것은 믿음이 前導<案內者>가 된다. 그런고로 불경의 첫머리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는 如是我聞’이라 한 것은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혹왈조문지신 여교문지신 유하이야 왈다종부동 교문영인천 신어인과

或曰祖門之信 與敎門之信 有何異耶 曰多種不同 敎門令人天 信於因果

 

유애복락자 신십선위묘인 인천위락과 유락공적자 신생멸인연위정인

有愛福樂者 信十善爲妙因 人天爲樂果 有樂空寂者 信生滅因緣爲正因

 

고집멸도위성과 유락불과자 신삼겁육도위대인 보리열반위정과

苦集滅道爲聖果 有樂佛果者 信三劫六度爲大因 菩提涅槃爲正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조문祖門의 믿음이 교문敎門의 믿음과 어떻게 다릅니까?”


答하되. “여러 가지가 다르다. 교문에는 사람과 천상으로 하여금 因果를 믿게 한다.

福樂을 좋아하는 사람은 十善을 믿는 것으로 妙因을 삼는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받게 한다.

 

空寂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生滅 因緣으로 바른 인正因을 삼고 苦·集·滅·道로 聖果를 삼는다.

成佛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三劫동안 六波羅蜜을 닦는 것으로 큰 原因을 삼고

보리 열반으로서 바른 결과正果를 삼는다.”

 

조문정신 비동전야 불신일체유위인과 지요신자기 본래시불 천진자성

祖門正信 非同前也 不信一切有爲因果 只要信自己 本來是佛 天眞自性

 

인인구족 열반묘체 개개원성 불가타구 종래자비 삼조운 원동태허

人人具足 涅槃妙體 箇箇圓成 不假他求 從來自備 三祖云 圓同太虛

 

무결무여 양유취사 소이불여 지공운 유상신중무상신 무명로상무생로

無缺無餘 良由取捨 所以不如 誌公云 有相身中無相身 無明路上無生路

 

영가운 무명실성즉불성 환화공신즉법신 고지 중생본래시불

永嘉云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故知 衆生本來是佛

 

기중정신 수요해자 영명운 신이불해 증장무명 해이불신 증장사견

旣生正信 須要解滋 永明云 信而不解 增長無明 解而不信 增長邪見

 

고지 신해상겸 득입도질

故知 信解相兼 得入道疾

 

그러나 祖門의 바른 믿음은 앞의 것과 같지 않다. 일체 유위有爲의 因果를 믿지 않고,

다만 自己가 本來 부처라는 것을 믿고, 天眞 自性이 사람마다 갖추어졌고, 涅槃 묘체妙體가 모두에게

완전하여 다른 일을 빌려서 구할 필요가 없고 本來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다 갖춰져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승찬三祖僧璨스님이 말하기를 우리 마음속에 갖춰 있는 그 한마음이 “圓滿하기가 저 太虛空과 같아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건마는 眞心은 取하고 妄心은 버리는捨 分別心 때문에 같지 못한 까닭이 된다.”하였고

 

지공誌公스님이 말하기를

“모양[相] 있는 몸 가운데 모양 없는 몸이요, 煩惱 無明의 길 위에 生死를 超脫한 길이더라”하였고,

영가永嘉玄覺스님은 證道歌에 말씀하시기를 “無明의 實性이 곧 佛性이요,

虛妄한 텅~빈 몸이 그대로 法身이다”라고 하였다.<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그러므로 알라, 衆生이 本來 부처이다.

이미 바른 믿음이 났을 진대 모름지기 理解가 더해 지기를 요할 지니,

永明延壽 스님은 “믿기만 하고 理解가 없으면 無明만 더 불어나고,

理解만 하고 믿음이 없게 되면 삿된 견해邪見만 불어난다.”하였다.

 

그러므로 알라, 믿음信과 이해解가 서로 겸兼해야 道에 들어가는데 빠르다.

 

혹왈초발신심 미능입도 유이익부 왈기신론운 약인문시법이 불생겁약 당지시인

或曰初發信心 未能入道 有利益否 曰起信論云 若人聞是法已 不生劫弱 當知是人

 

정소불종 필위제불지소수기 가사유인 능화삼천대천세계만중중생
定紹佛種 必爲諸佛之所授記 假使有人 能化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

 

영행십선 불여유인 어일식경 정사차법 과전공덕 불가위유

令行十善 不如有人 於一食頃 正思此法 過前功德 不可爲喩

 

혹자가 말하기를. “처음에 信心을 내어 설사 아직 道에 들어가지 못했다하더라도

그런 生覺<바른 믿음>을 해서 무슨 이익이 있을 수 있는가.”

 

答하되. “기신론[起信論]에 말씀하시기를 ‘만약 어떤 사람이 이 法<自己가 本來 부처다>을 듣고 나서

겁을 내지 아니할 것 같으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결정코 부처佛의 종자種子를 이어서

반드시 부처님이 수기授記하는 바가 될 것이다.

 

假使 어떤 사람이 三千大千世界 안에 가득 찬 衆生을 敎化하여 十善을 行하게 한다해도,

어떤 사람이 한 끼 밥 먹는 사이에 이 法 <내가 本來 부처다>을 生覺한 것만 같지 못하다.

이 功德은 앞의 功德을 훨씬 앞질러간다. 과히 비유삼을 수가 없느니라.”하였다.

 

우반야경운 내지일념생정신자 여래실지실견 시제중생 득여시무량복덕

又般若經云 乃至一念生淨信者 如來悉知悉見 是諸衆生 得如是無量福德

 

시지 욕행천리 초보요정 초보약착 천리구착 입무위국 초신요정

是知 欲行千里 初步要正 初步若錯 千里俱錯 入無爲國 初信要正

 

초신기실 만선구퇴 고조사운 호리유차 천지현격 시차이야

初信旣失 萬善俱退 故祖師云 毫釐有差 天地懸隔 是此理也

 

또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에는 “한 瞬間이라도 淸淨한 믿음을 내는 사람은 如來께서 다 알고 다 보노니

如來悉知悉見, 이런 모든 중생들은 限量없는 福德을 얻는다.’하였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천리를 가고자

할진대 첫걸음을 바르게 요할지니, 만약 첫걸음을 그르치면 천리 길이 다 그르쳐버린다.

 

따라서 함이 없는 나라<無爲國>에 들어갈진대 첫 믿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了點이며, 첫 믿음이 바른 位置를

잃어버릴 것 같으면 온갖 萬善이 全部 물러 가버린다. 그런 까닭에 3조 승찬祖師가 ‘ 털끝만하여 보일락 말락

하는 그런 微妙한 差異라도 있을 것같으면, 나중에는 하늘 땅 만큼 현격하게 어긋나 버린다.毫釐有差 天地懸隔 ‘

하시니 이것이 이 이치다.

 

 

 2  진심의 다른 이름[眞心異名]


혹왈이생정신 미지하명진심  왈이망명진 영감왈심 능엄경중 발명차심

或曰已生正信 未知何名眞心  曰離妄名眞 靈鑑曰心 楞嚴經中 發明此心

 

혹왈단명진심 별유이호야 왈불교조교 입명부동 차불교자

或曰但名眞心 別有異號耶 曰佛敎祖敎 立名不同 且佛敎者

 

보살계 호위심지 발생만선고 반야경 환작보리 여각위체고

菩薩戒 呼爲心地 發生萬善故 般若經 喚作菩提 與覺爲體故

 

혹자가 물어 가로대:

“이미 바른 믿음은 내었거니와 무엇을 眞心이라고 이름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하되: 妄靈된 것을 떠난 것을 진[眞]이라 하고, '神靈스럽게 환히 비치는 것'

          <靈鑑>을  가로대 마음[心]이라 한다.  曰離妄名眞 靈鑑曰心

 


♤.神靈스럽게 비치는 것, 지금 여러분들이 조용히 그냥 듣고만 있지 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또 이 보조普照스님이 뭐라고 했는지. 또 글을 제대로 해석을 하는지. 또 글의 내용을 알고 말하는지.

    환히 비추고 있어요. 여러분들 낱낱이 한 사람 한 사람도 全部 靈鑑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 비추는 것이 뭐라고 할까? 感知器라고 할까요? 이 감鑑자는 感知器라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이

   전부 感知하고 있는데 몸의 感知器는 뛰어나다 보니까, 그래서 靈자를 붙이는 거예요.

   아주 神靈스러운 感知器예요. 영.감. 靈.鑑!            靈신령영  鑑거울감

 

   이 마음자리<眞心> 같은 뛰어난 센서는 이 세상에 없어요. 어떤 무엇을 科學的으로 만들더라도

   이런 感知器, 센서는 世上에서 못 만들어요. 이것은 人間이 만들 수 없는 感知器입니다.

靈.鑑 아주 神靈스럽게 비치고 있는 것.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 표현이 아주 간략하면서도 좋죠.

 

우리 마음! 우리가 막연하게 眞心! 마음 마음 하지만, 무엇을 하는 것이 마음이냐? 靈鑑 한다 이거예요.

靈.鑑! 靈鑑이 마음이다.(ㅎㅎ~) 靈鑑! 神靈스럽게 感知한다. 환히 비추고 있다 이겁니다.

 .....◇◇◇....

 

능엄경[楞嚴經]가운데서 이 마음을 환히 이야기 했다. <發明此心>


묻기를. “다만 眞心이라고만 합니까? 따로 다른 이름이 있습니까?”

 

답하되. “부처님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을 세운 이름이 같지를 않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보살계경<梵網經>에서 마음 땅<心地>라 했는데

이는 發生萬善하기 때문이다. 般若經에는 보리<覺>라고 부른다.

깨달음<覺>으로 더불어 그 本體가 되기 때문이다.

 

화엄경 입위법계 교철융섭고 금강경 호위여래 무소종래고

華嚴經 立爲法界 交徹融攝故 金剛經 號爲如來 無所從來故

 

반야경 호위열반 중성소귀고 금광명 호왈여여 진상불변고

般若經 呼爲涅槃 衆聖所歸故 金光明 號曰如如 眞常不變故

 

정명경 호왈법신 보화의지고 기신론 명왈진여 불생불멸고

淨名經 號曰法身 報化依止故 起信論 名曰眞如 不生不滅故

 

열반경 호위불성 삼신본체고 원각중 명왈총지 유출공덕고

涅槃經 呼爲佛性 三身本體故 圓覺中 名曰總持 流出功德故

 

승만경 호왈여래장 은복함섭고 요의경 명유원각 파암독조고 
 勝鬘經 號曰如來藏 隱覆含攝故 了義經 名爲圓覺 破暗獨照故

 

유시수선사 유심결운 일법천명 응연입호 비재중경 불능구인
由是壽禪師 唯心訣云 一法千名 應緣立號 備在衆經 不能具引

 

華嚴經에서는 法界라 했으니 우리 마음이 교철융섭交徹融攝<한 덩어리 /우주전체 법계>하기 때문이요,

金剛經에서는 如來라 했으니 쫓아오는 바가 없기 때문이요,

般若經에는 涅槃이라 했으니 모든 聖人이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金光明에서는 如如<같고 같다 生滅이 없다> 라고 부른다. 참답고 恒常하고 永遠하기 때문이요

淨名經/유마경에서는 法身이라 했으니 報身과 化身이 依持하는 바가 되기 때문이요,

起信論 에서는 眞如 <참답고 여여함>라  했으니 우리 참 마음자리<眞心>는 不生不滅하기 때문이다.

 

♤ 般若心經에서  不生不滅 이렇게 외우지 않습니까?  不生不滅 하거든요.

그것이 結局은 무슨 소리냐? 우리 마음은 不生不滅한다. 그래 不生不滅을 다른 이름으로 하면

起信論에서는 '眞如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不生不滅은 글자가 넉자지요.

“眞如” 하면 두 자가 되잖아요. 표현이 더 깔끔해요 훨씬 眞如라는 말이. 永遠하고 어디든지 恒常 있고.

그래서 우리가 이 몸 따라서 마음이 태어나는 것도 아니예요. 이 몸이 죽는다고 마음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 예요.

眞心은 태어나게도 못하고 없어지게도 못해. 죽이지도 못하는 것이 이 마음자리예요. 眞心자리! .....◇◇◇....

 

涅槃經에는 眞心을 佛性이라 했으니, 三身<法身 報身 化身>의 本體이기 때문이요,

圓覺經에서 총지總持라 한 것은 모두 다 가졌다는 말인데 功德이 끝없이 흘러 뿜어내기 때문이요,

승만경[勝鬘經]에 如來藏이라고  한 것은 숨겨[隱]두고 덮고[覆 두고 함섭含攝하기 때문이요,

 

요의경[了義經]에 圓覺이라 한 것은 어둠을 깨드리고 破暗 홀로 비치는獨照 까닭이다.이로 말미암아

永明延壽 禪師는 유심결[唯心訣]에서 말하되 ‘하나의 法에 千가지 이름이 있는 것은 因緣을 맞추어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하였다. 이 이름들 外에 여러 經典에 많이 있는데 그것을 다 이끌어 올 수는 없다.

 

혹왈불교이지 조교하여 왈조사문하 두절명언 일명불입 하경다명

或曰佛敎已知 祖敎何如 曰祖師門下 杜絶名言 一名不立 何更多名

 

응감수기 기명역중 유시자기 중생본성고 유시명위정안 감제유상고

應感隨機 其名亦衆 有時自己 衆生本性故 有時名爲正眼 鑑諸有相故

 

유시호왈묘심 허령적조고 유시명왈주인옹 종래하부고 유시호위무저발

有時呼曰妙心 虛靈寂照故 有時名曰主人翁 從來荷負故 有時呼爲無底鉢

 

수처생애고 유시환작몰현금 운출금시고 유시호왈무진등 조파미정고

隨處生涯故 有時喚作沒絃琴 韻出今時故 有時號曰無盡燈 照破迷情故

 

유시명왈무근수 근체견뢰고 유시호위취모검 절단진근고

有時名曰無根樹 根蒂堅牢故 有時呼爲吹毛劍 截斷塵根故         蒂 꼭지 체  牢 견고할 뇌

 

유시환작무위국 해안하청고

有時喚作無爲國 海晏河淸故

 

혹자가 말하기를 .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미 알았는데, 조사의 가르침은 어떻습니까?.”

답하되.“祖師 門下에서는 이름과 말을 杜絶했음이라 하나의 이름도 세우지 아니하거니 어찌

다시 많은 이름이 있으리오, 그러나 느낌에 應하고 根機를 따라서 眞心의 이름이 또한 여러 개다.

 

어떤 때는 眞心을 自己라 했으니, 이는 衆生의 本性稟이기 때문이요, 또 어떤 때는 바른 눈<正眼>이라 한 것은

모든 있는 貌樣을 全部 거울처럼 환히 비추기 때문이며, 어떤 때는 微妙한 마음<妙心>이라 한 것은,

아주 텅~비었으되 神靈스러우며 고요하면서 항상 비추기 때문이며<虛靈寂照>,

 

때로 주인옹主人翁이라 하는 것은 예로부터 모든 責任은 다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요,<온갖 결정권이 다

내 마음에 달려있다 그 말입니다> 어떤 때는 무저발無底鉢<밑이 없는 발우>이라 한 것은 때에 맞추어

어느 곳에<處所>가든지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요,

 

어떤 때는 몰현금沒絃琴<줄 없는 거문고>이라 하는 것은 지금 당장今時 <分別覺知>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무진등無盡燈<꺼지지 않는 등불>이라 했는데 이는 迷惑한 生覺을 비춰서 깨트려 버리기 때문이요,

어떤 때는 무근수無根樹<뿌리 없는 나무>라 했으니 뿌리와 꼭지가 아주 굳기 때문이요,

 

때로는 취모검吹毛劍<불어서 날리는 머리카락도 자르는 칼>이라 한 것은

煩惱의 뿌리<6根 6塵>를 絶斷하기 때문이요, 때로는 無爲國<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라>이라 하였으니

이는 평온한 바다와  맑은 강처럼<自然狀態> 平和로움 때문이다.

 

유시호왈모니주 제익빈궁고 유시명왈무유쇄 관폐육정고

有時號曰牟尼珠 濟益貧窮故 有時名曰無유鎖 關閉六情故

 

내지명 니우 목마 심원 심인 심경 심월 심주 종종이명 불가구록

乃至名 泥牛 木馬 心源 心印 心鏡 心月 心珠 種種異名 不可具錄

 

약달진심 제명진효 매차진심 제명개체 고이진심 절의자세

若達眞心 諸名盡曉 昧此眞心 諸名皆滯 故於眞心 切宜子細

 

때로는 마니주牟尼珠<여의주如意珠>라 한 것은 빈궁한 것은 전부 건저서 이익하게 하기 때문이요,

어떤 때는 무유쇄<구멍 없는 자물통>라 하는 것은 육정六情<六塵境界>을 잠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밖에 니우泥牛<진흙 소>, 木馬<나무 말>, 心源<마음 근원> 心印<마음도장> 心鏡<마음 거울>,

心月<마음 달>, 심주心珠<마음 구슬> 등 가지가지의 이름들을 가히 다 갖춰서 기록 할 수가 없다.

 

♧.石人<돌 사람>, 木人<나무 사람>, 石虎<돌 호랑이>, 鐵牛<쇠로 만든 소>,

    철사鐵蛇 <쇠 뱀>, 곤륜崑崙<수미산>, 목계木鷄<나무 닭 >..

 

만약에 眞心을 通達하기만 하면 모든 이름들을 다 밝게 알고

이 眞心<참마음>에 어두워버리면 모든 이름에 다 막힌다. 그러므로

우리 참마음<眞心>에 대해서 부디 간절히, 마땅히 自細히 알고 있어야 된다.

 

♤ 진심묘체[眞心妙體]

妙體라고 말하는 것은 묘할 묘妙자. 체는 몸 체體자니까 그 自體! 當體! 그런 뜻인데 이 妙자는 不可思議하다.

그냥 우리가 아름다울 妙! 또는 妙할 妙! 이렇게 말은 하지만 妙하다는 것을 좀 더 自細히 表現 하면

不可思議 하다. 生覺으로는 잘 알 수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불교 경전을 냉정하게 표현하면 全部 마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봐도 지나친 표현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이 眞心直說이라고 하는 이 法門은 정말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표현해보고 또 알 수 있는데

까지는 한번 우리가 분석해보고, 또 표현해 볼 수 있는데 까지 표현해보자 하는 그런 意志가 아주 잘 나타나

있어요.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과 祖師 스님들의 가르침의 差異点은 祖師 스님들은 直說로 가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眞心을 複雜하게 그렇게 돌려가면서 이야기 할 것이 뭐 있나? 바로 나타낼 수 있으면 하여튼 바로

나타내자 하는 것이 조사 스님들의 뜻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경전이나 조사 스님들의 고준한 法門을 통해서 우리가 眞心直說이다.

또는 眞心의 다른 이름이다. 眞心은 妙體다  하는 이런 말을 接하다 보면 이것이 또

경전에서 하는 소리! 또는 도인들이나 또 조사 스님들이 하는 소리!

이렇게 내 자신의 일상과 먼 것으로 생각하는 수가 일수예요.

 

그런데 事實은 가만히 따져 보면, 바로 우리가 每 瞬間 瞬間 살아가는 그런 삶 속에서

어떤 主體的인  役割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마음입니다. 每 瞬間 살아가는 그

主體的인 位置에 있는 것이 바로 眞心 이예요.

 

그래서 이 眞心이라고 하는 말은 事實은 내 삶의 가장 優先順位에 있는 것이고, 내 삶을 責任지는 것이

 또 眞心이고 그렇습니다. 따져  보면 우리 삶에  이런저런 條件들이 많이 動員이 되기는 하지마는

한마디로 要約 하면은 마음으로 살아요. 순전히 이 眞心 마음으로 다 삽니다.

마음이 運轉하는대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마음이 文殊院에 가야 된다고 하면 문수원에 가야 되고 또 가지 말자고 하면

또 안 가게 되는 것이고. 오늘은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러면 그 말을 들어야 되는 거예요.

 

그 主人公이 여기 누구누구의 眞心이라고 우리가 그 동안 공부해온 眞心이 바로 主人公입니다.

사람 사는 것이 순전히 이 마음 하나 가지고 살아요. 마음이 좋다면 좋고, 마음이 안좋다면 안 좋고.

마음이 덥다면 덥고. 마음이 춥다면 춥고...

 

우리가 모든 일을 어떻게 代行 하느냐 하는 것은, 結局은 마음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는 거예요.

옷을 벗자 하면 벗어야 되고, 옷을 입자 하면 입어야 되는 것이고 마음이 하자는 대로 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結局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우리가 하는 거예요.

 

나는 꿈을 꾸다가 늘 내 나름의 어떤 느낌을 經驗하게 되는데, ‘야 나는 이렇게 쉬고 있었는데’

所謂 '나'라고 하는 우리들 基準에서 '나'라고 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肉身을  중심으로 해서

'나'라고 하는 것.. 나는 이렇게 피곤해서 잠이 들어 있었는데 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내가 잠든 그 瞬間도 쉬지 아니하고 活動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꿈이라고 하는 作用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作用한 것이거든요.

몸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이 계속 活動을 한다고요. 그것이 진짜 나거든요

그래서 때로는 '내'가 하나로 있다가 둘도 되었다가. 셋도 되었다가. 넷도 되었다가 그래요.

 

‘야~ 나는 자고 있었는데 너인 나는 어떻게 이렇게 쉬지 않고 그렇게 온갖 갈데 다 가고 할 일 다 하고

꿈속에서도 온갖 森羅萬象 다 만들어 놓고, 그 森羅萬象 속에서 내가 活動하고 있었다.’ 이런 生覺을 하면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神奇한 거예요 世上에 이렇게 훌륭한 物件이 또 있을까?

 

우리는 참 神奇한 寶物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기가 막힌 寶物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들 집에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는지 금덩이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寶物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마음같이

奧妙 不可思議 하고 神奇할 수는 없어요. 참으로 신기한 物件입니다. 보통 신기한 寶物이 아니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름도 없고 우리가 便宜上 一心이다. 또는 한 물건一物이다. 또는일착자一着子다.

이 앞에서 여러 가지 이름들, 다양한 이름들을 우리가 소개를 받았지요. 佛性이다. 眞如다. 涅槃이다.

圓覺이다. 또 조사스님들은 심지어 木馬다.心源이다.心印이다.心鏡이다.心月이다.心珠다.

또는 마니주다. 如意珠다. 뭐 온갖 이름들을 다 동원을 하였지만 事實 本來는 이름이 없는겁니다

 

그래서 이름이 없어 놓으니까 이 이름 저 이름 자꾸 우리가 그 근사한 이름을 지어 붙여 보는거예요.

이 ‘神奇한 것’을 우리가 느껴야 돼요. 손에든 연필 보듯이 환히 들여 다 보이면 그것은 더 말할 것 없이

좋은 일이고, 정말 이런 마음工夫를 通해서 이 眞心 마음을 느껴야 된다고요.

 

사람이 人生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結局 全部 그 사람 마음먹은 대로 살아 가지 않습니까?

그 마음이 하자는 대로 우리가 人生을 살아가거든요. 그러고 보면 이 마음이라고 하는 物件이 形體도 없고,

이름도 뭐라고 부칠 수도 없고, 냄새도 없고, 빛깔도 없고,  그러면서도 참 妙한 作用을 하고 있거든요.

이것이 정말 神奇한 寶物예요.

 

그래서 이 寶物! 이 寶物에 對해서 우리가 제대로 좀 느끼기만 하면, 뭐 다른 어떤 地位를 가지고 있고.

 뭐 어떤 財産을 가지고 있고 하는 것이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다고요. 하나 부러울 까닭이 없어요.

 

‘야! 나는 이렇게 좋은 寶物을 가지고 있는데 이 보다 더 값진 寶物이 世上에 더 어디 있을까?’

그래서 無價寶! 無價眞寶! 이런 말을 하거든요. 無價寶!  眞心 마음은 값으로 매길 수가 없다는 말이예요.

無價寶! 또 無價眞寶! 이런 말을 하거든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그런 寶物!...

 

예를 들어서 다이아몬드가 주먹만 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값으로 못 매길 것은 아니거든요. 金井山 만한

금덩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값을 따지면 다 따질 수가 있다고요. 값을 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 寶物은

값이 없어요. 값으로 매길 수가 없어요. 無價寶! 값이 없는 寶物! 값으로 매길 수 없는 寶物이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眞心은 用無盡이예요. 無價寶는 用無盡이라고요. 쓰고 사용하는데도 다 함이 없다. 다할 진盡자.

다 쓸 수 없다 用無盡. 쓰는 것이 언제 끝날 期約이 없다 이거예요. 아무리 써도 써도 끝이 없어요 그래서

이 마음이라는 寶物은  다 쓸 수 없어요 바닥이 들어나지 않기 때문에. 어제 여러분들 얼마나 많이 썼습니까?

잠자면서도 써요. 잠자는 중에도  마음은 活動한다고요. 그런데 오늘 말짱 하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完全히

工場에서 금방 만들어낸 것같이 새로 그냥 쓰잖아요. 그래서 이 좋은 寶物 잘 쓰면 天下에 못 얻을 것이 없는데,

괜히 다른걸 가지고 우리는 무슨 세탁기 쓴다. 우리는 무슨 무슨 냉장고 쓴다. 무슨  차 탄다. 그것을 가지고

괜히 比較하고 주눅들고 할 것이 없다고요. 財産이 뭐 얼마다. 무슨 會社에서 무슨 課長이다. 뭐 局長이다.

部長이다 하는 것 그까지것 가지고 주눅들고 또 뻐기고 할 것이 절대 아니 예요.

 

이 寶物! 기가 막히는 이 寶物은 도저히 어느 것과도 比較가 안돼요 이런 훌륭한 寶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理解가 우리가 제대로 없어 가지고 자꾸 겉 돌아요. 가지고 있으면서도 겉 돌거든요. 그래서

“日用而不知” 우리는 每日, 每瞬間, 잠잘 때까지도 이 寶物 마음을 쓰고 있어요.

每日 쓰고 있으면서도 알지를 못해요.

 

보통 사람들은 每日 쓰면서도 쉴새 없이 每日 밤 낮 없이 쓰면서도 그 寶物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를 못해요.

그것이 문제예요. 우리가 第一로 問題 삼는 것이 그거예요.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것이 마음을 깨달았다는

거예요. 다른 것이 아니고 무가보無價寶!  眞心을!!! 無價寶를 깨달았다는 것이지.  값이 없는 그 寶物을

깨달았다는 것이지 다른 것이 절대아닙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깨달아 가지고 어떻게?..중생들을 이렇게

가만히 보니까 훌륭한 寶物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대체 그 寶物을 모르거든요, 그래서 안타까운

生覺이 드는 거예요. 하도 안타까운 生覺이 들어서 그래서 부처님이 成道하시고 나서 49年 동안 계속

쉬지를 않고 어떻게 하든 이 훌륭한 寶物을 理解시켜 줘야겠다. 알려줘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서

그렇게 열심히 다니면서 우리에게 그 寶物을 가르켜 준거예요. 그 寶物이 다른 것이 아니라 마음 眞心입니다.

 

누가 주는 것이 아니 예요. 나누어 줄 것 같으면 부처님이 다 나눠줬겠지요. 그런데 나누어 준 적이 없어요.

왜냐? 眞心 마음은 우리가 本來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줄래야 줄 수도 없고, 또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生覺해 보면 받을 수도 없는 거예요.

 

모두가 훌륭한 寶物을 가졌는데 이 寶物을 모르고 있으니, 늘 쓰면서도 모르고 사는 거예요.

모르고 쓰니까 조금 밖에 못쓰는 거죠. 萬分의 일 밖에 못쓰고 그저 十萬分의 일 쓸까 말까.

寶物을 가지고서도 千分의 일. 萬分의 일만 쓴다면은 그것은 너무나도 안타깝잖아요.

 

이 寶物이 더 이상 없는 寶物이라고 하는 事實! 이것은 무슨 훌륭한 學校에서 博士 學位를 수 십개 받는 것

보다도 이 寶物 하나를 제대로 가지고 있다는 事實을 아는 것이 훨씬 값나가는 것이고, 돈이 한 五兆원이

아니라 五百兆 五千兆를 가졌다 하더라도 이 寶物의 價値와는 比較 自體가 안 돼요.

 

五千兆원 하면은 너무도 엄청나니까 와~ 하고 입이 안 다물어지죠. 그런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無價寶는

五千兆는 문제도 아니예요. 그까짓 것 五千兆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寶物 값에다 대면 아이들 과자 값도

안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理解가 잘 되어야 돼요. 이것이 理解가 잘 되면 정말 부러울 것이 없어요 너무 기분

좋고 너무 든든하고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나는 잠자고 있는데 또 다른 나는 꿈속에서 活動을 하고 있었다.’

이겁니다. 그렇게 깊이 잠이 들었는데도 또 다른 나는 안자고 온갖 作用을 다하고 있고.

 

靈知라고 神靈스럽게 안다. 普通 아는 能力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神靈스러울 령靈자. 알 지知자 靈知라!

그런 意識의 狀態를 靈知不昧라 그래요. 우리가 깊이 잠들었어도 아는 作用을 하고 있는 것.

靈知不昧라. 神靈스럽게 알아서 愚昧 하지 않다. 매昧는 事實은 낮이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매昧자字는 날일日 변에 아닐 未자잖아요. 그러면 낮이 아니면 밤이지 뭐예요. 그래서 밤은 어둡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昧字의 뜻이예요. 그런데 이 寶物은 밤이 없어요.우리 마음자리에는 밤이 없어요. 不昧라는 소리는

어둡지 않다는 소리니까 밤이 없다는 말입니다.

 

靈知!.. 마음은 神靈스럽게 아는 作用을 活發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밤이 없어요. 우리 몸은 밤이 있어요.

이 몸뚱이는 밤에는 쉬어줘야 돼요. 잠을 자 줘야 된다고요. 그런데 이 眞心자리는 밤이 없어요.

영지불매靈知不昧. 우리 人間은 世上 天地에 없는 이런 神靈스런 寶物을 가지고 있어요.

참 이것은 보통 寶物이 아니 예요. 그러니까 보조스님 같은 이들이 고생고생 해가지고 人生 다 포기抛棄하고

이것 하나! 이 寶物 하나 찾겠다고 해가지고 찾아놓고 나니까, 이것을 어떻게 가르쳐 주어야겠다 그래서 이

眞心直說! 그래서 나는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겠다. 직바로直 마음을 이야기 하겠다. 그래서 眞心直說입니다.

 

우리가 이 훌륭한 寶物을 두고 괜히 자꾸 다른 寶物! 다른 價値! 卽, 우리가 사는 보람을 자꾸 다른데 두니까,

自己속에 아주 훌륭한 寶物이 있는데도 그것을 잊어버리고 팽개쳐버리고 다른 데서 자꾸 찾으니까 그것이

우리의 業이 되어 가지고, 어디에 마음을 팔지 않고. 귀를 팔지 않고. 눈을 팔지 않으면 가만히 못 있어요.

 

그래서 혼자 있으면 텔레비전을 켜든지.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비디오라도 빌려서 보던지.

안 그러면 전화를 해서 어디로 나오라고 하든지 뭐 커피 마시러 나가자고 한다든지. 아니면

오라고 한다든지 무슨 手를 써서라도 내 눈과 귀와 코 혀 몸 뜻을 자꾸 바깥 世上으로 바깥 境界에

팔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習慣이 되었다고요. 그것이 習慣으로 굳어져 있어요.

 

事實은 무엇과도 比較할 수도 없는 寶物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태자의 地位도 버리고 六年동안

苦行한 犧牲을 치르고 얻은 代價가 그것 아닙니까? 無價寶를 發見해 가지고 그것 하나 얻은 거예요. 그래

얻고 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우리에게 일러 주려고 49년 동안 그렇게 다녔지요.

 

그리고 마음에 대한 어떤 價値! 소상한 理解가 있어야 되고, 자꾸 理解를 하다 보면은 어떤 確信이 서게 되고,

確信이 서게되며는 느끼게 돼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보잖아요. 보는 것을 가지고 見性! 그런다고요.

 

佛性을 본다. 佛性을 보았다. 눈으로 事物을 보듯이 그렇게 보았다 이거예요. 그렇게 봤으면 完全한 거죠

그리고 자꾸 이런 이야기를 祖師 스님 말씀을 通해서 귀담아 듣고 우리 意識 속에 심어 놓는 것, 그 길이

그래도 最善의 方法이지요. 그렇게 되면은 그 寶物을 느끼게 된다고요.

 

여러분들 이렇게 들었으니까 어느 날 틀림없이 이 마음을 느끼게 될 거예요. 느끼게 되면

아~ 내 이 마음이라고 하는 이 寶物! 이 眞心이라고 하는 이 物件 정말 神奇하고 神靈하다.

정말 이 寶物 眞心이 不生不滅이구나! 나는 잠 드는데 지는 잠들지 않고 그렇게 靈知不昧로 있으니,

과연 내 몸은 죽어도 지는 分明히 죽지 않는 道理가 있구나. 안 죽는 道理! 그래서 그 寶物을 不生不滅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라는 事實을 우리가 알게 될 거예요.

 

그런데 이 마음이 別에 別 能力이 다 있어 가지고 이 마음이 하자는 대로, 다 해 내지 않습니까?

그런 어떤 價値! 마음의 價値! 또 奧妙 不可思議함!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하더라도 좀 가까이

느껴야 하는 것이 急先務입니다. ....◇◇◇....

 

 

3  진심의 묘체[眞心妙體]


혹왈진심이지명자 기체여하야 왈방광반야경운 반야무소유상 무생멸상

或曰眞心已知名字 其體如何耶 曰放光般若經云 般若無所有相 無生滅相

 

기신론운 진여자체자 일체범부성문연각보살제불 무유증멸 비전제생
起信論云 眞如自體者 一切凡夫聲聞緣覺菩薩諸佛 無有增滅 非前際生

 

비후제멸 팔경당항 종본이래 성자만족일체공덕 거차경론 진심본체
非後際滅 必竟當恒 從本已來 性自滿足一切功德 據此經論 眞心本體

 

초출인과 통관고금 불립범성 무제대대 여태허공 편일체처 묘체응적
超出因果 通貫古今 不立凡聖 無諸對對 如太虛空 遍一切處 妙體凝寂

 

절제희론 불생불명 비유비무 부동불요 담연상주 환작구일주인옹
絶諸戱論 不生不滅 非有非無 不動不搖 湛然常住 喚作舊日主人翁

 

명왈위음나반인 우명공겁전자기 일종평회 무섬호하예 일체산하대지
名曰威音那畔人 又名空劫前自己 一種平懷 無纖豪瑕穢 一切山河大地

 

초목총림 만상삼라 염정제법 개종중출 
草木叢林 萬象森羅 染淨諸法 皆從中出

 

或者가 말하기를: “眞心이라는 이름은 이제 알았거니와. 그러면 本體는 어떠합니까.”라고 물으니

답하되: “放光般若經에 이르대 ‘般若는 形相이 없어서 生과 滅의 모습이 없다’하였고,

 

起信論에는 ‘眞如 自體는 모든 범부나 성문, 연각, 보살, 제불에 있어서 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으며

前生에서 생겨난 것도 아니고 後生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必竟에는 끝까지 恒常하여 本來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佛性이 스스로 一切 功德을 滿足하고 있다.’하였다.

 

이러한 經과 論을 열거한 것인 데, 眞心의 本體는 因果를 超越하고 古今을 꿰뚫고, 凡夫  聖人을

세우지 아니해서, 모든 相對가 끊어져서 없다. 太虛空이 一切處에 두루해서 一切에 두루 해 있다.

이 眞心妙體는 고요해서 모든 戱論을 全部 끊었다. 그러므로 이 眞心妙體는 생기는 것도 아니며,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움직이고 흔들리지 않는 性質이다.

아주 말쑥하게.. 맑게湛然하게  恒常 고요히 머문다.常住

 

♤ 참으로 말이 재미있지요. 佛敎니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眞心은 '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처음 들으면 장난하는 소리 같지마는 이 말이 정말 제대로 된 論理랍니다.

왜냐? 이 眞如라고 하는 것, 眞心이라고 하는 寶物이 그렇게 되었으니까. 本來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있다고 하려니 없고 없다고 하려니

있고, 그래서 있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하는 것도 아니요..◇..

 

그래서 옛날 주인옹主人翁이라고 이름을 부른다. 위음왕<최초의 부처님>보다 더 이전의 사람<위음나반인>

이라고도 하고 또 空劫<아주 오래 전>前의 自己라고도 한다. 한 가지로 평탄해서 털끝만한 티도 없이,

森羅萬象 草木瓦石, 江, 山, 善, 惡, 좋은 것, 나쁜 것, 染淨등의 모든 法이 다 그 가운데서

<眞心妙體: 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고원각경운 선남자 무상법황 유대다라니문 명위원각

故圓覺經云 善男子 無上法王 有大陀羅尼門 名爲圓覺

 

유출일체청정 진여보리열반 급바라밀 교수보살

流出一切淸淨 眞如菩提涅槃 及波羅蜜 敎授菩薩

 

故로 圓覺經에서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無上의 法王에게 큰 다라니<총지總持>門이 있으니

그 이름을 圓覺이라 한다. 그 圓覺은 아주 맑고 깨끗한 眞如와 菩提와 涅槃과 波羅蜜을 물 흘려보내듯

흘려보내어流出  菩薩들을 가르친다.’하였다.

 

규봉운 심야자 충허묘수 병환영명 무거무래 명통삼제 비중비외 통철시방
圭峰云 心也者 沖虛妙粹 炳煥靈明 無去無來 冥通三際 非中非外 洞澈十方

 

불생불멸 기사산지가해 이성이상 해오색지능맹  고영명유심결운 부차심자 
不生不滅 豈四山之可害 離性離相 奚五色之能盲  故永明唯心訣云 夫此心者

 

중묘군령이보회 위만법지왕 삼승오성이명귀 작천성지모 독존독귀 무비무주 
衆妙群靈而普會 爲萬法之王 三乘五性而冥歸 作千聖之母 獨尊獨貴 無比無儔

 

실대도원 시진법요 신지즉삼세보살동학 개학차심야 삼세제불동증 개증차심야

實大道源 是眞法要 信之則三世菩薩同學 蓋學此心也 三世諸佛同證 蓋證此心也

 

 일대장교전현 일체중생미망 개미차심야 일체행인발오 개오차심야
一大藏敎詮顯  一切衆生迷妄 盖迷此心也 一切行人發悟 盖悟此心也

 

또 규봉圭峰스님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텅~비었으면서 虛妙하고 깨끗하다. 神靈스럽게 밝으며,

또 감도 없고 옴도 없으나, 남몰래 삼제冥通三際<과거, 현재, 미래>가 通한다. 또 몸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非中非外 시방통철十方洞澈이라 宇宙를 꿰뚫는다

 

消滅하는 것도 아니고 또 생기는 것도 아니거니 어찌 四山<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

가히 害칠 수 있겠으며, 性稟도 떠나고 貌樣도 떠났으니離性離相 어찌 五色<온갖 現實>이 우리로

하여금 能히 눈을 멀게 할 수 있겠는가?” 奚五色之能盲하였다.

 

♤ 우리 마음자리에는 아무런 感情의 흐름이 없었어요. 喜怒哀樂, 善惡 是非가 없었어요. 善도 惡도

옳고 그른 것도 마음자리에는 전혀 없다고요. 마치 영화 스크린 畵面에 물 흘러가는 過程에서

이런 소리도 나고. 굽이 돌아서 흐르기도 하고. 콸콸 여울이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하면서.

어떤 現象이 잠깐 잠깐 스치고 지나갈 뿐이지. 드라마 끝나면 아무 일이 없잖아요...◇◇◇...

 

永明延壽선사의 유심결[唯心訣]에서

“대저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온갖 微妙한 것과 神靈스러운 것이 널리 모여서 萬法의 王이 된다"

하였다. 衆妙群靈而普會 爲萬法之王

 

♤ 정말 이 眞心 마음보다 더 위대하고 뛰어난 그런 群靈者는 사실 없습니다. 어떤 權力者가 아무리

억압抑壓을 하고. 拘束 하고 사람을 꼼짝 달싹 못하게 하더라도, 몸은 拘束할지는 몰라도

마음은 전혀 拘束이 안돼요. 마음은 얽어 맬 수가 없어요. 아무리 사람을 구속해봐도

이 마음 眞心은 어디 어느 것에도 絶對 拘束이 안됩니다. 마음은 自己 스스로 마음이 내켰을 때 그 때

승복이 되는 것이지. 自己 마음이 안 내키는데 뭐 그냥 武力으로 우격다짐으로 윽박질러서 묶어 놓아봐요.

그 마음이 묶여지는가. 그럴수록 더 튀고 더 반박反駁 반발을 한다고요. 그러니까 마음은 萬法의 王이다.

이것은 釋迦牟尼부처님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들 마음도 똑 같습니다. 結局에는 自己 子息이라 해서 

내가 낳았으니까 내 자식의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그렇게 잘 됩니까?

그것은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렇게 내 마음대로 자식의 마음이 안 된다고요.

 

여러분들은 뭐 父母 말 잘 들었나요? 안 들었잖아요.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이 마음을 가진

어떤 獨立된 한 人格體는 이미 이 世上의 王이다. 이 世上 萬法의 王이다 라고 生覺하고 認定을 해줘야 돼요.

마음이 萬法의 王이라고 했잖아요. 마음은 萬法의 王 이예요...◇◇◇...

 

또 三乘과 五性<聲聞性, 緣覺性, 菩薩性, 不定性, 無善根性>이 다 眞心 그리로 돌아가서 一千聖人의 어머니

作千聖之母를 짓는다. 마음은 홀로 높고 홀로 귀獨尊. 獨貴하여 무엇과도 比較 할 수도 없고 짝할 것도 없으니,

萬法으로 더불어서 짝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냐? 실로 큰 道의 根源이며 眞理의 그 요점이 이 마음이다”하였다. 

 

이렇게 믿는다면 三世의 菩薩이 다함께 工夫한 것도 이 마음을 工夫한 것이요

三世의 諸佛이 다 함께 깨친 것도 이 마음을 깨친 것이요,

八萬大藏經이 가르치고 드러낸 것도 이 마음을 드러낸 것이며,

일체중생이 어리석은 것도 이 마음이 어리석은 것이요

모든 수행인이 깨달은 것도 이 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일체제조상전 개전차심야 천하납승참방 개참차심야 달차심즉두두개시

一切諸祖相傳 盖傳此心也 天下納僧參訪 蓋參此心也 達此心則頭頭皆是

 

물물전창 미차심즉처처전도 염념치광 차체 시일체중생 본유지불성 
物物全彰 迷此心則處處顚倒 念念痴狂 此體 是一切衆生 本有之佛性

 

내일체세계생발근원 고세존취봉양구 선현암하망언 달마소실벽관
乃一切世界生發根源 故世尊鷲峰良久 善現巖下忘言 達摩少室壁觀

 

거사비야두구 실개발명차심묘체야 고초입조문정자 요선식차심체야

居士毘耶杜口 悉皆發明此心妙體也 故初入祖門庭者 要先識此心體也

 

모든 祖師가 傳한 것도 이 마음을 傳한 것이며, 천하의 衲子들이 참구參訪하며 찾아다닌 것도

이 마음을 工夫하기 위함인 것을 알 것이다. 이 마음을 통달 通達此心 하면 온갖 것이 다 옳고

對하는 物件마다 온전히 그 價値가 드러날 것이다. 物物全彰

 

그러나 이 마음을 모르면 가는 곳마다 잘못되고處處顚倒 생각하는 것마다 잘못된다.念念痴狂

이 眞心의 알맹이는 一切 衆生이 本來 가지고 있는 佛性이요 本有佛性, 또

一切 世界가 發生하는 根源이다. 一切世界生發根源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영취산靈鷲山에서 양구良久하셨고, 선현<수보리> 존자는 바위 아래서

할 말을 잊었고忘言, 달마스님은 소림굴에서 壁을 向해 앉이있었고壁觀, 유마거사는 비야리성城

에서 입을 다물었던 것은杜口 모두 다 이 眞心<마음자리>의 妙體를 말없이 드러낸 것이다.

 

 

 

 4  참마음의 묘용[眞心妙用] ----

 

♤ 眞心妙用이란 '참마음의 作用'인데  그 참마음의 作用을 우리가 眞心이라는 事實을 모르고 마음을 쓸 때는,

그것은 그냥 단순한 行動일 뿐이예요. 單純한 行動.. 밥을 먹으면 법 먹는 것뿐이고, 잠을 자면 자는 것뿐이고.

말을 하면 말하는 것뿐인데, 여기서 普照 지눌스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은 眞心의 妙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손을 들고 발을 옮기고 말을 하고 눈을 끔벅거리고 하는 이런 作用들이 全部

마음 作用이다 이 말입니다 마음作用!  예를 들어서 웃든지. 울든지. 기뻐하든지. 슬퍼하든지 이 모두가

마음의 作用임을 알아야 된다. 事實 그것이 마음 作用이거든요.

 

그래서 모든 現象들이 事實은 다 마음 作用인데 우리는 그 現象들을 마음의 作用으로 보지 않고 現象을 쫒아가요.

눈앞에 벌어져있는 그런 現象만 쫒아가지 그 現象이 마음의 作用이라는 事實을 忘覺합니다, 다시 말해서 主體的인

立場이 되지 못하고 자꾸 客體的인 立場에서 자꾸 現象들을 生覺하게 되는 거예요. 客體 立場에서 보는 거예요.

 

내 主體的인 立場에서 現象을 生覺하면 全部 내 마음이 하는 作用. 내 眞心이 하는 作用 이렇게 生覺해야 될텐데.

그렇게 알아야 되는데, 事實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은 現象만 자꾸 쫒아가다 보니까, 現象에 속고

現象에 빠지고, 그 現象이 어떻게 되었느냐? 現象 거기에 그만 精神이 팔려버리는 거죠. 거기에 속아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現象에 속고 現象에 意識이 팔려버리게 되면 되면, 그 現象은 마음의 作用이 아니고 말하자면

마음의 作用은 現象의 심부름꾼. 現象에 부림을 당하는 노예<奴> 이런 立場이 되어버려요.

내 마음이 마음의 作用인 現象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내 마음의 作用인 現象 卽, 어떤 펼쳐져 있는 모든 境界에

對相에 主體인 내 마음이 부림을 당하는 立場이 돼버리는 겁니다요....ㅠㅠㅠㅠ...

 

혹왈 묘체이지 하명묘용야 왈고인운 풍동심요수 운생성기진 약명금일사

或曰 妙體已知 何名妙用耶 曰古人云 風動心搖樹 雲生性起塵 若明今日事

 

매각본래인 내묘체기용야 진심묘체 본래부동 안정진상 진상체상 묘용현전
昧却本來人 乃妙體起用也 眞心妙體 本來不動 安靜眞常 眞常體上 妙用現前

 

불방수류득묘 고조사송운 심수만경전 전처실능유 수류인득성 무희역무우

不防隨流得妙 故祖師頌云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

 

 혹자가 묻기를. “묘한 체 妙體에 대해서는 이제 알았지만 妙한 作用이란 무엇입니까?”

 

답하되. “고인이 말씀하기를 ‘바람의 움직임에 마음이 나무를 흔들고/ 성품에서 진塵<煩惱>을 일으킨다/

만약 오늘 일<認識作用>을 밝히려고 한다면/ 本來인<眞心>을 昧却해야 된다.’하였으니 이것이 곧

眞心의 妙한 本體가 作用을 일으킴 起用을 말한 것이다. 昧어두울매 却물리칠각

 

眞心의 妙한 本體는 本來 不動해서 平安하고 고요하며, 眞實하고 恒常하다. 이 참 답고

恒常한 本體에서 마음이 나타나 現象의 흐름을 따라 妙를 얻는데 拘碍 防害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祖師의 게송에서도

“마음은 온갖 가지 境界 因緣을 따라 일어나서 구르지만 心隨萬境轉

마음은 일어나 흐르고 구르는 곳마다 恒常 그 瞬間 그 곳에 새록새록 그윽히 스며있다.轉處實能幽

마음의 흐름을 타고서 그곳에 마음의 本性이 있음을 認識해서 터득하게 된다면隨流認得性

기쁨도 없고 또한 근심도 없다”하였다.無喜亦無憂

 

♤ 우리 意識은 마음의 作用인 現象을 마음의 作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獨立된 現象으로 봐버리는 거예요.

어떤 事故가 일어나서 어떤 家族을 잃었다면 '家族을 잃었다'라고만 生覺하지 그 事故가 '마음의 作用이다'

라고는 生覺을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現象을 볼 때 그 現象을 쫒아가기는 어쩔 수 없이 다 쫒아가요.

그런데 그 事故 現象이 全部 내 마음이 介入되서 그런 어떤 現象이 벌어지고, 現象이 벌어져도 내 마음이

그 現象에 介在되지 아니하면 그 現象은 存在하지 않는다는 事實.. 마음의 작용인 모든 現象 全部에 마음의

性稟이 介在되어 있다는 事實을 알면 모든 現象에는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다. 라는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고일체시중 동용시위 동행서왕 끽반착의 염시롱저 좌고우반 개시진심묘용현전 
故一切時中 動用施爲 東行西往 喫飯着衣 염匙弄箸 左顧右盼 皆是眞心妙用現前

 

범부미도 어착의시 지작착의회 끽반시 지작끽반회 일체사업

凡夫迷倒 於着衣時 只作着衣會 喫飯時 只作喫飯會 一切事業

 

단수상전 소이재일용이불각 재목전이부지 약시식성저인 동용시위 부증매각

但隨相轉 所以在日用而不覺 在目前而不知 若是識性底人 動用施爲 不曾昧却

 

그러므로 모든 時間 속에서 잠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움직이고 작용하고, 베풀고, 영위하고,

또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고, 또 밥을 먹고 옷을 입거나 벗고, 숟가락을 들고 젓가락

을 놀리고, 또 좌우 부르는 쪽을 돌아보고 하는 것들이 全部 이 眞心<마음>의 妙한 作用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妙用現前

 

그러나 凡夫들은 迷惑하여 옷을 입을 때에는 단지 옷 입는 것만을 알고, 밥을 먹을 때에는 다만 

밥을 먹는다는 認識 뿐, 모든 일에 相을 따라서 움직임<相轉>일 뿐이다. 이렇기 때문에 이 마음을

날마다 쓰면서도 그 쓰임이 마음의 作用인지를 알지 못하고, 눈앞에 나타나 있어도 알지 못한다.

 

全部 내 마음이 만든 世上인데 그것을 理解하지 못하고 마음의 作用인 눈앞의 現象만 본다用而不覺

그러나 만일 마음의 本性을 제대로 터득해 아는 사람이라면, 行動하고, 作用하고, 베풀고, 시위하는

一切 行動 가운데서 환하게 알 것이다.不曾昧却

 

고조사운 재태명신 처세명인 재안관조 재이청문 재비후향 재구담론 재수집착 
故祖師云 在胎名身 處世名人 在眼觀照 在耳聽聞 在鼻嗅香 在口談論 在手執捉

 

재족운망 편현구해법계 수섭재일미진 지지자 위시불성 불식자 환작정혼 
在足運莽 徧現俱該法界 收攝在一微塵 知之者 爲是佛性 不識者 喚作精魂

 

그러므로 祖師가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태胎 안에 있을 때는 몸身이라 이름하고, 세상에 나오면 사람이라 이름하며,

눈에 오면 보게 되고在眼觀照, 귀에 오면 소리를 듣게 되고在耳聽聞,  코에 오면 香氣를 맡게 되고,

입에 오면 말을 하게 되고在口談論, 손에 오면 물건을 잡고 놓고在手執捉,

발에 있을 때는 부지런히 걸어 다니고在足運莽, 두루 두루 나타나서 온 宇宙法界를 모두 감싸며,

거두어 들이면 한 티끌 위에도 있다. 이 理致를 아는 자는 그 마음을 佛性이라 여기고,

모르는 자는 정혼精魂이라 부른다’ 하였다.


소이도오무홀 석공염궁 비마경차 구지수지 흔주타지 운암사자

所以道吾舞笏 石鞏拈弓 秘魔擎箚 俱胝竪指 忻州打地 雲巖師子      擎들 경  箚작살 차

 

막불발명저착대용 어일용불미 자연종횡무애

莫不發明這着大用 於日用不迷 自然縱橫無碍

 

 그러므로 도오道吾스님이 홀笏을 잡고 춤을 춘 것 <후학이 法을 물으면 도오스님은 홀을 들고 춤을 추어

마음을 보였다>이나, 석공石鞏스님이 활을 당긴 것<원래 사냥꾼이었던 석공은 깨달은 뒤 활을 당기는

시늉으로 法을 말했다>이나, 비마秘魔스님이 작살을 든 것<작살을 들어서 法을 보였다>이나,

구지俱胝스님의 손가락 세우기나, 흔주스님이 땅을 두드린 것<땅을 치는 것으로 法을 보였다>이나,

운암雲巖스님의 사자獅子<그는 사자를 키우면서 法을 물으면 그 사자를 희롱하는 것으로 法을 보였다> 등이

모두 이 眞心의 作用을 나타낸 것 아님이 없으니, 日常生活에 그것만 迷惑되지 않는다면 이리가나 저리가나

自由自在하여 大自由人이 될 것이다.”

 

 

 5  眞心의 本體와 作用은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眞心體用一異]

 

혹왈진심체용 미심시일시이야 왈약상즉비일 약성즉비이 고차체용 비일비이

或曰眞心體用 未審是一是異耶 曰約相則非一 約性則非異 故此體用 非一非異

 

하이지연 시위논지 묘체부동 절제대대 이일체상비 달성계증자 막측기리야
何以知然 試爲論之 妙體不動 絶諸對待 離一切相非 達性契證者 莫測其理也

 

묘용수연 응제만류 망립허상 사유형상 약차유상무상 고비일야 우용종체발
妙用隨緣 應諸萬類 妄立虛相 似有形狀 約此有相無相 故非一也 又用從體發

 

혹자가 묻기를. “우리 마음의 本體와 作用에 대해서 모르겠다. 같은 하나인가, 다른 것인가?” 答하되.

“相으로 본다면 하나가 아니나, 본바탕으로 본다면 다르지가 않다. 그러므로 본체와 작용用은 하나라고

할 수도 없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어째서 그러한 줄을 아는가 하면 시험삼아 그것을 말해보겠다.

 

♤ 이런 佛敎 이야기는 自細히 들어야 납득이 가는 말인데. 世上에는 이런 말이 없어요

體와 用이 하나면 하나고 다른 것이면 다른 것이지, 하나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非一非異.

 이렇게 말을 하고 있어요. 불교는 이런 말을 많이 씁니다...◇◇◇...

 

神妙한 體<妙體>는 움직임이 없어서 모든 대待와 상대對를 超越하여 一切 상<相>을 떠났으므로 離一切相

本性을 깨달아 證得한 자가 아니면 그 理致를 測量할 수 없다.

 

♤ 妙體<眞心>은 不動하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텅~빈 것이고 또 그러면서도 없지 않으니.

참으로 찾기가 어려운 거예요. 感이 잘 안 잡히는 것이 우리의 심체心體입니다.◇

 

그리고 妙한 作用은 因緣을 따라서妙用隨緣  온갖 가지 種類에 應하여應諸萬類 妄靈되이 虛相을 세우므로

마치 形相이 있는 것 같다. 이 相이 있고有相, 相이 없는 것無相, 이것에 依持하는 고로 하나가 아니요,

同時에 묘용用은 본체體로 부터 생긴 것이다.

 

용불리체 체능발용 체불리용 약차불상리이고 비리야

用不離體 體能發用 體不離用 約此不相離理故 非異也

 

여수이습위체 체무동고 파이동 위상 인풍기고 수성파상 동여부동고

如水以濕爲體 體無動故 波以動 爲相 因風起故 水性波相 動與不動故

 

비일야 연파외무수 수외무파 습성시일고 비리야 유상체용일 이 가지의

非一也 然波外無水 水外無波 濕性是一故 非異也 類上體用一 異 可知矣

 

또 여섯가지<六識>作用 用은 本體<마음>로부터 生기는 것이니 作用은 體를 떠난 것이 아니며,

本體는 能히 作用을 나타내는 것이니 本體는 作用을 떠난 것이 아니다.

 

♤ 그래서 體는 能히 用을 발하고, 그래서 그 體가 用을 떠나 있지 않다. 참 作用이 妙한 거죠.

 이 마음 보다 더 뛰어난 機械는 없습니다. 만약에 機械라고 생각을 해도 이런 妙한 機械가 어디 있겠어요?

機械라면 貌樣이라도 있어요 아무리 작은 마이크로칩이라 하더라도 모양이 있다고요. 그런데  이 마음은

먼지만한 모양도 안 가지고 形相도 없으면서, 또 이런 훌륭한 작용妙用을 하는 거예요.

참으로 妙하다고 하는 말을 여기밖에 더 쓸 데가 없어요. 이 마음 問題 가지고 이야기할 때 참 妙하다고

해야 돼요. 참말로 妙한 것이 이 마음이죠. 마음은 전혀 흔적痕迹도 없이 自在로이 作用을 하거든요.

暴風을 일으키고 태풍颱風을 불러일으키고 그냥 그래서 온 집안을!..온 세상을! 그냥 집어 삼킬 듯이

할 때가 있는가 하면 잔잔할 때도 있고 전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때가 있고, 잠들었을 때는 모르지요

그렇게 사람을 못살게 굴고 말이지 술에 만취가 되어서 고래고래 옆사람을 그렇게 괴롭히다가도 잠들어봐요,

 


기쁠 때 하고 슬플 때, 또 화가 치밀어 오를 때의 극한적인 작용들!. 극한적인 그런 상황들을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을 통해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전부 이 한 마음이 깃들어서 그런 作用을 일으키게

되는데, 참 너무나도 妙하다고 밖에 달리 다른 말이 해당이 안 되지요...◇◇◇...

이렇듯 서로가 떠나있지 아니한 理致를 依知한 까닭에<妙體와 作用> 다른 것도 아니다.

 
 
예컨데 물은 濕氣<젖는 성품>로 體를 삼아서 있기 때문에, 그 體는 움직이지 아니하는 고로

물결이 움직이는 것을 相으로 삼아, 바람을 연고로 起因하는 물결의 모양이

動과 不動하는 까닭에 하나가 아니요,

 

그러나 물결 밖에 물이 없고波外無水, 물 밖에 물결이 없어서水外無波  結局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이상으로 미루어보아 本體와 作用이 하나인지 다른지를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어떤 물결<相>이 일어나든지. 우리 마음속에 어떤 波濤가 치던지

    그것을 全部 물<마음體>로 볼 줄 알면 全部 다 解決이 다 돼 버려요...◇◇◇...

 

 

  6  진심이 중생 마음에 있을 때[眞心在迷]

 

혹왈진심체용 인인구유 하위성범부동야 왈진심 성범본동 범부망심인물

或曰眞心體用 人人具有 何爲聖凡不同耶 曰眞心 聖凡本同 凡夫妄心認物

 

실자정성 위차소격 소이진심 부득현전 단여암중수영 지하유천 유이불식이
失自淨性 爲此所隔 所以眞心 不得現前 但如暗中樹影 地下流泉 有而不識耳

 

혹자가 묻기를: 진심의 체體와 용用이 사람마다 다 갖추어져 있는데人人具有

어째서 聖人과 凡夫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까?

 

답하되: 참 마음은 사람마다 다 갖추어 있건만, 凡夫는 妄靈된 마음妄心으로 事物을 認識함으로써

逆順  境界를 쫒아 自己의 맑은 本性 淨性을 잃어 막힌 바가 되었다. 그런 때문에 眞心이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 다만 이와 같다. 暗黑속의 나무 그림자나 땅속을 흐르는 물처럼 있으되 알지 못할 뿐이다.

 


고경운 선남자 비여청정마니보주 영어오색 수방각현 제우치자 
故經云 善男子 臂如淸淨摩尼寶珠 映於五色 隨方各現 諸愚痴者

 

견피마니 실유오색 선남자 원각정성 현어신심 수류각응 피우치자 
見彼摩尼 實有五色 善男子 圓覺淨性 現於身心 隨類各應 彼愚痴者

 

설정원각 실유여시 신심자성 역부여시
說淨圓覺 實有如是 身心自性 亦復如是

 

그러므로 經에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비유하자면, 맑고맑은 보배구슬寶珠에 五色 빛이

方向에 따라 各各 나타날 때 어리석은 사람은 저 마니주에 실제로 다섯 빛깔이 있다고 본다.

 

선남자야 圓覺의 淸淨한 性稟이 몸과 마음을 나타내어서 部類에 따라 各各 거기에 應한다.

저 어리석은 사람은 말하기를 淸淨한 圓覺에 實際로 身心自性이 있다고 하는것도 이와 같은 이치이다.’하였다.

 

조론운 건곤지내 우주지간 중유일보 비재형산 차내진심재전야

肇論云 乾坤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秘在形山 此乃眞心在纏也

 

우자은운 법신본유 제불공동 범부 유망복 유이불각 번뇌전과 득여래장명

又慈恩云 法身本有 諸佛共同 凡夫 由妄覆 有而不覺 煩腦纏裹 得如來藏名      纏얽힐 전 裹쌀 과

 

배공운 종일원각 이미상원각자 범부야 고지진심 수재진로 불위진로소염

裵公云 終日圓覺 而未嘗圓覺者 凡夫也 故知眞心 雖在塵勞 不爲塵勞所染

 

여백옥투니 기색불개야
如白玉投泥 其色不改也

 


또 승조僧肇법사 조론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 안, 宇宙 사이의 그 가운데 하나의 寶物이 있으니

形山<몸>에  秘密히 숨겨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眞心이 煩惱에 얽혀있는 것이다.

 

또 자은慈恩스님은 ‘法身은 本來부터 있어서 모든 부처가 共通으로 가졌건만 凡夫는

妄靈된 마음에 덮여있으므로 말미암아 가지고 있건마는 깨닫지 못할세, 煩惱에 싸여 있으므로

여래장如來藏<몸속에 감춰져 있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하시고,

 

또 배공<裵休>은 말씀하시기를 ‘종일토록 圓覺입니다. 일찍이 圓覺이 되지 못하는 것이범부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알라 眞心이 비록 煩惱妄想 가운데 있으나 煩惱에 汚染되지 않음은 마치 白玉이 진흙에 던져지매

그 色이 變하지 않는 것과 같다.

 

♤ 우리가 아무리 貪.瞋.癡<3毒>을 부리고, 뭐 도둑질 하고 天下에 온갖 나쁜 짓이란 나쁜 짓을 다 하더라도

그 마음자리에는 때가 묻지를 않아요. 그 마음자리에는 허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 마음자리에는 아무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죠. 그 마음자리는 고스란히 그냥 그대로 있다고요.

 

다이아몬드diamond를 흙 속에. 거름 속에 집어넣어도 그 다이아몬드는 그 빛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가

누구 눈에 띄면 寶石의 價値를 제대로 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 衆生이 비록 시원치 않은 그런 人間으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그야말로 부처가 들어앉아 있어요.

 

如來藏, 如來가 인간 그 속에 갈무리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確信해야 돼요

그래서 이런 소리 듣고는 어깨가 우쭐해져야 돼요.‘아! 내 안에 부처가 바로 들어 앉아있구나!

언제 나도 부처 행세를 할 때가 있겠구나!.’ 그렇게 生覺을 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事實은 우리 眞心의 所重함!  그 偉大함, 그것을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긴다면

현재 우리 處地가 뭐 어떻다손 치더라도 크게 念慮 안해도 되는 거예요 念慮할 필요가 없다고요.

이런 確信이 서있다면 오래 時間 걸리지 않습니다. 금방 다 解消 되어버려요.

 

佛敎 내에서도 眞心直說같은 이런 法門은 最上乘 法門 이예요. 가장 高手입니다.法門 中에 法門 이예요.

부처님 法門 중에도 이런 법門이 크게 흔치가 않아요. 부처님은 설화와 비유도 많고 그렇지마는 이렇게

핵심적인 법문은 부처님 법문의 양에 비해서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이것이 核心이고 아주 그야말로 뼈대만 추려놓은 그런 法門이 돼 가지고 오히려 우리 根機에 얼마나

受容이 될까? 그것이 念慮라면 念慮인데, 法門으로서는 이 以上의 法門이 없다고 봐도 좋아요.

정말 八萬四千 法門의 核心만 추려놓은 그런 내용입니다...◇◇◇...

 

 

 ♧ 출처 : 염화실拈花室 http://cafe.daum.net/yumhwasil/

 ♧ 음악 : 불교명상음악 http://cafe.daum.net/20243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