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본질이 깃든 인간의 참모습♣
人間은 무엇 때문에 이 世上에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 聖人들께서 경전을 통해서 명쾌하게 答을 주셨는데,
사람이 物質世界에 탐착하고 執着하는 欲心 때문에 그 答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성인들께서는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이 고통과 재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미 상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 외에 새롭게 더 할 말은 조금도 없습니다.
인간의 참된 모습(本性)은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으며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인간의 참 모습(本性)은 永遠히 살아가는 금강불괴(金剛不壞)의 靈的 生命體입니다.
人間의 참 모습(本性)은 肉體라는 껍데기 옷을 입고 있는 永遠不滅의 神입니다.
물론 이 인간의 참 모습, 본성이라는 개념도 어디까지나 여려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方便的인 道具일 뿐입니다.
하나님도 인간 自身 속의 本性에 지나지 않으며, 부처님도 인간 自身 속의 本性에 지나지 않습니다.
곧, 이 宇宙의 모든 創造主라고 하는 것들이 단지 人間 自身 속의 本性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本性이 깃들어 있는 자신이나 자신의 부모, 형제, 처자, 이웃도 모두 각자 독립된 개체로써
聖스러운 神입니다. 각각의 겉모습은 비록 다를지라도 人間 內面의 참 모습은 自他가 一體이며
宇宙의 大生命과 하나인 것입니다.
人間의 生命이 이 世上에 태어날 때, 各各의 個體는 이미 이 世上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미리 프로그래밍해서 알고 왔으니, 그것이 천성(天性)입니다. 그런데 肉體라는 인간의 옷을
입고 나와서부터는 시각(眼),청각(耳),후각(鼻).미각(舌).촉각(身), 의식(意),이라는 欲望 때문에,
이 世上에 온 참된 목적, 즉 天性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天性을 다시 찾아 천부합(天符合)되는 삶을 살도록 하려고,
석가께서는 眼, 耳, 鼻, 舌, 身, 意라는 欲望은 眞實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의 肉體의 行爲로는 義를 결코 實現할 수 없다'고 강조하시고,
당신의 肉體 즉 석가께서 말씀하신 本性을 가리고 흐리게하는 여섯 도적, 곧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의식이라는 感覺的인 欲望을 十字架에 못 박으심으로써
人間이 自身의 참 모습(本性)을 되찾아서 '自由와 平和와 사랑의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人間의 참 모습은 肉體가 아니라 '永遠不滅의 靈' 에 있습니다.
形態를 가지고 있는 모든 物體는 반드시 그 시작됨과 끝남이 있느니,
인간의 육체 또한 틀림없이 조만간 사라질 물거품 같은 그림자입니다.
<聖經>에서 '살리는 것은 靈이요, 肉은 無益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肉身은 반드시 終末이 있고 有限하며 無益하니 肉身을 위해 살아서는 결코 참된 幸福이
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肉身이나 物質에 기인한 삶의 모든 問題는 本來부터 끝없는 '虛想'일
뿐이니 그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없습니다.
無意識的인 進化의 頂點인 人間으로 태어난 목적은 삶이라는 학습 현상을 통한 '진화된 영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입니다. 現世에 태어나서 누구를 만나든 그 만남은 靈魂의 進化를 위해서 '前生의
計劃 아래' 이 세상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靈的 進化에 적합한 학습을 하기 위해 人間은 모든 것 곧, 부모. 형제. 처자. 이웃 등을
모두 스스로가 選擇해서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떠한 환경이나 여건에
처해지든지 그것은 自身의 意志와 關係없이 發生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選擇한 것입니다.
즉 自身과 關係맺는 이 世上 모든 因緣은 어떠한 因緣이든 스스로가 選擇한 因緣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부모를 만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 결코 타인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자신의 상대가 누구이든, 또 어떠한 일이든지 내 自身의 靈的인 進化를 위해서
'學習을 할 目的' 으로 내 자신 스스로가 選擇해서 이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모,
형제, 처자, 자식을 비롯해 인연되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眞實로 感謝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世界가 눈에 보이는 世界를 背後에서 뒷받쳐서 지탱합니다.
宇宙萬物은 지금 여기서 보이는 모습으로만 存在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모습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모습과 한 몸으로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입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가 96%라면
보이는 세계는 겨우 약4%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人間에게는 前生과 現生 그리고 來生이 있다 합니다.
'人間은 수많은 前生을 輪廻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고 聖賢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또한 예수 생존 그 당시의 예수일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前부터 내가 있느니라.'하시고, 또한 '요한은 구약시대 先知者 엘리야의 靈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생긴 모습과 처해진 環境 등은 다르지만 人間의 참 모습으로
서의 大靈은 영원한 삶의 수레바퀴를 따라 돌고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人間의 삶에 있어서 遇然이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증산께서도 '물 한 그릇도 緣故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말씀하셨으며
'칠산 앞 바다의 물고기도 먹을 사람을 이미 정해 놓고 잡힌다.' 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은 경쟁 상대, 투쟁 상대 혹은 자신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고, 피해를 주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自身의 靈的인 進化를 도와주는 '恩人'이며, 前生이나 來世에
이미 그렇게 행동할 만한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현생에서 자신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매순간 만나는 모든 사람과 대하는 모든 일, 모든 사건들이 자신에게 '가장 所重한 사람'이고
'가장 高貴한 일이고 사건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약 60억 개의 구슬이 담긴 상자 속에서 두 개를 골라 한 알은 검은색, 다른 한 알은 흰색을 칠해서
같은 상자 속에 넣고 흔들어서 짝이 되도록 골르려면 실로 평생을 골르더라도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이웃과 부부로 만나는 것은 너무나 귀중하고 소중한 만남이니 작은 마찰과 갈등으로
그 만남의 관계를 결코 '손상'시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人生 學習을 하려고 나온 現象의 世界, 삶, 현실, 세상은 '瞬息間'에 지나갑니다. 이 짧은 時間을 感覺的
쾌락의 헛된 모습에 현혹되어, 어둡고 힘들게 보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올 때에는 그 어떤
부조화라도 모두 조화롭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분명히 가지고 왔으니, 그 事實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괴롭고 고달픈 일이라 할지라도 감당치 못할 시험은
없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人間이 이 世上에 온 目的은 感覺的인 欲望을 좆아서 결코 富貴榮華나
權力, 명예, 지위, 명성, 학식 따위를 탐하려고 온 것이 결코 아닙니다.
聖人들의 삶을 보십시오. 그들 大部分이 그 時代와 妥協을 했더라면 권력은 물론 부귀영화도 명예,
명성등을 당연히 성취하였겠지만 그분들께서는 그런 것에는 조금도 '미련'이 없으셨습니다.
그분들께서는 이 世上에 온 目的과 보이지 않는 世界까지도 충분히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자신이 처해진 주변 환경, 여건 등에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결코 좌절하거나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은 전부 자신이 이겨낼 수 있는 '학습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나 고통, 재난
등 조화롭지 못한 상황에 부딪칠지라도' 틀림없이 해결할 수 있다.', '이미 전부 해결되었다.' 라고 생각
하고 조금도 주저함 없이 對處하십시오. 괴롭더라도 피하거나 도망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 여기 自身이 처해있는 環境은 바로 自身의 靈魂을 成長시키는 가장 좋은 영양제 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현재 처한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을 충분히 흡수했을 때, 더 좋은 다른
環境이 저절로 다가옵니다. 이런 마음 상태가 되면 '靈的인 進步'가 엄청나게 이루어집니다.
自身이 이 世上에 온 目的을 충분히 理解하고 靈的인 進步와 進化를 이루어 거듭나게 되었을 때
더 이상 어려운 일은 닥치지 않습니다. 자신의 참 모습이 아닌 現世는 오로지 自身의 靈的인 進化
를 위한 '道具'로 쓰이려고 自身 앞에 展開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意識的인 노력으로 자신의 靈魂이 스스로 進化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갖추어지면, 本來부터 없던
고통. 어두움. 재난과 같은 부조화는 사라지고 本性의 調和로움만이 現象의 世界, 삶으로 펼쳐집니다.
自身의 生命이 이 世上에 나타나 있는 뜻을 고맙게 여기시고, 自身의 生命 그 自體에 內在해 있는
'本性의 거룩함을 自覺'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보다 진정으로 나와 他人을 尊重할 수 있습니다.
自己 주변의 모든 사람들, 일, 사건들은 바로 自身을 살리고 自身의 '靈魂을 成長' 시켜 주는 感謝
한 존재들이니, 그 사람들, 일, 事物들에게 恩惠를 느껴야 하고 그 일, 사건들에는 祝福을 느껴야
합니다. 피하고 싶은 사람이나 일, 사건에 대해 外面하지 말고 肯定的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받아
들이십시오. 상대의 어떠한 잘못이라도 사랑으로 감싸 안아 '容恕'하고 無限히 '包容'함으로써 마음
의 그릇을 키우고 생각과 감정을 성숙시켜 훌륭한 靈魂으로 成長하고 '進化'하십시오.
眞正한 自由란 이 肉體와 生覺이 참 自己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自身과 同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주변 環境의 어떠한 일, 사건, 사람에도 順調롭게 적응하여 調和를 이루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靈魂의 進化를 위한 意識的 노력은 바로 本性을 發顯(발현)하고고 大自然의 法則에 順應하는 것입니다.
비행기나 새는 空氣의 흐름에 順應하기 때문에 自由로이 날 수 있고, 물은 地勢를 거스르지 않기
때문에 막힘없이 흘러갑니다. 비행기가 공기의 흐름에 순응하고 물이 地勢에 따르는 것을 구속되
고 억압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自然의 질서와 흐름에 順應하는 것이 진정한 自由고 自律입니다.
虛像인 自身, 卽 自身의 肉體를 自己라고 生覺하고 同一視하는 마음과 生覺을 떨쳐 버리고
本性을 불러내기 위해서는 大自然의 法則에 順應하며 秩序를 따라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每日매일의 삶, 세상, 현실은 어제의 연속이 아니라 나날이 새로운 세상, 삶, 현실이 되는 겁니다.
이런 세상, 삶 속에서 모든 神秘함을 찾아보고 神秘로움 그 自體인 삶, 세상에 감격해 보십시오.
실로 人間을 包含한 宇宙 大自然은 모두 '神秘로움과 경탄' 그 자체입니다.
凡事에 感謝함와 감격함은 나의 삶, 세상을 기쁘게 하고 새롭게 하는 '原動力'이 될 것입니다.
聖賢들의 좋은 글을 많이 接해서 自身의 生命, 靈魂의 수준을 向上시키십시오. 잡다한 독서는
世上을 間接的으로 體驗하게 되기 때문에 다양한 知識을 늘리는 좋은 면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잡다한 독서는 그 만큼 著者들의 잡다한 氣運을 接하게 되기에, 聖人의 氣運을 받아들이는 데는
防害가 됩니다.
聖賢들의 좋은 말씀을 가까이 하면, 그 밝고 맑은 氣運을 通해 막힘없는 自由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할 때 즐겁고 健康하게 살 수 있음은 물론 진정한 自由와 平和를 마음껏 實現시키며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無意識的 靈魂의 進化의 頂點인 人間으로 태어난 理由는 意識的으로 靈魂을 進化시켜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그대로의 '大自由의 삶'을 成就하기 위함임을 銘心하시기 바랍니다.
-자불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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