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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깨닫는 것이 불법

장백산-1 2015. 10. 31. 01:16

 

 

마음을 깨닫는 것이 불법         

 

 

佛法은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황벽은 傳心法要에서 ‘모든 부처님과 一切 衆生의

本體는 한마음’ 이라고 했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마음 부처 중생 이 셋은 아무런 차별이 없다).

바로 그 '한마음'을 깨닫는 것이 이 세상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자 목적이다.

 

마음은 온갖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佛性, 本性, 法性, 마음, 自性, 本來面目, 한마음, 주인공,

부처, 法, 道, 禪, 眞心, 眞性, 깨달음, 진리 등 다양하지만 그 이름은 어디까지나 모두 方便으로 만든

假名일 뿐이다. 이 말은 마음, 부처, 도, 진리,  법, 본성, 자성, 주인공, 본래면목 등이라고 불리는 그런

이름에 해당하는 特定한 모양이나 物件이 있는 것이 마음, 불성, 불, 법, 도, 진리, 깨달음, 주인공 본래

면목 등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음이라고 불리는 이름은 있지만 마음이라는 그 명칭에 걸맞는, 우리가

현실에서 직접 보고 듣고 알 수 있는 어떤 特定한 모양, 고정되고 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마음

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벽은 ‘이 마음은 나고 죽는 것도 아니고, 색깔이나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모든

이름과 말, 자취 흔적, 관계를 超越한 것이 보이지 않는 그러나 실재하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이 마음은

虛空과 같아서 시작도 없고 끝이 없기 때문에 마음은 짐작할 수도 없고 生覺으로 헤아릴 수도 없는 것이

라고 황벽은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육조 혜능 또한 마음을 ‘本來無一物’이라고 말했고, 般若心經에서

마음을 空이라고 말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일관되게 마음을 無我라고 말했다. 마음은 佛性,

한마음, 自性 등의 무수한 이름으로 마음을 가리키는 방편으로 붙였을 뿐 마음은 특별한 모양 있는 물건

즉, 고정 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기에 無我라는 이름, 개념, 관념으로 부른 것이다.

 

일각에서 禪佛敎에서 말하는 마음인 主人公, 本來面目, 한마음 등의 이름이 석가모니부처님이 말한 無我

라는 명칭과는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기에 타당하지 않다. 물론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그럴 수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논리란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生覺을 굴려 모양을 그려서 이해해 보고자 한다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마음이고 法(진리)인 것이다. 생각 너머, 認識作用 意識作用 너머, 알음알이 너머

의 보이지 않는 無分別의 世界를 人間의 分別하는 意識으로써 파악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겨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은 감춰져 있지 않다. 눈으로 보면 보이는 형상들이 모두 이 마음이고

法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 이 마음이고 진리이며, 생각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생각이 그대로 마음이고

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라고 했듯이 色(형상, 모습)에 空이라는 眞理, 마음, 法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空

色이라는 眞理, 마음, 法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이를 승조대사는 觸事而眞 즉, 부딛치는 모든 것이 다 眞理, 마음, 법이라고 했고, 석두는 觸目會道 즉, 보이

대로 그대로  道, 진리, 마음, 법을 만난다고 했다. 또한 도오는 觸目菩提(촉목보리) 즉,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모두 다 깨달음, 진리, 마음, 법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마조의 立處卽眞, 임제의 立處皆眞,

그리고 法華經에서 말하는 諸法實相도 모두 다 똑같이 이 마음, 진리, 법, 도를 의미한다. 이처럼 세상 모

것, 一切, 宇宙森羅萬象萬物이 본래부터 이미 완전한 本性, 마음, 진리, 도, 법, 깨달음, 부처 아닌 것이 없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眞理, 마음, 法, 道, 本性이 이 世上 모든 것으로 다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眞理, 마음, 法, 道, 깨달음, 佛이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그 理由는 眞理, 道, 마음, 깨달음, 法, 佛이 人間의

認識作用인 分하는 마음, 分別하는 意識의 認識 分別의 對相 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진리,

도, 깨달음, 법, 마음, 佛  이것은 主觀도 客觀도 아니며,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다. 이를 황벽은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지만 중생이 相(생각, 개념, 관념, 이미지, 모양)에 執着해 이 마음 밖에서 부처, 진리, 법,

도, 깨달음, 마음을 찾기 때문에 마음, 眞理, 法, 부처, 깨달음, 道 밖에서 진리, 도, 깨달음, 부처, 마음, 법을

찾으면 찾을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된다. 자기자신 스스로가 이미 본래 완전한 진리, 도, 깨달음,

마음, 법, 부처인데 相에 갇혀서 밖에서 또다른 진리, 도, 깨달음, 마음, 법, 부처(佛)를 찾으니 아무리 오랜

세월을 애를 써서 찾아도 진리, 도, 불, 법, 마음, 깨달음 그것을 찾지 못한다’고 했다. 이것은 마치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이 어디있나 하고 다른데서 물을 찾는 격이다.

 

중생이 진리, 도, 깨달음, 마음, 법, 부처를 찾고 있지만 중생이 곧 본래 이미 완전한 진리, 도, 깨달음, 마음,

법, 부처인데 自己가 自己를 밖으로 對相化 시켜놓고 자기 밖에서 自己를 찾고 있으니 그 自己를 밖에서 찾

으면 찾을수록 그 自己로부터 더욱 더 멀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황벽은 "오직 한 생각만 쉬면 이미 本來 完全한 自己인 부처, 眞理, 道, 法, 깨달음, 마음이 스스로

나타난다"고 말한 것이다.

 

分別心을 發動해서 衆生이니 부처니, 道니, 眞理니, 깨달음이니, 마음이니, 法이니 하는 虛妄한 相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을 實體化된 對相으로 삼아서 공연히 헛된 煩惱 妄想 卽, 分別心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래서

分別하는 모든 마음 생각 의식을 쉬기만 하면 즉시 부처, 도, 법, 진리, 깨달음, 마음, 주인공, 본래면목이 스

스로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生覺, 妄想, 雜生覺인 分別하는 마음을 쉬어 보라. 無心, 無念, 즉 世上을 分別하

고 差別하는 마음 생각 의식만 푹쉬면 곧바로 이 세상 모든 것이 부처, 道, 法, 眞理, 깨달음, 마음, 主人公,

本來面目, 無位眞人, 立處皆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