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적 삶에는 지족과 수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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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부처님 가르침의 核心은 中道다. 正見이라는 바른 지견의 핵심은 兩 極端에 치우치지 않는
中道다. 그런데 이러한 正見, 中道의 見解가 따로 있는 것이라고 生覺하면 그 生覺 역시 中道가 아니다.
中道란 兩邊 가운데 어느 한 쪽만이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양변이 다 하나의
다른 얼굴임을 아는 것이다. 동전의 양 面처럼 동전 하나의 서로 다른 얼굴일 뿐,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지 않다는 事實을 아는 것이다. 양쪽 모두가 어느 觀點에서는 옳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그를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이다. 因緣에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이쪽이 다른 경우에는
저쪽이 옳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中道를 不二 卽, 둘이 아니라고 한다. 서로 다른 두 개가 아니라,
하나로서의 다른 側面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中道는 양쪽 모두가 各各 나름의 眞理의 性稟인 事實을 認定하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양변
모두가 眞理가 아닐 수도 있음을 認定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 쪽에 치우쳐 있는 眞理는 없다.
길고 짧은 것 중에, 덩치가 크고 작은 것 중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쁜가?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
特定한 하나를 놓고 좋다 옳다고 判斷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이다. 큰 것은 큰 것 대로의 역할이 있고, 좋은 점이 있으며, 강점을 지니고 있다.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의 몫이 있고, 장점이 있는 것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 대로의 장점과 아름다움이 있고, 외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대
로의 장점과 개성이 있는 것이지, 어느 한 쪽만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이처럼 양쪽에 치우치지 않은 中道的인 者는 自身이 어느 쪽에 있다 할지라도 다른 쪽에 있는 사람을
탓하지 않고, 自身을 우월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것은 더 좋거나 나쁜 쪽이 아니라 그저 같은 하나의
서로 다른 側面임을 알기에, 양쪽 모두가 眞理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여기 내가 處해있는 狀況은 이 상황 있는 이대로 眞理이고, 상대방이 지금 이 순간 여기 處해있는 狀況
역시 상대방 나름대로의 眞理인 것이다. 그러니 他人을 부러워할 것도 없고, 나 自身을 탓할 것도 없다.
그래서 중도적인 사람은 언제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있는 이대로 自己 自身이 處한 狀況을 있는
그대로 許容하고 받아들인다. 그저 언제나 自身이 處해 있는 그 곳에 存在해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를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 하지도 않고, 지금 여기와는
다른 어떤 특별한 성취를 얻으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무언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는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나와 願하는 것을 모두 성취한 그 瞬間의 나는 하나의 양변일 뿐이기에 하나의
서로 다른 側面일 뿐, 좋고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願하는 것을 이루어 낸 뒤와 지금 여기 이대로가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 每瞬間瞬間 내가 處해 있는 있는 이대로의 모습에 完全히 滿足하며 사는 것이다. 물론 不便한 것이
있을 때는 조금 더 便한 쪽을 선호하고 노력하겠지만 그것만이 반드시 편한 쪽이라고 執着하지는 않을 것
이다. 매 순간 處한 因緣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지만 언제나 眞理의 자리에 있음을 알기에 괴로울
것도 없고, 성취할 것도 없이, 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如如하다.
이처럼 中道的인 사람은 어디에 處해 있든 지금 여기 이 瞬間 이 자리가 最上의 자리임을 안다. 주어진 삶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이미 지나간 過去를 아쉬워하지 않으며, 오지 않은 未來를 근심 걱정하지도 않는다.
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야말로 最上의 眞理임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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