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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번뇌는 어떻게 생겨날까?

장백산-1 2015. 10. 19. 21:18

 

망상 번뇌는 어떻게 생겨날까?        

 

 

 

달마스님의 四行論에는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기 손으로 종이에 용과 호랑이를 그려 스스로 보고 도리어 스스로 무서워하고 두려워

한다. 어리석은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 알음알이라는 分別心으로 칼산과 칼숲을 마음에 그려서 보고는

도리어 알음알이로 두려워하나니, 만약 종이에 그린 용과 호랑이, 分別心으로 마음에 그린 칼산과 칼숲

이 實體가 아닌 것인 줄을 알면 두려워하는 헛된 妄想이 다 없어진다”

 

자기 손으로 용과 호랑이를 그려놓고 혹은 귀신을 그려놓고 그 그림을 보고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생각 의식 마음도 이와 같아, 알음알이라는 分別意識으로 칼산과

칼숲이라는 그림을 그린다. 즉 이 무섭고도 날카로워 언제 찔러올지 모르는 수도 없이 많은 세상을 그려

놓고 스스로 그린 그림인 그 세상을 알음알이로 헤아려 허망하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현실, 삶이다.

 

마치 공포영화 작가가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귀신과 유령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실재라고 여기며 두려워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事實은 이 世上이 全部 내 意識, 分別意識, 分別心, 알음알이가 그려놓은

그림인 귀신이며, 칼산 칼숲이고, 용이며 호랑이며, 나와 너를 비롯한 온갖 사람들, 온갖 事件들 全部 다 

내 意識, 분별심, 생각, 망상, 생각, 알음알이가 스스로 그려논 그림일 뿐이다.

 

이 과정을 四行論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意識의 붓으로 識別하여 色聲香味觸法 등의 對相 境界라는 그림을 자신의 마음에 그려 놓고, 도리어

스스로 그린 그림을 보고 貪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알음알이를 일으킨다. 그러면서 그 대상 경계라는

그림을 보면서 알음알이, 분별심을 내어 그 그림을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오히려 여러 가지

業을 일으킨다. 만약 이 알음알이 分別心 分別意識이 本來부터 空寂함을 깨닫게 되면 이것이 곧 修行

이다...이는 모두 스스로의 마음 의식 생각 망상 알음알이가 지은 바이니, 다만 色이 色이 아님을 알면

곧 解脫이다.”

 

意識, 알음알이, 分別心, 생각, 망상, 번뇌 모두 같은 意味다. 눈에 보이고, 소리나고, 냄새나고, 맛나고,

감촉되는 이 세상 모든 對相 境界는 事實 모두 意識, 알음알이, 분별심이라는 붓을 가지고 자신의 의식이

그려낸 夢幻泡影 같은 虛妄하고 헛된 고정불변하는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意識이라는 붓으로 그린 그림을 보고 좋으면 貪내어 執着하고, 싫으면 성내기도 하고,

 어리석은 分別心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스스로 그린 그림인 몽환포영 같은 경계를 대상으로 분별해서

좋은 것은 취하여 집착하고, 싫은 것은 멀리하고 거부하고 버리기도 하면서 공연히 여러 業을 짓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좋은 것은 더 가지려고 말하고 生覺하고 行動하는 業을 짓고, 싫은 것은 멀리 거부

하려고 집착하고 애쓰는 生覺 말 行動으로 業을 짓는 것이다.

 

자신의 의식 스스로 지어논 자기 앞에 벌어지는 삶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中立的 現實을 허망하게 是非

分別 比較 解釋 判斷하기 始作하는 것이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고, 이것은 나에게 得이 되는 것이고,

저것은 내가 반드시 爭取해야 하는 것이라고 마음에 意識의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반드시 이 사람과 결혼해야 겠다는 알음알이를 내어 그 사람에게

집착한한다. 또한 저 사람은 언젠가 나를 공격할지 모르는 위험한 사람이라는 그림을 그려 놓고 그 사람

이 내게 다가올 때는 두려워하면서 도망친다.

 

이 대학에 가면 성공이지만, 저 대학에 가면 실패고, 이 정도 점수는 받아야 성공이며, 어느 정도의 연봉은

받아야 하고, 사람들은 나를 대접해 줘야 한다는 등의 다양한 그림을 마음이라는 알음알이, 분별심, 분별

의식으로 시비 분별 비교 해석 판단해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삶에 대한 그림이 있게 되면 지금

부터 그 그림과 일치하지 않는 그림을 볼 때는 마음 의식 생각이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내 의식,

마음, 생각, 알음알이라는 분별심 분별의식이 그린 그림이지만 이제부터 그 그림이 나의 의식 마음 생각

을 구속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행론의 말씀처럼 이렇게 分別心, 意識, 알음알이로 그린 그림이 모두 本來부터 空寂한 夢幻泡影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면, 그래서 色이 色이 아님을 보게 되면, 相이 相이 아님을 보게 되면  곧 해탈이다.

깨달음은 곧 내 의식, 알음알이, 분별하는 마음이 그린 妄想의 그림을 本來 없던 空寂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일이다. 生覺, 妄想이 그려놓은 그림에 내 마음 의식 생각 스스로 빠져 있던 구속에서 스스로 벗어

나는 것이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