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정말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장백산-1 2016. 4. 12. 13:18

정말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제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왜 수행을 해야 하냐 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정말 너무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아... 참 정말 살면 살수록 억울하고, 정말 침통하고,

깝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맨날 넘어지는 곳에서 넘어지거든요. 넘어지지 않아도 되는데 넘어지고, 남들이

나한테 뭐라고 한 마디 귀에 거슬리는 말을 했단 말이에요. 그 말 한 마디에 내가 걸려 넘어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왜? 그 사람이 부처도 아니고, 정말 모든 걸 완전히 아는 사람도 아닌데, 내게 욕을 한 그 사람이 내가

정말 잘 알지도 못한 일을 딱! 결정해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말 한 마디가 나에게 그대로 와서 비수

처럼 꽂혀야 되겠죠. 그런데 내게 욕한 그 사람은 자기 자신도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세상에는 옳다 아니다, 욕과 칭찬이라는 分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남들이 하는 말이 나를 規定지을 수 있는 아무런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내가 남들의 말에 휘둘릴 어떤

理由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남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며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왔잖아요. 이것이 정말 너무 억울하고 분하지 않습니까? 억울하면서, 너무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이렇게 남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휘둘리면서 살아간다는 말이에요.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일로 인해서 무너지고, 쓰러지고, 괴로워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이제

담담해지면 또 이제 깨어난 것 같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 같고, 괴로워하다가 시간이 지나서 그게

또 흔적이 없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난 것 같고, 이러한 내 머릿속 妄想 生覺 雜念 煩惱 속에 빠져서 사는

삶은, 꿈 속에서 방황하고 헤매는 삶이에요.

 

여러분,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떻습니까?

그 괴로움이라는 것은요, 단지 내 마음이 머릿속에 만들어냈다가 내 머릿속에서 없앴다가 하는 生覺일

뿐인데도, 고정된 실체가 아닌 그 生覺을 마치 수행을 통헤서 ‘잘 닦아서 없앴다’ 이렇게 錯覺하는 것

아니겠어요? 이 세상 모든 일들이 全部 다 똑같이 이와 같습니다.

 

자식이 서울대학교를 갔으면 좋겠다’라고 執着을 했는데, 서울대를 못 갔습니다. 그 때는 막 괴로워

죽으려고 했다가 적당한 대학을 갔어요. 그럼 어쩔 수 없이 막 괴로워 괴로워 괴로워하다가, 몇 년을

괴로워하다가 이제는 포기해야 되겠구나 싶어서 마음 속에서 서울대학교를 탁 내려놨습니다.

 

그러고 나서 뭐라고 그러냐 하면, “야~ 내가 수행을 했더니 역시 마음이 닦이더라. 집착이 좀 내려놔

지더라. 수행을 하니까.”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대학을 거기를 가야 된다고 만들어놓고, 그게 또 마음이

어느 정도 담담해지니까 “아, 내가 수행을 해서 닦아가지고 그 집착하는 마음 괴로워하는 마음을 내려

놨습니다. 버렸습니다.”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죠.

 

이렇게 虛妄한 錯覺만을 하면서 삶을 살아왔고, 허망한 착각 속에서 괴로워해 왔고, 이 괴로움이 虛想

인줄 모르고 지금까지 그 幻想에 속아서 살아온 게 정말 얼마나 억울합니까. 정말 얼마나 분하고 억울합

니까!!! 그런데 이 억울함 보다 더 억울한 사실은 이런 삶을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살아야만 된다는 겁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분하고 억울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가 내게 욕하면 괴롭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고, 남편이 돈 많이 갖다 주면 행복하고, 돈 없으면 괴롭고,

좋고 큰 아파트에 살면 행복하고 좋은 집에 못 살면 괴롭고, 자식의 성적이 나쁘면 괴롭고 좋으면 즐겁고,

이같은 虛妄한 錯覺 속에 빠져 있는, 이 허망한 착각, 아무것도 아닌 꿈과도 같은 이런 것들에  一喜一悲

하면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억울하게 우리는 이런 허망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삶이 정말 얼마나 분하고 억울해요?  ‘그런 삶을 살면 안 되겠구나. 내 이런 삶을 이제 청산하고

진짜 뭔가 마음의 중심이 딱 잡힌 그런 삶을 살자.’ 그런 마음을 내는 게 ‘發心’하는 겁니다.

 

내가 한 번 깨달아봐야 되겠구나. 내가 ‘道’가 무엇인지, ‘佛法’이 무엇인지를 내가 한 번 알아봐야 되겠

구나. 깨달음, 佛法, 道, 眞理 이걸 알지 못하고서는 영원히 내가 이 억울하고, 깝깝하고  정말 내 스스로

괴로움이라는 虛想 幻想을 만들어내고, 스스로 그 속에 빠져서 또 괴로워하는 이런 허망한 삶을 살 수밖

없겠구나. 이런 삶이 뭐가 즐거운가, 어떤 사람이 말 한 마디 하면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막 크게 휘둘

리고, 이게 뭐가 재미가 있는 삶이겠는가. 이런 삶을 정말 내가 살아야 되겠나? 자식하고 맨날 싸우기나

하고...그 예쁜 아이하고 만날 치고 박고 싸운단 말이죠. 그런 삶을 살아야 되겠는가.

 

‘내가 한 번 道를 깨달아봐야겠구나.’  이런 마음을 딱 내기만 하면 됩니다. 사실은 가장 중요한 게 이

道를 깨닫겠다는 이 마음이지, 사실은 다른 건 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道를 닦을 필요도  없고,

‘내가 한 번 道, 부처, 진리,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되겠구나.’하는 마음 이 마음을 일키는 게

아주 중요하단 말이에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마음’으로 창조되는 것들입니다. 마음으로...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이니까요.

 

道를 깨닫겠다는 이런 마음을 내면 이런 마음이 宇宙法界에 울려퍼지기 때문에, 전파가 되기 때문에

이 마음 하나가 우주 전체이니까. 그러니까 이런 마음과 맞는 마음들이 類類相從으로 자연스럽게

道를 알아봐야 겠다는 내 마음을 따라오게 되는 겁니다. 法(가르침)이 따라오게 되고, 스승을 만나게

되고, 도반을 만나게 되고, 나도 모르게 자꾸 자연스럽게 이 法과 因緣이 맺어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