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불현듯 나를 찾아와 | 법상스님의 행복수업
하이얀마음 | 2016.04.15. 15:06 http://cafe.daum.net/truenature/S87f/9
지금부터가 중요한 내용인데요, 깨달음 즉, 眞理는 우주에 충만해서 언제나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깨달음 진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 깨달음 진리를 터득하는 본질이 아닙니다. 깨달음
진리는 스스로 우리들을 찾아옵니다. 아니 깨달음 진리가 스스로 우리들을 찾아온다는 말 보다는
언제나 우리들,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깨달아 있지 않은 순간이 없고, 참 自性이
아닌 적이 없습니다. 즉, 진리 아닌 적이 없습니다.
'지금 여기' 즉, 온전한 깨달음, 진리는 언제나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습니다.
행복도 행복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지 내가 행복을 찾아나서는 게 아닙니다.
내가 지금 불행하기 때문에 언젠가 있을 행복을 찾아나서겠다, 달려가겠다,하는 마음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의 본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때로 선지식이나 깨달음을 얻었다는 어떤 분들 중에 끊임없는 정진과 피나는 수행을 해서
깨달음 진리를 터득했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느날 갑자기 불현듯 깨달음이 찾아왔다고
말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佛敎 안에서는 뭔가 치열하게 수행을 하고, 피나는 노력을 해서만 결국 깨달았다고 하는 게
정답인 줄 알았는데, 고행을 통한 그런 방식으로 깨달음이 찾아올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방식
으로도 깨달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수행의 '수' 자도 모르고, 불교의 'ㅂ' 자도 모르는
사람이라하더라도 그런 사람에게도 깨달음 진리가 찾아들 수가 있는 겁니다.
佛敎나 깨달음 眞理는 佛子들만의 전유물(專有物)이 절대로 아닙니다. 해탈과 열반이라는 깨달음
진리가 불교 안에만 있는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이 가르침은 단지 이 宇宙의 根源的인 眞理를 이름
하여 '불교' 라는 이름을 지었을 뿐이지, 사실은 불교라는 그 비좁은 이름 속에 우주의 근원적인
진리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수행은 나의 마음을 완전히 활짝 여는 공부입니다.
마음을 가두지 않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나의 마음을 활짝 열어 두는 마음 연습입니다.
-- p46,47 < 깨달음이 나를 찾아오도록 하라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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