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마음공부, 어리석음, 깨달음

장백산-1 2016. 8. 20. 01:22

마음공부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깨달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불교공부 마음공부를 어지간히 많이 한 분들은 佛法의 大義가 무엇인지는 대략 짐작합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은 이 世上을 虛妄한 分別心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이 世上이 實體的으로 存在하는 것으로 錯覺

하고 그로 인해 실체가 없는 虛妄한 對相에 執着하고 사로잡히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 

는 事實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人間들이 어리석은 중생인 이유, 괴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가 바로 虛妄한 分別心, 분별의식, 

알음알이(識), 지견, 견해, 이해, 지식 때문이라는 것이야말로 佛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익숙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佛法에서는 언제나 分別心을 버리고 無分別心으로 살아 갈 것을 말합니다. 둘로 나누는 分別

하는 習慣을 버리고 이 세상을 둘로 나누지 않는 不二의 無分別心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정도로 人間들의 시비 분별 비교 판단 분석 해석 헤아리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생각 망상

번뇌 망념 잡념 마음 의식 卽, 알음알이(識) 分별識 分別心 分別意識 지견 견해 이해 지식을 정리를 할 

수 있다면 불교대학 졸업식에서 우등상을 받을 만 합니다. ^^  아주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만한 정도로 

인간의 분별심 분별의식을 이해를 한 사람이라면 이제부터는 이러한 眞實에도 執着하고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事實에도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공부, 마음공부를 어지간히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을 분별하는  分別心을 어리석은 衆生心으로 없신여겨서 人間이 극복해야 할 分別心 

妄想이라고 몰아붙이면서 分別 妄想이 없는 고요한 無心의 상태, 無分別心의 상태, 三昧의 상태로 

나아가도록 다그칩니다.


分別心을 버리고 無分別心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분석 헤아리

기를 좋아하는 생각 번뇌 망상 망념 잡념 의식 마음 즉, 알음알이(識), 분별식, 분별심, 분별의식, 지견,

견해, 이해, 지식을 버리고 고요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을 버려야 한다거나, 망상을 끊어야 한다거

나 하는 말들 全部가 이러한 가르침들입니다.


심지어는 分別 妄想의 중생 世間을 버리고 出世間의 고요한 세계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煩惱 妄想이 

들끓지 않을 수 있도록 주변의 조건을 통제하기도 합니다. 시끄러운 도심의 삶 속을 벗어나 저 고요한 

산사로 수련을 떠나거나, 목에 ‘默言’이라는 목걸이를 달고 침묵을 수행하기도 하고, 심지어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오로지 分別 妄想을 조복시켜 깨달음에 이르려고 無門關에 들어가 몇 년 

씩이나 고행 정진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 이러한 수행의 길 또한 아름다운 마음공부의 方便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方便들이 

잘 맞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方便을 마음공부의 全部라고 여기면서, 이러한 

공부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方便과 眞實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잘 알고 있는 온갖 수행 방편의 주요 모토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分別心의 중생세간은 

럽고 깨끗하지 못한 곳이기에 分別心을 타파하여 저 고요한 無分別心의 出世間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정말 그럴까요? 分別心은 나쁜 것이고, 分別心  虛妄한 生覺인 妄想에 사로잡힌 중생의 

삶이 나쁜 것이기에 그것을 버리고 저 출세간의 無分別心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分別心을 

버리고 無分別心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佛法은 그 무엇도 取하거나 버리지 않는 

不二의 가르침입니다.


分別心을 버리고 無分別心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分別心과 無分別心이 둘이 아님 즉, 不二임을 바로 

보는 것이 참된 不二法입니다. 分別心 그대로가 無分別心입니다. 色이 그대로 空이고, 空이 그대로 色

입니다. 衆生을 등지고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닌 중생이 그대로 부처고 부처가 그대로 중생이고, 煩惱 

妄想 分別心이 그대로 깨달음이요, 生과 死가 그대로 열반 즉, 행복임을 제대로 알아보는 것입니다.


生과 死(삶과 죽음),  중생과 성인, 시작과 끝, 너와 나 등 虛妄한 分別과 妄想이 가득한 이 중생세간을 

버리고 別個로 따로 존재하는 특별한 涅槃의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이 世間이 

있는 그대로 出世間, 幸福의 世上임을 터득해 깨닫는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거기요, 이것이 바로 그것

임을 터득해 깨닫는 것입니다.


佛法은 이처럼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닌 不二의 가르침입니다. 중생과 부처가 마치 둘인 것처럼 둘로 

나눠 놓고 그 중에서 부처를 향하거나, 妄想과 實相을 둘로 나눠놓고 그 가운데 망상을 버리고 실상을 

취하는 것이 佛法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現實, 세상, 삶이야말로 곧 眞實임을 터득하는 것이 깨달음

입니다. 諸法實相, 諸法空相, 立處皆眞, 無位眞人, 本來面目, 진짜 나의 本質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이대로의 우리들의 삶 우주만물의 삶 그것이 지금 있는 그대로 眞理의 

實相임을 보아야 합니다.


-법상 스님, 목탁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