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참된 자유의 모습

장백산-1 2016. 9. 15. 20:59

참된 자유의 모습


이 세상 모든 것이 해탈(解脫)의 모습, 自由로운 모습, 大平等한 모습입니다. 말 하는 행위, 生覺하는 행위, 

걸어가는 행위, 밥을 먹는 행위, 몸이 아픈 행위, 즐거워 하는 짓, 바람이 부는 현상, 하늘이 파란 현상, 등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바로 눈앞에 온갖 精神的 物理的인 現象으로 現示되어 펼쳐지는 이 세상 이 모

든 것이 해탈의 모습, 자우로운 모습, 대평등한 모습입니다. 지금 당장 생각과 마음 속으로 펼쳐지는 모든 

것이 해탈의 모습, 자유로운 모습, 대평등한 모습입니다.


해탈의 모습, 자유로운 모습이란 이 세상 이 모든 것이 本來부터 이미 完全하게 平等하다는 말입니다. 해

의 모습이라는 표현은 온갖 精神的 物理的인 現象으로 現示되어 드러나는 이 세상 이 모든 모습들이 하

뿐인 本性을 단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現象的으로는 내 마음이 

그 現象에 집착해서 그 현상에 구속되어 있는 모습처럼 보이나 그 모습은 固定된 實體가 없고 無常하게 

變하면서 흘러가는 波動하는 에너지정보덩어리 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그 현상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현상과 分離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눈에는 이 세상 이 모든 상대적인 세계가 해탈의 모습, 자유로운 모습, 대평등의 모

으로 보이질 않습니다. 말이야 쉽게 그럴 것처럼 이해 되지만 眞實한 自己에게 돌아와 그 자리에서 보

을 때 여전히 이 세상을 二分法的인 相對的 世界로 分別 分離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송나라 때 청원 유신 선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늙은이가 30년 前 참선하지 않았을 때는 山을 

면 山이 그대로 山이었다. 그러나 선리(禪理, 禪의 이치, 道의 이치, 無의 이치, 空性의 이치)를 조금 깨

쳐 마음의 눈이 조금 열리니 그 때는 山을 보아도 山이 山이 아니더라. 그러나 佛法, 道를 완전히 깨닫고 

나니, 山은 그냥 그저 山일 뿐이더라."


처음 마음공부를 할 때에는 누구나 二元性에 바탕한 二分法的으로 세상을 보는 相對 世界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山은 山 아닌 다른 것과 當然히 分別되고 區別되는 山이요, 물 역시 물 아닌 다른 것과 차별되

고 區分되는 독립적인 것으로 보이는 물입니다. 相對的으로 드러나 인간의 눈에 보이는 이 世上 이 모든 것

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습니다. 그러다 문득 모든 相對的인 世界가 한 마음인 絶對 世界와 둘이 아니라는

事實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으로 드러나는 온갖 정신적 물리적인 현상은 無常하고 고정된 實體가 없기

때문에 山은 山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는 事實을 알게 됩니다. 山과 물, 이 세상 모든 것이 평등하여 

다른 것이 하나도 없는 절대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萬物

이 自己 마음 하나일 뿐임(三界唯心, 萬法唯識임)을 철저히 깨달아 들어가야 山은 山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는 事實이 個念 觀念 생각 알음알이(지식) 분별심으로써가 아니라 당연한 사실로 거리낌 없이 체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인간이 살고 있는 상대 세계가 아닌 絶對 世界에 머무는 것이 깨달음의 窮極(궁극, 최후

의자리)가 아닙니다. 흔히 小乘, 二乘이라고 불리는 수행자들은 相對 世界를 벗어난 絶對 世界에 머물면서

絶對의 세계에만 치우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解脫의 모습, 自由로눈 모습, 大平等의 

모습은 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고, 生覺으로 알 수 없으며, 모든 언어를 떠난 세계라서 말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生覺은 치우친 見解입니다. 그들은 아직 여전히 相對와 絶對 양극단(兩極端)

을 벗어나지 못한 意識입니다.참된 깨달음이란 相對와 絶對가 원융(圓融)하여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우리들 인간이 마주보고 있는 이 相對 世界가 絶對 세계와 둘이 아닌 圓融

한 眞理의 세계, 法界입니다. 즉 온갖 말이 온갖 말이면서도 온갖 말이 아니고, 온갖 생각이 온갖 생각이면

서도 生覺이 아니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탐진치이면서도 탐진치가 아닌 不二의 世계, 상대와 절대가 둘

이 아닌 이 不二의 세계가 이 세상, 이 우주의 진실한 모습, 實相이라는 말입니다.


청원 유신 禪師가 세 번째로 말한 山은 山이요 물은 물이라는 말이 바로 不二의 世上, 둘이 아닌 세계를 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에서의 山이 분명 山인 同時에 그 山이 고정된 실체가 아닌 

山  즉, 절대세계의 참모습, 實相이고, 현실에서의 물이 물이면서 동시에 그 물이 물이 아닌 절대 세계의 참

모습, 實相, 實際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현실에서 이 모습으로 이렇게 있으면서 同時에 내가 없는 것이 절데 세계의 참모습, 참

된 나고, 지금 이렇게 온갖 생각과 감정과 사물과 느낌 등이 있는 그대로 이면서 同時에 그 아무것도 없는 

것이 우리들 인간이 마주하고 있는 세상의 참모습, 實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터득한 사람

들은 온갖 말을 해도 온갖 말에 걸림이 없고, 온갖 생각을 해도 온갖 생각에 아무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전 스님은 平常心이 곧바로 道라고 설파했습니다. 道, 無, 空, 부처, 하느님, 불성, 영성, 본마음, 

본성, 본래면목, 본래의 나, 진짜 나, 근원의 나, 주인공,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온갖 分別 分離 活動을 하

고 있는 이 分別하는 마음, 분별의식, 알음알이(지식), 지견, 견해, 이해이지만 이 分別 妄想 번뇌 活動을 

하는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지식), 지견, 견햬, 이해는 이것들의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잘 아는 지금 

당장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라는 순수한 마음, 순수의식, 진리, 본래의 나와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중국

의 방거사가 말한 물 긷고 나무하는 일, 활동이 道라는 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지금 당장 청소하고 밥

을 짓는 일 그대로가 實想은 아무런 일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청원 유신 선사의 공부가 그랬듯이 여태까지 二元性에 바탕해서 눈에 보이고 들리는 相對 世界에

만 빠져 있던 사람이 당장에 相對세계인 현실세계와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絶對 세계인 근원의

세계가 둘이 아닌 不二한 圓融한 世界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絶對세계에 대한 自覺

을 해야 합니다. 相對的인 모든 現象으로 現示되어 펼쳐지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바로 자기 마음 하나일 뿐

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우선입니다. 오직 하나뿐인 이 마음을 깨닫고 나서 이 絶對 세계, 이원성에 기

반한 분리 분별하는 세상에 치우친 편견에서 벗어나는 또 한 번의 도약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공부를 하는 초심자는 現相의 根本, 相對 세계와 둘이 아닌 絶對 세계을 깨달아야 하기에 모든 

대상 경계를 따라가는 생각 마음의 習慣性, 傾向性에서 벗어나 이 세상 이 모든 대상 경계를 드러내는 본래

마음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았다면 本來마음이라는 絶對 世界가 따로 별도로 있는 게 아니라

萬法, 우리들, 이 세상 모든 것들, 우주삼라만상만물과 내가 살아서 죽어서 사용하는 마음이 둘이 아닌 하나

라는 事實을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눈앞에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은 있는 그 모습 

그대로이면서 同時에 本來는 어떤 모습도 아닌 圓融한 하나의 實在, 무시무종으로 영원히 끊임없이 파동하

는 우주근원에너지정보장 그 자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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