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열 법림법사 “불교는 언젠가 없어져야 할 종교” | ||||||||||||
‘불교, 기독교를 논하다’ 개정판 출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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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개 항목으로 분류해 특성 비교 두 종교 차이 명확히 알자는 의도 불상 우상 취급은 몰상식의 극치 불교는 인간이 발견한 최고 진리 “불자들에게 자긍심 주고 싶었다” 책이 출간되자 반응은 뜨거웠다. 악행도 신의 뜻이 돼버리는 기독교의 근원적인 모순을 지적하고 불교사상의 수승함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은 “이 책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기독교 교리를 보는 불교인의 생각을 알게 해줄 것이고, 불교인에겐 다른 종교를 비판적으로 구분해 읽어내는 불교 고유의 비판적 본능을 일깨워줄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철 동국대 불교문화학부 교수도 “서구 숭배가 극을 달리는 지금 이 나라에서 불교를 외호하고 비불교인을 설득하기 위한 파사현정의 사자후”라고 극찬했다. 실제로 이 책은 많은 불자들이 “막연히 알던 불교를 새롭게 알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으며, 지난해 조계종과 불교출판문화협회가 선정한 ‘2015년 올해의 불서’에도 선정됐다. 두 종교에 대한 꼼꼼한 비교와 분석은 저자가 초기부터 대승까지 불교교리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체험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대해서도 박식했기에 가능했다. 이런 가운데 기존 내용을 대폭 보완하고 새로운 항목을 추가한 개정판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저자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불교와 기독교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지난 40여년간 전법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저자는 스리랑카 팔리불교대학 불교사회철학과와 원광대 동양학대학원에서 불교철학을 연구했으며, 현재 불교경전연구원장 및 법림선원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다.
▲초판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일반 불자들은 물론 포교사들로부터도 고맙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위대한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꼈으며, 기독교인들의 공격적인 선교에도 적극 대응할 수 있겠다는 말들도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기독교 단체에서 강연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개정판에서 바뀐 점은. “불교교리를 더욱 보강해 두 종교의 차이를 분명히 하고자 했다. 또 기독교 신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옥론’ ‘자유론’ ‘신앙체험론’ ‘선교론’ ‘역사완성론’을 덧붙여 불교 시각으로 비교해 분석했다.” ▲종교간 대화가 강조되는 시대다. 왜 차이에 주목했나. “일각에서 스님들조차 종교는 다 같다고 말한다. 포용력이 있어 보일지는 몰라도 위험한 발상이다. 종교가 다 같으면 하나님 믿고 교회가면 되지 굳이 절에 가야할 이유가 없다. 대화나 화합을 하려면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상대 종교에 무지한 상태의 화합은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차별과 폄훼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분명히 알자는 의도였다.” ▲불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사랑이 모두 타인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지 않나. “물론 불교와 기독교에 비슷한 부분이 많다. 사랑이나 자비도 외형적으로만 보면 비슷하다. 그러나 엄밀하게 살펴보면 큰 차이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다. 선행을 해도 하나님이 기쁘지 않으면 사랑을 실천할 당위성이 사라진다. 하지만 불교의 사랑은 어떤 것도 전제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자신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당연히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불교는 포용의 종교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런데 이 책은 상대 종교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불교는 탄생부터 논쟁의 종교였다. 당시 인도는 온갖 사상과 종교가 꽃피웠다. 그런 속에서 불교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론적으로 탁월하고 논쟁에 강한 불교의 속성 때문이다. 부처님이 태어나서 말씀했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은 모든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선언인 동시에 그 누구도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해 있음을 갈파한 선언이다. 불교는 산신과 칠성신까지 포용하지만 법의 진리성 문제에 있어서는 털끝만큼도 물러섬이 없는 종교다.” ▲다른 종교인들이 불교를 우상의 종교로 폄하하는 일이 있다. “무지의 소치다. 불자들이 불상에 예배하는 행위는 불상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인격을 연마시키며 번뇌를 조복 받아 해탈의 공덕을 이루려함이다. 오히려 기독교의 신을 불교교리로 조명하면 그릇된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고 희로애락의 번뇌에 물들어 스스로 속박당하고 있는 존재다. 결코 자비롭거나 평등하지도 않다.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향해 끊임없이 분노를 일으키고, 상을 주거나, 벌을 주고, 심판을 하다가 급기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에 던져버린다. 그렇기에 신이라지만 중생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일 따름이다.” ▲불교를 염세주의로 간주하는 일도 있다. “탈출구가 없으면 염세주의가 맞다. 그러나 불교는 고통이 사라진 깨달음과 열반을 얘기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8정도와 바라밀을 제시한다. 어찌 염세주의라 할 수 있나.” ▲불교는 삶을 고통으로 보기 때문 아닌가. “삶을 고로 보는 것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다. 중생들은 늘 욕망하고 그 욕망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중생들의 고통을 없애고 행복으로 이끄는 것, 이것이 불교에서 지향하는 으뜸 되는 가치다. 불교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고통이 발생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고통을 소멸시키는지를 상세히 설명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교가 현대에 필요한 이유는. “2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실존적인 고통은 바뀌지 않았다. 불교는 고통의 발생과 소멸에 관한 법칙이다. 불교는 인간이 발견한 최고의 진리다.” ▲불교의 진리는 절대적인가? “그렇지 않다. 불교는 기독교와 달리 절대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교 입장에선 불교가 없어져야 할 종교다. 세상이 지극히 평화롭다면 범죄를 다스려야 할 법관이 필요 없는 것처럼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다면 고통의 원인과 소멸을 말하는 불교도 더 이상 있어야할 이유가 없다. 불교가 불필요한 세계, 그것이 곧 정토세상이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59호 / 2016년 9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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