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선(禪)으로 읽는 복음] 06. 악마(사탄)의 유혹

장백산-1 2016. 9. 17. 14:17

[선(禪)으로 읽는 복음] 06. 악마(사탄)의 유혹


그 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사십일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유혹하는 악마가 와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저 아래로 뛰어 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나님이 천사들을 시켜 

당신을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

았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나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다

시 아주 높은 山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며 "당신이 내 앞

에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악마)야,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고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

[마태복음, 4:1~11]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

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마가복음, 1:12~13]


예수께서는 요르단강에서 성령을 가득히 받고 돌아오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셔서 사십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사십일이 지났을 때는 몹시 허기지셨다.

그 때에 악마가 예수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하여 보시오." 하고 꾀었다.


예수께서는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악

마는 예수를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잠깐 사이에 세상의 모든 왕국을 보여 주며 다시 말하였다. "저 모

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저것은 내가 받은 것이니 누구에게나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수 

있소. 만일 당신이 내 앞에 엎드려 절만 한다면 권세와 영광 모두가 당신의 것이 될 것이오."


예수께서는 악마에게 "'주님이신 너의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라' 고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

고 대답하셨다. 다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 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나님이 당신의 천사들을 시켜 너를 지켜 주시리라' 하

였고 또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손으로 너를 받들게 하시리라' 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하고 말

하였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희 하나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이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이

렇게 여러 가지로 예수를 유혹해 본 끝에 다음 기회를 노리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누가복음, 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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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복음서에서 예수가 그의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기 以前에 광야(廣野)에서 여러 차례 악마의 유혹

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경(佛經)에도 마왕(魔王)인 파순이가 보리수 아래에 앉아 수행하는 고

타마 싯다르타를 찾아와 그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와 석가모니를 찾아와 유혹한 악

마는 眞理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이 종종 맞닥뜨려야 하는 인간의 내면적, 심리적 갈등, 분별 망상 번뇌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평소에는 인간의 내면적, 심리적 갈등인 분별 망상 번뇌의 존재를 잘 모르고 지내다가 개인적인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면 인간 내면에서 들려오는 '나'라는 自我의 목소리(생각 마음 의식 분별 망상 번뇌)가 있

습니다. 자칫 그것이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생각 마음)이라고 錯覺할 수 있지만 그것이 바로 악마, 

사탄, 타인의 목소리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유혹하는 악마는 예수가 잘 알고 있는 성서의 내용을 인

용하며 예수를 잘못된 길로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나'라는 자아의 목소리(생각 마음)은 마치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인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라는 자아의 목소리(생각 마음)라는 그 유혹에 쉽게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은 '나'라는 그 목소리가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그 목소리를 언제나

듣고 있는 말이 없는 존재라는 事實을 대부분의 인간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인간 내면에서 출몰

하는 자아의 목소리, 속삭이는 자, 유혹하는 자의 정체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악마의 유혹을 받을 때, 예수가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을 때 그는 40일 동안 단식하고 있었다고 합니

다. 예수가 악마의 유혹을 받는 공간적 배경으로서의 광야(廣野)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가도 가도 

끝없이 아득한 곳, 텅~비고 고요한 곳, 인적이 끊어진 황량한 사막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인간의 自我

가 어디에도 몸을 피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곳, 먹고 마실 것이 없는 그곳이 바로 광야, 진정한 나, 진짜 

나, 본래의 나, 본래면목, 본래의 나, 주인공, 불성, 영성, 부처, 하느님 입니다.


眞理는 인간의 세속적 자아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아무런 매력도 없고 정말 광야, 황무지, 사막과 같습니

다. 인간적인 欲望의 對相이 될 만한 것이 진리의 세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의 초기, 

영적 변성(變性) 과정의 초기에 많은 구도자들이 악마의 유혹에 빠집니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정체가 

폭로되지 않은 '나'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 믿음, 自我의 목소리가 인간 내면 한 구석에서 계속

내게 속삭입니다.


예수가 악마에게서 받은 첫 번째 유혹은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인간이 먹고 사

는 문제, 물질적 탐욕의 문제를 적시하는 것입니다. 애타게 ‘도(道)’를, 진리를, 진정한 자기자신을, 부처

를, 하느님을 찾고 구하던 淸淨한 수많은 求道者들이 빵이라는 유혹에 걸려 結局 ‘돈’의 노예로 전락하는 

모습을 이미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온갖 精神的 物理的인 現象들로 現示되어 드러나는 모든 形相이 

덧없다는 사실, 제행무상(諸行無常)을 깨달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든지 다시 形相에 집착하고 사로잡

혀서 구속당할 수 있다는 事實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유혹은 복음서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초

능력, 신통력에 대한 자아의 유혹입니다. 초월적인 능력을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 인간적 限界에 

갇혀있다는 반증입니다. 아무리 물 위를 걷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목적이 그러

한 능력을 가진 사람의 이익과 명예를 위한 것이라면 초능력, 신통력은 더 이상 眞理가 아닙니다.


끝으로 세 번째 유혹은 세속적 권세, 권력에 대한 욕망(欲望)입니다. 영적인 통찰력을 얻은 사람이 그 통찰

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려고 할 때 부득이하게 대중들이 모이면서 영적인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그런데 집

이라는 것은 커지면 커질수록 생명을 지닌 생물체와 같이 자기 나름의 生理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다 보

면 눈에 보이지 않는 眞理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꼭두각시놀음이 더 중요한 것처

럼 보이게 됩니다.


무엇이나 먹어치우는 불가사리와 같은 自我의 欲望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金剛經에서 보살

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眞理의 

길을 걷는 사람은 人間의 自我相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인간 스스로가 육체 안에만 갇혀 있는 고독한 영

혼이 아니라는 事實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주만물 일체, 우리 모두는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에 있음 그 自體입니다.


모든 정신적 물리적인 형상들로 현시되어 드러났지만 동시적으로 형상이 없는 모습이 우리들 존재의 本

來의 모습, 눈앞 텅~빈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입니다. 생명 없는 모든 것들을 살려내고 있는, 영원한 

생명(永生), 불생불멸 상주불멸하는 眞實生命이 우리들, 이 세상 모든 것들, 일체 존재의 본래 모습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있고, 나는 모든 것들 안에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바로 나이고, 

내가 바로 이 세상 모든 것들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바로 이 세상 모든 

것들입니다. 이 眞實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아멘.


- 몽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