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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法相), 法이라는 相을 내지말라

장백산-1 2016. 10. 25. 01:01

법상(法相), 法이라는 相을 내지말라


불교에서는 무집착과 무소득을 설합니다. 사실 본래부터 집착할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고 합니다. 

無有定法이라고  미리 定해진 法, 즉 이 세상에 아무것도 미리 정해진 것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교를 특정한 종교적 교리로 규정지으려고 하는 우를 범하곤 합니다.


사실 ‘불교는 무엇 무엇이다’라고 규정지을 만한 정해진 것은 없으며, 특별한 정해진 교리를 내세우지

도 않습니다. 오로지 불교에서 하는 것이라고는 사람들이 내세워놓은 온갖 교리며, 전통이며, 가르침

이며, 고정관념이며, 진리에 대해 부정을 하면서, 그 고정된 도그마를 깨뜨리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세워놓은 온갖 분별 망상 번뇌를 깨뜨리는 것, 즉 파사(破 ; 옳지 않은 것을 타파함)

의 역할을 합니다. 파사, 즉 삿된 것을 파하고 깨뜨리면 저절로 현정(顯正), 즉 바른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삿된 것을 타파하면 저절로 眞理가 드러날 뿐이지만, 그 眞理라

고 인간이 이름을 붙여 말하는 眞理도 정해진 진리가 아니며, 내세울 수 있는 어떤 특정한 무언가를 세

우는 진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불교에서 내세우듯 말하는 眞理를 가리키는 모든 단어들은 언제나 전부 다 수단이고 방편일 뿐입니다. 

언어로 표현되었고, 말로 할 수 있는 모든 표현들은 전부 다 수단과 방편입니다. 불성, 본래면목, 여래장, 

참나, 주인공, 일심, 자성청정심, 진아 등 이런 모든 단어들이 의미하는 어떤 特定한 法이나 物件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가리키는 이런 모든 이름을 가명(假名)이라고 합니다. 그

래서 法相(모든 것에 관한 관념, 개념, 생각, 모습, 이미지)를 타파하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불교에서는 無我, 中道, 緣起, 空이라는 思想을 내세운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상들은 전부 다만 삿되게 세워진 잘못된 허망한 分別 妄想 煩惱을 깨부수기 위한 도구(방편)

일 뿐입니다. 무아, 중도, 공, 연기라는 불교의 핵심 교리를 가만히 살펴보면 전부 다 ‘없다’ ‘허망하다’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方便이며 假名일 뿐인 것입니다.


無我도 나랄 것이 없다는 말이고, 空도 텅~비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고, 연기도 실체는 없으나 이 세상

모든 것은 因緣에 따른 假合으로 이루어진 非實體的인 存在, 즉, 허상, 신기루, 그림자일 뿐이라는 가르

인 것입니다. 中道도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불교에서는 언제나 가르침을 설할 때 中道로써 설합니다. 中道

로 설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 한 쪽만을 내세우거든요. 中道는 양쪽 어느 쪽도 내세우지 말라

는 가르침입니다.


不二法이라는 방편의 말 또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것일 뿐,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님들이 수행 점검을 할 때에도 ‘그래 그게 맞다’ ‘네가 진리를 알았다’라고 하지는 않

고, ‘그건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거다’라고 내세울 정해진 어떤 것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無有定法이고 諸行無常입니다.


無我도 마찬가지인데요, 예를 들어 無我는 브라만교의 아트만 사상이라는 有我的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부처님 당시의 수많은 인도인들에게 그러한 有我的인 아트만 사상이 잘못된 것임을 설하기 위해 無我라

는 방편으로써 有我에 치우친 견해를 깨뜨려 주신 것입니다. 無我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참

나, 불성, 본래면목이라는 방편을 쓸 수 있겠지요.


이처럼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法, 정해진 것이 없는 法, 허공처럼 텅~비어 흔적도 없는 

法을 어쩔 수 없이 언어라는 세속제(世俗諦)로써 사용하지 않을 수 없어 교리처럼 내세우게 된 方便이 

바로 空, 無我, 緣起, 中道라는 언어일 뿐인 것입니다.


이처럼 불교에서의 모든 교리는 사실 교리라고 정해진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라 응병여약의 방편설법인 

것입니다. 불법은 이처럼 그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이 없기에 그 어떤 것도 내세우지 않고 사람들이 번뇌 

망상 분별로 만들어논 모든 相을 단지 깨뜨리기만 할 뿐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돌이나 나무 같지는 않아 달마대사의 無心論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마음은 없으나 

모든 법의 실상을 잘 깨닫고 참된 반야를 갖추어 三身(법신, 보신, 화신)이 자재하게 反應하고 作用함에 

거리낌이 없다” 


이처럼 정해진 그 어떤 존재나 마음이나 法이나 相은 없지만, 마음 없는 가운데 여여하게 비추고 작용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법상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