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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없으나 무한하게 작용한다

장백산-1 2016. 12. 12. 23:13

마음은 없으나 무한하게 작용한다


달마스님의 無心論에는 마음이 있는지 마음이 없는지에 대한 제자와 대사의 대화가 나옵니다. 제자가 

묻습니다. “마음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답합니다. “마음은 없다”

 

제자가 다시 묻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음이 없다고 대답하셨으니, 그렇다면 罪도 없고 福도 없어야 할

텐데 무슨 이유로 중생들은 육도윤회를 하면서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까?”


답합니다. “중생은 허망하게 해매면서 마음 없는 가운데 헛되이 마음을 만들어내고, 여러 業을 지으며 

그 業에 헛되이 執着하기 때문에 마음이 있다고 여긴다. 그 까닭에 육도윤회하며 삶과 죽음이 이어진다.

비유하면 사람이 어둠 속에서 나무 등걸을 보고 귀신으로 여기고,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여겨 두려워하

는 것과 같다.”

 

마음은 본래 없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죄를 짓는 마음이나 복을 짓는 마음 등의 業을 짓는 마음도 없어

야 마땅할 것인데 중생들은 왜 육도윤회를 하게되는 걸까요?


마치 새끼줄을 보고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게 되면 없던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새끼줄

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지만 않으면 두려운 마음은 생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는 허망한 분별 번뇌 망상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생기고, 그로인해 두려움의 결과를 초래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중생들은 마음 없음 속에서 그저 無心하게 존재하면 되는데, 억지로 헛된 妄想心을 일

으켜서 헛되이 뱀이 있다거나 귀신이 있다고 분별하고 착각하여 뱀이나 귀신에 집착하게 되고 그런 까

닭에 그런 행위에 의한 果報인 육도윤회의 세계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심한 답변에도 제자는 또 묻습니다.


“보리와 열반을 얻을 수 없다면, 과거 모든 부처님이 보리를 얻은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답합니다. “다만 세속제의 문자인 방편으로써 부처, 보리, 열반을 말하는 것일 뿐, 眞諦(진제)에서는 

진실로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유마경에서는 ‘보리는 몸으로도 얻을 수 없고,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다’고 했고, 금강경에서는 ‘얻을 수 있는 작은 법도 없다’고 했다. 모든 부처님은 다만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었다. 마음이 있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있고, 마음이 없으면 이 세상 아무것도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얻을 것이 없는 사실을 터득했을 뿐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本來無一物임을, 

텅~빈 空임을, 본래 얻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제자는 묻습니다. “마음이 없다면 나무나 돌에도 마음이 없으니 나무와 돌은 같은 것 아닙니까?”


답합니다. “마음 없는 이 마음은 나무나 돌과는 같지 않다. 마치 하늘북과 같아서 마음은 없으나 저절로 

여러 묘한법을 내어 중생을 교화하고, 여의주와 같아서 마음은 없으나 여러 변화된 모습을 잘 드러낸다. 

비록 마음은 없으나 법의 실상을 잘 깨닫고 지혜를 갖추어 자재하게 반응하고 작용한다.”


마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 없음, 깨달을 한 법도 없음을 깨닫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아무 것도 없다면 깨달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아무 것도 없으면 돌이나 나무와 같

은 것 아닌가 하고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마음 없음, 한 법도 없음은 완전히 죽어 있는 없음이 아니라 생

생하게 살아서 작용하는 無心, 연기공성(緣起空性), 우주에 충만한 우주에너지정보장입니다.


이 깨달음의 세계는 아무 것도 없는 無心을 깨닫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空虛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그 아무 것도 없는 텅~빈 가운데 無限한 功能과 無限한 智慧로 無限한 作用을 이루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없음 위에 드러나는 것이니 그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겠지요. 해도 한 바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진정 자유로운 것이지, 남들에게는 없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깨달음이라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 깨달음을 잃어버릴까봐 걱정하느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본래 아무 것도 없으니 빼앗길 걱정도 없고, 본래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니 완전히 푹 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심, 마음없음의 공능입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