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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않고 흐르는 마음공부

장백산-1 2016. 12. 21. 15:55

머물지 않고 흐르는 마음공부


법성게에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法性, 진리, 지혜, 깨달음이라는 이름, 

말은 말 자체 그대로 깨달은 앎일 뿐 고정된 실체가 있는 대상 경계가 아니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 법성, 

진리, 지혜, 깨달음, 각성이라는 이름 말이 가리키는 것은 머리로 이해되거나, 헤아려서 알 수 있는 고정된 

실체가 있는 대상 경계가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터득해서 確認할 수 있을 뿐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사실 팔만대장경 속에 있는 모든 말씀, 수도 없이 많은 불법을 설명하는 가르침이나 책들이나 법문

들이 전부 이 진리, 법, 마음, 본래면목 등의 이름 말이 가리키는, 즉 ‘달(절대적 진리)를 가리키는 방편 도

구에 해당하는 손가락’일 뿐, 달(절대적 진리) 자체는 아닌 것이다. 절대적 진리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말

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선지식 말씀도 절대진리를 가리키는 하나의 방편일뿐  절대적 진리가 아니기에 

진리를 가리키는 방편인 말씀에 집착하면 ‘분별 망상’,  무엇에든 머물지 말아야


그럼에도 우리 중생들이 알 수 있고, 이해하고 인식하는 방법은 오로지 머리로 헤아리고, 말로 설명하는 

방법 밖에는 다른 수단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불교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많은 선지식 스님들께서 

말(언어)로, 설법으로 무수히 많은 방편의 말을 해 놓았다. 


그러나 그 모든 방편의 말들, 설법들, 팔만대장경이라는 경전조차, 그 모든 말로 표현되어진 것들은 전부 

다 절대적 진리를 가리키는 손가락,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즉, 절대적 

진리를 가리키는 방편, 손가락인 말, 설법, 경전, 조사어록 등 일체의 말 언어 문자로 기록된 것은 전부 

다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설명하는 제한되고 한정된 방편의 언어일 

뿐이라는 것이다. 


방편이라는 말 자체가,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해서 특정한 병이 있는 사람에게만 그 약효가 나타나는 

임시적인 방편의 약일뿐이라는 뜻이다. 인도에서는 아트만(Atman)이라고 하는 고정된 실체적 자아가 있

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없다’는 ‘무아(無我)’의 방편을 쓰셨고, 또 내가 없다는데 너무 집착해서 

무기공(無記空)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참나’ 혹은 ‘佛性’이라는 ‘유아(有我)’적인 방편을 사용했

을 뿐이다. 이처럼 절대적 진리를 가리키는 모든 방편인 말이나 이름은 전부 특정한 생각에 오염되어 있고, 

사로잡혀 있어서 분별 번뇌 망상이라는 病에 걸려있는 사람에게 그 병을 치료해 주기 위한 처방약으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불교는 타종교에서 근본주의자들, 문자주의자라고 불리는 분들처럼 경전을 있는 그대로, 문자 그

대로 곧이곧대로 전부 다 진리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전혀 불교를 모르는 사람이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말이나 문자에 집착해 있고, 방편에 집착해 있는 사람들이 불교 안에는 너무도 많은 

듯 보인다. 아니 너무도 많다기보다는 거의 대부분이 어떤 특정한 수준의 方便에 사로잡혀 절대적 진리

를 가리키는 방편에 불과한 말이나 문자 경전이 불교의 전부라고 믿고 있어 보인다. 물론 어떤 방편이라도 

그 방편의 가르침이 나에게 맞고 아주 적절하게 느껴지고 도움이 된다면 그 방편이 지금 나의 根機에서는 

나와 잘 맞는 처방전인 방편상의 가르침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방편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최고

의 진리라고 여긴 나머지 다른 방편상의 가르침은 진리가 아니라고 여기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그 

방편의 치료약이 나의 치우친 견해와 분별 번뇌 망상을 치료해 준 뒤에는 또 다시 그 다음 단계의 높은 방

편의 가르침을 향해 마음을 열게 되기 때문이다.


불자라면 그렇게 마음을 활짝 열고 있어야만 점점 더 높은 방편의 가르침으로 유연하게 옮겨 갈 수 있게 

되고, 결국 그렇게 꾸준히 정진하고, 성숙하고, 점점 마음이 열리게 되다 보면 어떤 깨달음의 임계점까지 

가게 되고, 그러다보면 결국 몰록 깨달음을 터득해서 확인하게 되는 차원으로까지 공부가 힘을 받아 나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스승, 특정한 수행법, 경전, 방법, 체험만이 완전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거기에 묶여 있을 뿐,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아무리 위대한 수행법도,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거기에 집착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수행법 가르침이 

오히려 병이 될 뿐 방편 처방전으로서의 약효를 발휘하지 못한다. 법상(法相)에 빠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깨달음이라고 하는 견성체험을 한 뒤에도 그 견성이 깨달음이라고 사로잡혀 있게 되면, 그것은 

또 다른 법상에 빠지는 것일 뿐이다. 어느 특정한 수행, 스승, 경전, 방편, 체험에만 머물지 말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되어 보라.


-법상 스님-  2016.12.19  

-목탁소리 지도 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