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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相)을 타파하라

장백산-1 2017. 5. 31. 13:44

모든 상(相)을 타파하라


무릇 상(相)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곧바로 여래를 볼 것이다.


집착하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만일 모양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소리로써 여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道를 행함이라,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일체 현상계의 법(一切有爲法)은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이 세상을 관찰할지어다.

 

정한 법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라 한다. 석가모니 여래께서는 

특정한 법을 설하신 바가 없다. 여래께서 말씀하신 법은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며 법이라거나 

법이 아니라고 분별 할 수 없다.

 

여래가 깨달았다고 할 만한 그 어떤 법도 없다. 수보리야, 석가모니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여래는 ‘일체법이 다 불법’이라고 설한 것이다. 수보리야 

이른바 일체법은 곧 일체법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이 일체법이라는 말이다.

 

저 많은 국토 가운데 있는 모든 중생의 온갖 갖가지 마음을 석가모니 여래는 다 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

여래가 말하는 모든 마음은 마음이 아니라 그 이름이 마음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수보리야, 과거

의 마음도 알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알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가히 알 수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서 제일 큰 산인 수미산만한 많은 칠보를 가지고 널리 보시했다 하더라도,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금강경)이나 이 경의 사구게(四句偈) 하나만이라도 받아 지녀 읽고 외우

고 남을 위해 말해 주면, 그 복덕에 비하여 앞의 복덕은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 만억분의 일 

또는 그 어떤 산술적 비교로도 능히 미치지 못할 것이다.

 

석가모니 여래가 ‘내가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하겠느냐?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실로 석가

모니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기 때문이다.


[금강경]

 

『금강경』은 끊임없이 모든 상(相)을 타파할 것을 설한다.


인간의 무지함 어리석음은 分別心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는데, 바로 그 분별심으로 보는 모양이 바로 相,

分別相이다.


이것과 저것을 분리 분별해서 나누려면 이것과 저것이 서로 다른 모양, 즉 서로 다른 相이어야 한다. 

이것과 저것의 모양이 서로 다르면 그 가운데 어느 한 쪽은 좋게 다른 쪽은 싫게 느껴진다.


좋은 것은 취하고 싫은 것은 버리거나 거부하게 된다. 취하지 못해도 괴롭고 버리지 못해도 괴롭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모든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외모, 재력, 경력, 학력, 명예, 지위, 권력, 사회적 영향력 등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판단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전부 다 상(相)이다. 相을 갖고 상대를 바라보면 그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없다. 相을 내려놓고 상대에게 다가설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참된 진실, 진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일체, 이 세상 모든 것도 사람과 마찬가지다. 相을 버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볼 때 모든 것들의 실상이 

드러난다. 相이 있는 것은 모두  다 허망하다. 相은 眞實이 아니기 때문이다. 相은 다만 내 생각으로 내 마음

으로 만들어놓은 허망한 착각이요 망상의 그림자일 뿐이다.


내 생각이 만들어 놓은 相이 곧바로 相이 아니라는 진실에 눈 뜰 때 곧 여래를 볼 수 있다. 想이 相이 아님을 

곧바로 알면 그 어떤 相에도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내어 쓸 수가 있다.


모양이나 소리로써 여래, 진실, 진리를 보려 하면 그는 사도, 잘못된 道를 행하는 것일 뿐이다. 일체 유위법,

즉 이 세상 모든 것은 정신적인 현상이던 물질적인 현상이던 전부 다 相으로 만들어진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들이기에 물거품과 같고 꿈과 같고 환영과 같다.


그 어떤 相도 없기에, 法이라고 할 만한 法도 없다. 정해진 法이 하나도 없다. 깨달았다고 할 만한 그 어떤

깨달음도 없다.


참되다는 말도 相이고, 헛되다는 말도 相이니 참된 불법은 이러한 양 극단을 벗어나 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분리 분별되어 있지 않은 不二다. 일체법, 이 세상 모든 것은 곧 둘로 나누어지지 않은 참된 ‘하나’다. 

그러기에 일체법이 곧 불법이다. 일체 모든 것이 전부 全切로서의 ‘하나’지만, 사실 이 하나도 하나라고 할 

만한 특별한 하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방편일 뿐인 경전에 있는 法, 一切法, 佛性이라는 이름들은 어디까지나 이름일 뿐, 그런 이름에 집착

해서 그 이름을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하려고 하면 결코 안 된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것, 일체법은 일체

법이 아니라 다만 그 이름이 일체법, 이 세상 모든 것일 뿐이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