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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도 결국엔 버려야만 한다

장백산-1 2017. 5. 27. 13:54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도 결국엔 버려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났는데 도중에 큰 강을 만났다고 하자. 강의 이 쪽은 두렵고 위험한 반면 강 건너 저 쪽은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다. 그런데 강 건너 저 쪽으로 건너 갈 수 있는 배가 없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강 건너 저 쪽 언덕은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니 강을 건너 가기는 해야겠는데 배가 없으니 갈대와 나뭇가지 등을 모아 뗏목을 만들자. 그 뗏목에 의지해 저 쪽 언덕으로 안전하게 건너가야겠다그래서 뗏목에 의지해 그는 결국 강을 건널 것이다. 강 건너 이쪽 안전하고 편안한 언덕에 도착해 그는 생각한다.


이 뗏목은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 뗏목에 의지해 이 쪽 언덕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니 이제 이 뗏목을 짊어지고서라도 가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뗏목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 옳은 태도인가?”  아닙니다. 부처님

그러면 뗏목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강을 건너 이 언덕에 도착한 그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뗏목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제 무사히 강을 건넜으니 뗏목은 놔두고 내 갈 길을 가야겠다.’라는 것이야말로 뗏목에 대한 바른 태도이다.


이와 같이 강을 건넌 후에는 뗏목을 버리고 가야 되듯이 나의 가르침도 강을 건넌 후에는 버리고 가야  한다. 나는 내 가르침을 그대들에게 소유하라고 설한 것이 아니라뗏목처럼 그대들이 강을 건너 가게 할 목적으로 가르침을 설한 것이다. 나의 가르침이 이와 같음을 안다면 좋은 것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나쁜 것에 대한 집착이야 더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맛지마 니까야(Majjhima Nikàya, 中部)]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뗏목과 같은 것일 뿐이다.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의 목적은 사람들이 깨달음의 저 쪽 언덕으로 건너가게 하기 위한 방편, 도구, 수단일 뿐, 뗏목과 같은 가르침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강을 건너는 도구인 가르침 자체에 집착하여, 가르침 자체를 절대시해서는 안 된다.


모든 부처의 가르침은 방편일 뿐이고, 방편이란 가짜란 의미다. 사람들의 목적은 깨달음의 저 쪽 언덕에 이르는 것일 뿐, 뗏목과 같은 가르침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부처의 가르침은 이와 같아, 언젠가는 반드시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붙잡고 가르침에 안주하고 가르침에 의지할 그 어떤 가르침도 없다. 그 때 그 때, 사람의 근기와, 그 시절에 필요한 가르침이라면 그 때 사용하고 수행하고 사용해야 하겠지만 가르침을 사용한 뒤에는 미련 없이 모든 가르침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뗏목, 새로운 방편인 새로운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고, 나아가 가르침이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안전하고 안온한 깨달음이라는 저 쪽 언덕에 온전히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의 말씀은 전부 다 뗏목과 같은 방편이다. 경전 말 속에 어떤 실체적인 진리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말이나 언어라는 것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도 없고 담을 수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방법 또한 전부 다 방편이다. 경전도 수행도 기도도 절하는 것도 사경도 염불도 그 모든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다 버리고 떠나가야야만 할 것 들이다. 그러니 어떤 경전도, 어떤 수행도 절대화하거나, 집착하지는 말라. 집착하게 되면, 집착하는 그것에 머물러 의지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집착하는 그것에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많은 불자들이나 스님들이 강을 건너 갈 수 있는 뗏목과 같은 부처의 가르침, 즉 방편을 진짜인 것으로 오해하여, 특정한 방편, 즉 가르침에 사로잡혀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가르침인 방편을 내려놓을 때, 그리고 진리에 마음을 활짝 열고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한 발 앞으로 내딛을 수 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