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박근혜 탄핵 1년 맞아 만난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지난해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지 꼭 1년이 지났다. 그사이 새 정부가 들어섰고, 박근혜(66)·최순실(62) 등 ‘국정농단’ 주역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노승일씨(43) 등의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노씨가 오랜 기간 치밀하게 모아 2016년 10월 특검과 당시 야당 등에 제보한 자료들은 청문회 과정에서는 물론 이후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로 채택됐다. 노승일씨를 지난 5일 청와대 앞에서 만났다. 자신의 국정농단 폭로 과정을 담은 책 <노승일의 정조준>(매직하우스)을 최근 펴내기도 한 그의 표정은 밝았다.
- 그동안 어떻게 지냈습니까.
“지난해 9월 사단법인 대한청소년체육회를 의정부시에 설립해 운영 중이에요. 재원은 청문회 당시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이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을 때 국민들이 모아준 기금 1억3700만원이었어요. 저소득층과 다문화가정의 재능 있는 초·중학생 10명을 선발해 배드민턴을 가르치고 있어요.”
- 후원금이 많이 들어오나요.
“거의 들어오지 않아요. 제가 알바를 해서 메꾸려고 하는데 지도자 월급도 석 달째 밀렸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게 할 수는 없죠. 이번에 책을 낸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인세 전액을 청소년체육회 기금으로 쓸 계획이에요.”
- 최순실씨는 1심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받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어요.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는 것을 보고 삼성의 막강한 위력을 새삼 절감했어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삼성이 구입해서 정유라가 탄 3마리 말에 대해 이 부회장 항소심에선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뒤이어 열린 최순실 재판에선 뇌물이라고 봤잖아요. 이러다가는 최순실도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어들 것 같아요.”
- 최씨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언제, 어떤 계기였나요.
“(고)영태와 저는 한국체육대학 95학번으로 서로 알고 지냈지만 친하지는 않았어요. 영태는 국가대표 펜싱선수로 주로 태릉선수촌에서 지냈거든요. 영태를 졸업 후 처음 만난 게 2014년 2월이에요. 제가 증권회사에 다닐 때였는데 영태와 친한 제 친구가 ‘영태가 널 한번 보자고 한다’고 해요. 그래서 압구정역 부근에 있는 영태의 사무실(신사동) 앞으로 찾아갔더니, 영태가 건물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 그날 고영태씨가 최씨를 소개해준 건가요.
“아니에요. 영태가 자기 차라고 한 포르셰 카이엔에 같이 탄 후 제가 ‘너는 요즘 뭐하고 지내냐’고 했더니, 영태가 ‘나, 대통령 옷 만들어. 지금 청와대로 배달간다’고 해요. 고개를 돌리니 차량 뒤칸에 가봉된 옷이 빼곡히 걸려 있더라고요. 영태의 말로는 대통령 옷뿐만 아니라 수석, 장관 옷도 만든다고 했어요. 청와대 가는 길목인 통인시장 맞은편의 한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졌는데, 며칠 후 영태가 이력서를 e메일로 보내라고 했어요. 3월에 최순실을 차움빌딩 뒤편 커피숍에서 만나 면접을 봤죠.”
- 그때 채용된 거군요.
“최순실은 제게 배드민턴 운동선수였는데 왜 증권회사에 다녔냐는 등 이것저것을 묻더니, 앞으로 체육재능기부 사단법인을 만들려고 한다며 신사동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누군지 몰랐죠. 출근해보니 남자 세 분이 옷을 만들고 있었고, 한 직원이 제게 안쪽 사무실 문을 열어주며 제 자리라고 안내해줬어요. 이후 최순실은 제게 사단법인 설립 절차를 알아보라고 했어요.”
- 최씨가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란 걸 언제 알았습니까.
“영태가 ‘절대 아는 척하지 말라’면서 ‘최태민 목사 딸이 저 사람’이라고 알려줬어요. 대선 때 야당에서 박근혜 후보와 최 목사 얘기가 많이 나왔잖아요. 그리고 나중의 일이지만 2015년 9월 독일에서 최순실이 정유라 때문에 속상해서 울면서 박 대통령과 자기가 ‘친한 언니동생 사이’라고 말해줬어요.”
그러나 2014년 4월 최씨는 노씨를 입사 한 달 만에 해고한다. 사단법인 사무실을 강남구 삼성동으로 막 옮기려던 때였다. 그리고 2014년 11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가 터진다. 당시 생계를 위해 밤에는 배드민턴동호회 레슨을 하고 새벽 2시부터 다음날 오후 2시까지는 구리농수산물시장에서 일하던 노씨도 보도를 접했다. 노씨는 최씨와 일할 때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최씨에게 준 사단법인 설립 관련 서류를 전달받았던 것을 떠올렸다.
“김종이 최순실에게 그때 건네준 문서가 정부문서였다면 최순실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특혜이고 부정부패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그만둘 용기가 없었거든요.”
- 독일에는 어떻게 가게 됐나요.
“2015년 7월 영태가 전화해서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한화에서 삼성으로 바뀌고 삼성에서 승마선수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만들어졌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제게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독일에 설립되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코어스포츠)를 위해 일하라고 했죠. 다시 저는 최순실을 만났고, 그해 8월11일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가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도착하자 마중 나온 데이비드 윤(윤영식)은 박원오 원장(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을 소개했다. 박 원장의 차로 이동한 비블리스 예거호프 승마장에는 정유라와 신모씨,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 그리고 신씨의 친구 김모씨와 마필관리사, 정유라의 독일생활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고모씨)도 있었다. 노씨는 “첫 만남 당시 반바지 차림의 정유라와 신씨의 허벅지에 아기 발바닥 문신이 똑같이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마필관리사를 통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 독일에서 국정농단 자료를 꼼꼼히 수집했는데, 왜 그랬습니까.
“독일에 가기로 결정할 때부터 부정부패가 있다면 제 손에 들어오는 모든 서류와 영수증을 모으고 자료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래서 통합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특히 18대 대선에서 박 대통령과 겨뤘던 문재인 의원에게 제보하자고 결심했죠. 마침 제가 독일에서 맡은 업무는 재무와 승마장 관리였어요.”
- 2015년 8월26일 프랑크푸르트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진행된 삼성전자와 코어스포츠 간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186억+α’ 계약을 지켜보면서 당시의 계약 장면을 촬영해 훗날 계약서 사본 등과 함께 제보했지요.
“증거자료 수집을 위한 저의 첫 번째 행동이었어요. 삼성 측에서 촬영을 막을까봐 긴장하며 얼른 휴대폰으로 찍은 후 주머니에 넣었죠. 계약을 앞두고 미리 독일에 와 있던 최순실과 영태는 1층 로비의 커피숍에서 기다렸고, 계약은 19층에서 이뤄졌어요. 삼성 측에선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전무, 법무팀 정 변호사가, 코어스포츠에선 박승관 변호사와 독일 헤센주 승마협회장인 로버트 하인리히 요제프 쿠이퍼스가 공동 대표 자격으로 계약서에 사인했어요.”
- 최씨는 왜 계약 현장에 직접 안 나타나고 1층 커피숍에서 기다렸나요.
“허수아비를 세워놔야 문제가 생기면 본인이 빠져나가니까요. 롯데, SK 등 기업에 돈을 요구할 때에도 늘 중간에 다른 사람을 끼워놓고 일을 벌였지, 직접 나서지 않았어요.”
- 보안에 철저했군요.
“최순실은 휴대폰을 3개 갖고 다녔어요. 독일에선 4개를 사용했고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제일 먼저 하는 일도 휴대폰 개수를 세는 거였다고 해요. 휴대폰은 모두 2G폰만 썼어요. 영태도 제게 ‘2G폰이 도청이 안된다’며 바꾸라고 했어요.”
- 직접 겪은 최씨는 어떤 사람인가요.
“변덕이 죽 끓듯 하고 감정조절이 잘 안되는 사람이에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죠. 자기가 ‘자리를 비켜달라’고 해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오면 ‘왜 옆에 안 있었느냐’고 화내면서 ‘머리는 뭐하러 들고 다녀, 무거운데’라고 모욕적인 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어요. 그래도 가끔은 측은지심이 생겼어요.”
- 왜요.
“딸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으니까요. (신씨와) 딸의 교제를 반대했는데 정유라가 제주도에서 출산을 하자 한국에서 못 살겠으니 독일로 보냈잖아요. 유라는 그래서 산후조리도 다 못한 것 같아요. 제가 독일에 갔을 때 유라의 아기는 겨우 백일이 지난 정도였어요. 최순실은 딸에 대한 사랑이 지독했어요.”
- 정유라씨는 어때 보였나요.
“많이 외로워 보였고, 아빠 정윤회씨를 굉장히 그리워했어요. 아빠와 사냥하고 말 탄 이야기도 하고 친할아버지 이야기도 했어요.”
-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친한 언니동생 사이라고 말했다고 했죠.
“독일에서 정유라가 기르는 개들 때문에 문제가 몇 번 생겼어요. 당시 유라는 개 여덟 마리와 고양이 두 마리를 백일 된 아기와 한방에서 키웠는데 동네 주민들이 동물보호청에 신고한 거예요. 최순실은 개를 팔라고 했지만 정유라는 안 팔겠다며 앞으로 말을 타지 않겠다고 버텼어요. 결국 최순실이 졌고, 딸이 개들과 같이 살 집을 알아봤죠. 그즈음 최순실은 제가 운전하던 자동차 안에서 울면서 ‘유라가 원래 착했는데 남자를 만나고 삐뚤어졌다. 내가 교육부를 20년 도와줬는데 자식은 쉽지 않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대통령과 오래된 사이로 친한 언니동생이라고 말한 거예요.”
-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다른 이야기는 없었나요.
“최순실은 자기가 아버지와 함께 남산에도 끌려갔다는 이야기도 하고, 자기 아버지가 죽으면서 ‘신의를 지키며 살라’고 했다는 얘기도 했어요. 또 독일에서죠. 최순실이 한번은 ‘차를 잠깐 세우라’고 말하고는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박 대통령이었어요. 정윤회씨 얘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여자와 다니는 것을 누가 목격했다는 얘기인 것 같았는데 최순실이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고 했어요. 저는 ‘대통령도 아줌마구나’ 생각했어요.”
- 통화 상대가 박 전 대통령인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나중에 목소리가 들렸거든요.”
노씨는 갑자기 생각난 듯, “2016년 6월 최순실과 하모 교수, 그리고 영태와 저, 이렇게 넷이 술을 마신 후 영태만 먼저 가고 최순실의 단골 노래방에 다 같이 간 적이 있었다”며 “노래를 부른 후 최순실이 ‘노 부장이 잘 해야 해. 위에서 퇴임 후 오실 거니까 잘 모셔야 해’라고 말했다”고 했다. 노씨는 “박 대통령이 퇴임 후 재단으로 오니 잘 하라는 뜻 이었다”고 말했다.
- 특검 당시 2015년 독일 KEB하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이었던 이상화씨와 대한항공 프랑크푸르트공항 지점장이었던 고창수씨에 대한 최씨의 인사청탁 의혹도 불거졌죠.
“이상화 지점장은 독일에 있을 때 만났어요. 최순실을 위해 그는 부동산을 끊임없이 추천했고, 저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최순실의 요구로 제가 실사를 해야 했으니까요. 고창수씨의 경우엔 직접 만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순실이 프랑크푸르트공항을 출입할 때는 항상 대한항공 남녀 직원 두 명이 최순실의 짐이 실린 카트를 들고 출입국장을 통과했어요. VVIP였던 거죠.”
노씨는 독일에서도 해고된다. 해고 통보는 사실상 2015년 8월26일 삼성전자와 계약이 끝난 직후 커피숍에서 이뤄졌다는 게 노씨의 설명. 최씨가 당초 한국에서의 약속과 다른 형식으로 급여를 주겠다면서 ‘싫으면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때 영태가 제 손을 잡고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자’고 하더니, ‘승일아, 내가 또 속았다. 미안하다. 나랑 같이 한국에 가자’고 했어요. 저는 거절했죠. ‘내가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냐. 내가 자료를 모으는 중이니, 신경 쓰지 말고 너나 들어가라’고 했어요. 한국으로 돌아간 영태는 제가 독일에서 모아놓은 증거자료를 한국의 김수현에게 보내라고 했지만 보내지 않았어요. 저는 독일에서 월급도 못 받은 채 10월 말까지 일했어요.”
청문회와 특검 당시 언론에 전 고원기획 대표로 언급된 김수현씨는 2014년 4월 노씨가 사단법인을 준비하던 사무실에서 쫓겨난 후 그 자리에 들어왔다는 게 노씨의 설명이다. 그리고 김씨를 고씨에게 소개한 이는 고씨와 사적으로 잘 알고 지낸 이현정씨다. 공교롭게도 김씨와 이씨는 2016년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의혹을 언론사 중 가장 먼저 보도한 TV조선의 이진동 사회부장이 2008년 안산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캠프 직원이었다.
- 최순실은 왜 두 번이나 일방적으로 해고를 한 걸까요.
“저를 잠깐 이용하려고 한 것 같아요.”
- 왜 그렇게 독일에 남으려 했나요.
“삼성이 준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 많이 떨리고 두려웠을 것 같아요.
“그랬죠. 특히 정유라가 시합에 나가고 저 혼자 승마장에 남아 있을 때는 출입문을 소파 등으로 막아놓고 베개 밑에 칼을 놔둬야 겨우 잠들 수 있었어요.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로부터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는 결국 그해 11월30일 한국에 돌아왔다. 정유라 등 비블리스 예거호프 승마장에서 살았던 모두가 10월 말 노씨만 남겨둔 채 동전 한 푼, 먹을 것 하나 남기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독일에 있는 동안 노씨는 삼성과의 매니지먼트 계약서뿐 아니라, 박원오 원장이 업무상 필요할 때 사용하라고 준 USB,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사줄 말을 테스트하는 동영상, 노씨의 컴퓨터로 최씨가 독일에서 수정한 대통령 방미 자료, 최씨가 노씨에게 독일에서 쓰라고 준 노트북의 휴지통에서 건진 대통령 연설문 등을 몰래 파일로 만들어뒀다.
2016년 1월 최씨는 노씨를 K스포츠재단에 입사시켰다. 노씨는 “영태가 최순실에게 내가 독일에서 자료를 모아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위험하니 옆에 둬야 한다고 말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실제로 최순실은 몇 번이나 내게 독일에서 자료 가져온 거 있냐고 물었고 나는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 TV조선은 2016년 7월26일 ‘미르’에 대한 의혹 보도 후 8월2일 ‘K스포츠재단 의혹’에 대해 맨 처음 방송했어요. 이 보도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2014년 10월 고영태씨가 TV조선 이진동 사회부장을 찾아가 최씨에 대해 제보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고씨와 이 부장의 만남을 몰랐습니까.
“보도 전까지는 전혀 몰랐어요.”
- 나오는 얘기로 최씨가 고씨의 여자친구가 혼자 있는 집에 찾아와 명품시계와 1억원을 가져갔다고 하는데요.
“명품시계는 롤렉스 시계 2개예요. 최순실이 선물한 것인데 나중에 돌려줘서 영태가 2016년 6월까지 차고 다녔어요. 돈은 영태 게 아니라 최순실이 맡겨둔 돈일 거예요. 최순실은 사무실 등 여러 곳에 금고를 두고 필요할 때 현금을 꺼내 쓰게 했거든요.”
“머리 비상한 최순실, 사익만 추구…장시호에 박근혜는 ‘미스 박’”
- 2016년 10월 TV조선에 보도된 의상실에서 찍힌 최순실 모습은 어떻게 촬영된 건가요. 이진동 부장은 2014년 말 입수했고, 폐쇄회로(CC)TV 영상이라고 밝혔는데요.
“2015년 독일에서 영태는 제게 분명히 ‘카메라를 의상실의 책과 책 사이에 숨겨놓고 찍어놨다. 그게 나중에 내 보호막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CCTV라면 영상이 와이드로 나와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았잖아요. 또 더블루K에도 없는 CCTV를 어떻게 설치하겠어요? 최순실이 얼마나 조심조심한 사람인데. 영태는 최순실의 동선을 정확히 알고 디자이너 책상 뒤편에 설치했다고 생각해요.”
- 왜 CCTV라고 했을까요.
“몰래카메라라고 하면 불법이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대통령 사과와 촛불 시위로까지 이어지게 한 기폭제는 JTBC 보도였다. JTBC는 2016년 10월19일 고영태씨 말이라며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보도했고, 24일엔 최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를 더블루K 책상 속에서 발견했다며 이 기기에서 드레스덴 연설문 등 청와대 기밀자료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 JTBC 2016년 10월19일 보도는 고영태씨의 발언이 발단이었어요.
“이성한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영태에게 같이 밥을 먹자고 해서 하남의 한 식당에서 만났는데 그 자리에 JTBC 기자가 동석했대요. 영태는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보도된 거죠. 보도 직후 최순실이 제게 전화해서 ‘빨리 고영태 찾아서 해외에 보내라’고 닦달했어요. 저는 영태에게 전화해서 ‘스톤(Stone)이 너를 찾아 해외에 가 있으라 하니 빨리 오라’고 했죠.”
- 스톤이라뇨.
“우리 사이에서 암호처럼 부른 최순실 별명이에요.”
- 최씨의 국정농단 정황을 보면 머리가 꽤 좋을 것 같은데요.
“최순실은 머리는 비상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공익이냐, 사익이냐의 갈림길에선 꼭 사익을 추구했어요.”
- 고영태씨는 최씨의 지시대로 10월20일 첫 비행기로 해외로 출국한 거죠.
“19일 밤 경복아파트 사거리에서 영태와 만나기로 했는데 6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어요. 전화를 했더니 이진동 부장과 같이 있더라고요. 사흘간 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저는 근처 모텔에서 영태를 기다렸어요. 늦은 밤이 돼서야 영태는 술이 잔뜩 취한 채 나타나서는 울면서 ‘나 이제 어떡하지?’ 하면서 이진동 부장이 ‘정실장 카드를 쓰라고 했다’고 했어요.”
- 정실장 카드가 뭔가요.
“최순실과 사이가 안 좋은 정윤회가 JTBC에 흘린 걸로 해서 덮자는 뜻이에요. 저는 ‘무슨 개소리냐’며 ‘집에 있는 중요한 짐을 다 챙겨서 나오라’고 했어요. 영태가 살던 아파트가 경복아파트 부근이었어요. 짐을 영태 차에 싣고 저의 본가가 있는 오산 집에 주차해뒀어요. 20일 새벽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 최순실이 영태에게 두 번 전화해선 막 화를 내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어요. 최순실한테는 영태를 필리핀으로 보냈다고 했지만 사실은 홍콩을 경유해 태국으로 보냈어요.”
노씨는 10월25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그리고 최재순 검사에게 그동안 모아놓은 국정농단 자료를 며칠에 걸쳐 모두 줬다. 노씨에 따르면 최 검사는 노씨가 당시 가져온 국정농단 증거자료들을 사진으로 촬영한 후 노씨에게 돌려준 다음 압수수색 형식으로 노씨의 집에 와서 다시 가져갔다. 만일에 대비해 노씨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노씨는 “이튿날 K스포츠재단에 출근해 일부러 ‘X됐다’ ‘어제 검찰로부터 압수수색당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노씨는 이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몇몇 야당 의원들과 언론에도 국정농단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 JTBC 태블릿PC는 어떻게 된 것인가요. 최순실·박근혜 재판에서도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논란도 계속되고 있어요.
“JTBC 태블릿PC는 어디에서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어요. 10월27일 영태가 귀국하자마자 오산에 주차한 영태 차에 있는 짐에서 검찰에 제출할 자료를 영태더러 챙기라 했어요. 짐에 검은색 삼성 태블릿PC가 있는데 빼놓길래, 뭐냐고 했더니, ‘최순실에게 받은 건데 한번도 사용한 적 없다’고 했어요. 저는 ‘24일 JTBC에서 최순실의 태블릿PC가 더블루K의 네 책상 속에서 나왔다고 보도했으니 넣으라’고 했죠. 영태는 자기는 그 책상을 8월에 이미 정리했고, 거기에 두고 나온 것은 디지털카메라 하나밖에 없었다며 펄쩍 뛰었어요. 영태는 ‘나도 증거를 모은다고 모으던 놈인데 왜 책상에 태블릿PC처럼 중요한 것을 남겨놓고 오겠냐’고도 했어요.”
노씨는 “당시 영태는 자기가 실제 사용하는 태블릿PC는 애플이라고 했다”며 나중에 박헌영 K스포츠재단 과장이 청문회에서 말한 ‘(고씨가) 충전잭을 구해오라’고 했던 것도 삼성 기기가 아니라 애플 기기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게 고씨의 얘기였다고 설명했다.
- 어떻게 된 일일까요.
“앞서 박헌영 과장이 JTBC 김모 기자를 접촉해서 JTBC <뉴스룸>에서 ‘일방적 해산 결정에…K스포츠 직원들, 비대위 구성’이라는 제목의 보도가 2016년 10월4일 나갔어요. 여러 언론에 K스포츠재단 등의 의혹이 계속 나오니까 최순실이 반박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에요. 그날 강지곤 차장이 K스포츠재단을 대표해 손석희 사장과 인터뷰했어요. 보도가 나간 후 박헌영 과장은 김 기자와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셨고, 취한 채로 사무실에서 잤어요. 노광일(더블루K 건물 관리인) 선생님이 10월18일 문을 열어준 JTBC 기자도 박 과장이 방송보도를 위해 접촉하고 같이 술도 마신 김 기자였어요.”
노씨는 “JTBC 태블릿PC의 진실에 대해선 손석희 사장이 답해야 한다”며 “태블릿PC가 아니어도 국정농단 관련한 증거는 차고 넘쳤다”고 말했다.
- 장시호씨도 태블릿PC를 제출했죠.
“장시호에게 들었는데 최순실에게 받은 건데 너무 커서 친구 아들에게 게임하라고 줬다고 했어요. 그러다 구속돼 조사받으면서 아빠에게 전화해 그 태블릿PC를 찾아오게 했는데 그때도 아이가 게임하고 있었다고 해요(웃음).”
- 최순실은 딸에게도, 조카 장시호씨에게도 배신을 당했어요. 둘 다 검찰에서 최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어요.
“정유라는 엄마와 상의 없이 독단으로 검찰에 가서 그랬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최순실은 자기 딸만이라도 욕을 안 먹고 살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장시호는 특검에서 만났을 때 자기가 왜 이모에게 불리한 증언들을 했는지는 얘기하지 않았어요. 장시호는 특검에 ‘이모(최순실)가 나한테 미스 박네 집에 가서 금고에 있는 돈 갖고 유라를 챙기라고 했다’는 진술도 했죠.”
- 미스 박이라고 부른다고요.
“장시호는 말끝마다 박 대통령을 미스 박, 미스 박 했어요. 그래서 저는 최순실 집안 사람들은 박 대통령을 꼭두각시 인형으로 생각하나, 또 박 대통령은 왜 그런 대접을 받고 사나, 생각했어요.”
- 자료를 모으면서 조마조마한 순간이 많았을 거예요. 검찰과 야당에 자료를 제공하고 조사를 받았을 때도 마음을 놓지 못했을 텐데요. 언제 ‘이제는 됐다’고 마음을 놓았나요.
“2017년 3월10일 탄핵이 결정됐을 때요. 헌법재판소 이정미 주심이 결정문을 읽는 동안 계속 탄핵이 안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가 마지막에 탄핵이 결정됐잖아요. 그때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있었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졌어요.”
- 청문회 과정에서 당찬 발언으로 주목받았는데, 알아보는 분도 많았겠어요.
“당시 회사에 있다가 택시를 타고 청문회장에 도착해 택시비를 내려고 하면 돈을 안 받겠다는 기사분들이 여럿 계셨어요. 지금도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계시기는 하는데, 제 이름은 바로 생각이 안 나시는지, ‘최순실… 맞죠?’ 하세요(웃음).”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데는 삼성이 정유라에게 지원한 말이 ‘렌트(대여)’였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렌트라면 독일에서 코어스포츠와 체결한 매니지먼트 계약서에 렌트 항목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청문회나 재판 과정에서 반대쪽 사람들로부터 공격이나 협박을 받은 적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 현실정치를 하고 싶어 한다고요.
“에이, 초등학생에게 커서 뭐 될래? 하면, 대통령 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 <노승일의 정조준>에는 고영태씨 관련 내용은 모두 빠져 있어요. 왜죠.
“책 출고 직전에 영태가 만나자고 전화를 걸어왔어요. 가족이 힘들어하니, 자기에 대한 내용을 모두 들어내달라고 했어요. 어쩔 수 없이 그러자고 했지만, 좀더 고민해보고 원본 그대로 재출간할 생각도 있어요.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인터뷰는 이튿날 새벽 전화통화로까지 이어지며 장장 8시간 동안 진행됐다. 노씨는 자기가 말한 내용을 “모두 기사에 담아달라”고 했다. 그게 한때나마 최순실에게 협력하며 살았던 시간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법적 분쟁 소지가 첨예한 일부분은 어쩔 수 없이 덜어내야 했다. 스스로 ‘대한민국 최고 꼴통’이라고 말하고 돌아서는 그의 발걸음이 힘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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