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다른 판결'에 '정치적' 낙인찍은 대법,
뒤로는 정치권과 거래 [대한민국 판사는 누구인가]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입력 2018.09.09 22:29 수정 2018.09.09 23:25
ㆍ판사는 ‘비정치적’이어야 하는가
미국 연방항소법원 판사이자 20세기 법학 논문에서 최다 인용된 법학자 리처드 포스너는 “재판은 정치적”이라고 했다. 그는 “대법관을 소수만 이해하는 학문적 자료들을 읽고 숙고해 판결을 내리는 사람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정보와 통찰을 기초로 경험이나 기질, 그 밖의 개인적 요인에 바탕을 둔 선입견이라는 필터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심을 굳힌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관이 사법자제의 입장을 취한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정치인이다. 그러나 소심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헌법과 법률에 구속돼 판단하는 법관에게 재판은 소극적인 정치과정이다. 한국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고 규정한다.
헌법, 법률과 함께 재판 기준으로 등장한 양심은 무엇일까. 세계에 유례없는 ‘법관의 양심’이라는 구절은 박정희 정부가 일본 헌법에서 가져왔다. 군사정부와 보수정부 시절 대법원은 이 조항을 입맛대로 해석해 판사들을 통제했다. 대법원과 다른 판결은 헌법 위반인 양 주장하고 ‘정치적’이라 몰아붙였다.
재판의 본질이 정치적이라 해도 판사는 어디까지 정치에 관여할 수 있을까. 정당 당원으로서 법관에 취임하는 미국이나 독일과 다르게 정치에 부정적인 한국에서 법관의 정치활동은 부작용이 클 것이란 지적이 많다. 법원 내부에서는 특정 성향을 가진 판사들의 모임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연구 성과를 나누기보다 친목단체로서 인사에 영향을 끼친다. 내부정치를 벌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판은 얼마나 정치적일 수 있으며, 판사는 얼마나 비정치적이어야 하는지 사회의 논의가 필요하다.
■ 사법은 본래 정치적이다
판결의 볼모가 된 법관의 양심 “양심, 편향된 소신 아니다”라며 임명식 때 늘 강조한 양승태 하급심 통제 수단으로 활용 ‘튀는 판결’은 용납하지 않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판사들의 판결을 불법적·위헌적으로 통제했다. 그는 이러한 통제 의중을 신임법관 임명식 연설에서 줄곧 드러냈다. 6년 재임 기간 임명식에서 빠짐없이 꺼내든 ‘법관의 양심’ 발언에 그 의중이 들어 있다. 2015년 임관식 때 발언을 보자. “법관의 양심을 개인의 독특한 신념에 터 잡은 편향된 소신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법관의 ‘양심’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직업적이고 객관적인 것이어야 (한다). 법리에 따라 올바른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앞에선 ‘양심’을 강조하면서 뒤로는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했다. ‘양승태 대법원’이나 청와대 뜻과 다르게 판결한 판사를 징계하려 했다. 이렇게 판사들을 억누르려 그가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든 것이 헌법 103조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조항이다.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하며, 이 헌법 및 법률에만 구속된다’는 일본 헌법 76조 3항을 본뜬 것이다.
세계 헌법 중 법관에게 양심을 요구한 헌법은 1947년 시행된 일본 헌법이 유일하다. 박정희 정부가 1962년 개헌 때 따라했다. 법관의 양심에 관한 이론과 설명은 모두에서 일본에서 나왔다. 양 전 대법원장이 주장하는 법관의 양심은 도쿄대 교수 댄도 시게미쓰(團藤重光) 학설을 인용해 부풀린 것이다. 댄도 교수는 1948년 펴낸 <신형사소송법 요강>에서 객관적 양심과 주관적 양심이 따로 있다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에는 댄도에 반대하는 학자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도쿄대 교수 히라노 유이치(平野龍一)이다. 그는 “양심이 둘일 수는 없다”며 ‘재판관의 양심’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말하는 양심은 일부의 주장이다.
일본에서 ‘재판관의 양심’ 논쟁은 복잡하게 전개됐고 지금도 계속된다. 문제는 법관의 양심에 관한 일부 학설을 양승태 대법원이 하급심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양승태 대법원은 유죄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급심에서는 무죄가 잇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본래 이런 과정을 거쳐 판례가 바뀌는 것이고, 따라서 대법원과 다른 판결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과 다른 하급심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 판사들을 처벌하려고도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런 대법원 판결들이 재판거래의 대상이었다.” 법관의 양심이란 무엇인지에 관한 판사들의 얘기다.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는 판사들은 재판에서 옳다고 믿는 바를 구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판례는 물론 법률이 그르다는 판단까지 나아가고 이 경우 위헌제청을 한다. 일본 법학계 여러 학자들은 “재판관의 양심은 재판관의 사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판결에는 재판관의 전인격과 세계관이 반영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재판관의 양심은 판결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은 “(과도한) 재판의 통일성과 동질성 요구는 재판관을 사법부라는 국가기구의 일원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도 비판한다.
한국 헌법 103조에서 말하는 법관의 양심도 전인격, 세계관, 사상 등과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은 물론 앞서 이용훈 대법원도 ‘튀는 판결’ ‘정치적 판결’이라는 이름을 붙여 통제하려 했다. 한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논증이 치밀하지 못하거나 근거가 부족한 판결은 비판받아야 한다. 함량 미달 판사의 잘못된 판결이 맞다. 하지만 그런 판결에 대해 기존 판례와 달라 문제라는 비판은 부당하다. 당장 과거사 관련 대법원 판결들이 위헌으로 판단되고 있다. 오히려 이에 반대했던 하급심이 옳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법관이 양심을 구현하는 이상 ‘다른 판결’은 불가피한데 이를 ‘튀는 판결’로 몰아붙여서는 안된다고 여러 판사들이 말한다.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되던 지난해 독립된 법관들의 가치관이 우러나는 재판이 필요하다는 글이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라왔다.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의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제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 법관 독립을 보장함으로써 사법부 판결의 그러한 약간의 다양성(정치적 다양성 포함)을 허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공존 번영에 기여할 것임을 우리 사회는 받아들여야 한다.” 학계 논의를 정리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정치권은 “재판이 정치란 말이냐”며 비난했다. 이 글을 쓴 오현석 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을 상대로 결자해지를 요구하며 단식하고 있었다.
헌법은 본래 정치적 타협 산물 “인간관계에 영향 주는 결정 모든 게 정치…사법도 포함”
이 무렵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언론 기고에서 재판의 정치적 성격을 설명했다. “법관에게 부여된 해석의 여지가 넓으면 넓을수록 법관에 의한 재판의 정치적 성격은 강해진다. 인간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결정을 정치라고 한다면 이런 의미에서 사법도 정치적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유명 작가인 문유석 판사도 “정치란 한정된 자원을 놓고 이해관계가 다른 세력들이 무력으로 살육 전쟁을 벌이던 것을 평화적으로 제도화한 것이고, 법원은 그 정치의 산물인 법을 적용하여 분쟁 당사자들에게 승복을 제도적으로 요구하는 곳”이라며 “원칙론과 신중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중략) 이를 맹종하는 기계적인 판단을 양산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경계하는 말로 이해한다”고 했다.
판사들은 헌법의 정치적인 성격이 재판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모든 판사에게 위헌심사권이 있다. 그리고 헌법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위헌심사를 하는 판사는 헌법이 어떠한 정치적 고려에서 나왔는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집회시위법은 야간 집회를 금지했다. 2009년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금지 조항이 사라졌다. 당초 이 조항의 위헌성을 파악해 위헌 제청한 판사가 있는데 헌법의 정치적 의미를 고민하고 결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당시 신영철 서울중앙지법원장은 집시법에 대한 헌재 판단이 나오기 전이라도 서둘러 판결을 내리라고 판사들을 독촉했다. 그가 헌법을 어겨가면서 재판에 개입한 배경에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법관으로 임명받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판사들에게는 튀는 판결이나 정치적인 판결을 말라면서도 자신은 박근혜 청와대에 접근해 대법원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 판결을 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교과서적인 판결의 정치적 성격은 억누르면서도 자신들은 정치권과 긴밀하게 교류해온 셈이다. “사회의 (부당한) 체제를 보호하고 존속시키려는 사람들이 현실 변화에 발맞춰 판례를 변경하려는 재판을 정치적이라고 비난해온 셈이다.” 어느 부장판사의 설명이다.
판사, 정치적 지향 밝혀도 되나 사회적 신뢰 크지 않은 상황 판사들, 성향 표명에 부정적
판결에 헌법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이 불가피하다면 판사가 정치적인 지향을 드러내는 것은 어떨까. 이와 관련, 미국에서는 연방법원 법관들 가운데 민주당이나 공화당 당원이 많고 주(州)법원 판사들은 당적을 가지고 판사 선거에도 출마한다. 독일에서도 재판관들이 당적을 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판사를 포함한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
서울대 헌법교수 출신인 정종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적 허용이 좋다 나쁘다고 단순히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독일 헌법재판관들은 당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평소 특정 정당 색깔이 강하면 (재판관 임명이 되지 못하고) 배제가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당적은 없지만) 거꾸로 굉장히 강한 당성을 보이면서 정권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헌재소장이나 재판관에) 한번 (도전)해 보자는 분위기다. 평면적으로 판단하기 참 어렵다”고 지난해 국회 개헌특위에서 말했다.
판사들은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도록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거나 오해받는 것조차 조심하는 현실에서 정치 성향을 표명하면 사법 기능을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중도 성향의 한 헌법재판관의 설명도 비슷하다. “나는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자는 쪽이다. 하지만 판사의 경우는 다르다. 독일이나 미국은 판사가 당적을 가져도 신뢰할 수 있는 사회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신뢰는 그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가령 최저임금을 재판하는 판사가 자유한국당 당적이라고 하면 민주노총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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