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가장자리 없는 무한한 허공

장백산-1 2018. 9. 10. 18:10

가장자리 없는 무한한 허공



[원각경 강설]


7. “선남자야, 위없는 법의 왕에겐 무한한 다라니문이 있으니 그 문의 이름을 원각(圓覺)이라 한다.


원각이라는 무한한 다라니문에서 일체의 청정한 진여와 보리, 열반과 바라밀을 흘려보내 보살을 


가르친다. 모든 여래는 본래 일으킨 인지에서 모두 청정한 깨달음의 모습을 원만히 비춤에


의지하여 영원히 무명(無明)을 끊고 비로소 올바른 불도(佛道)를 이루었다.”


善男子。無上法王有大陀羅尼門。名為圓覺。流出一切清淨真如菩提涅槃及波羅密。


教授菩薩。一切如來。本起因地。皆依圓照清淨覺相。永斷無明。方成佛道。



【강설】


“선남자야! 라는  이 한 구절을 올바로 보아야 한다.


가장자리 없는 무한한 허공에서 한 구절이 오니  無邊虛空一句來(무변허공일구래)


거북이 털과 토끼의 뿔이 하늘과 땅에 가득하네. 龜毛兎角滿乾坤(구모토각만건곤)


“선남자야!” 라는 말 소리가 일어났다 사라진 그 자리가 “무(無)”, “마삼근(麻三斤)”,


 “마른 똥 막대기”, “뜰 앞의 잣나무” 라는 말 소리가 일어났다 사라진 자리 낙처(落處)이다.


바로 지금 당장 여기 그대의 눈앞 이 순간 이 자리이다.



위없는 법의 왕은 누구인가?



위대하고 무한한 법의 왕이여!        摩訶大法王(마하대법왕)


짧지도 않고 또한 길지도 않네.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


본래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건만     本來非皁白(본래비조백)


곳에 따라서 푸르게도 누렇게도 나타나네   隨處現靑黃(수처현청황)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으면서 모든 모양과 빛깔을 드러내는 위대하고 무한한 이 법의 왕이


바로 큰 다리니문(陀羅尼門), 곧 총지(摠持), 모든 진리를 담고 있는 가르침의 문이다. 이 


텅~빈 자리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일체 현상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생멸 변화가


경험되지만, 이 텅~빈 자리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는 본래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오직 이 한 물건만 영원히 홀로 드러나 있으니   獨有一物常獨露(독유일물살독로)


이 한 물건은 흔들림 없고 고요하여 생사(생멸 변화)를 따르지 않네 湛然不隨於生死(담연불수어생사)



이 한 물건을 이름하여 원각(圓覺), 막힘이 없는 무한한 깨달음, 원만한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이다.


한 물건 원각(圓覺), 막힘이 없는 무한한 깨달음, 원만한 깨달음, 완전한 깨달음은 사람마다 누구나  


내 안에 본래 이미 완전하게 갖추고 있기에 그것을 다시 밖에서 찾아 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 


진리이다. 진리가 바로 지금 여기의 ‘나’와 분리되어서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유일무이한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결코 바로 지금 당장 여기의 ‘나’, 본래의 ‘나’를 벗어나 있지 않다. 이것이 


불이(不二), 둘이 아닌 소식이다.



당당한 무한한 도 대도(大道)여        堂堂大道(당당대도)


눈부시게 빛나서 분명하구나!          赫赫分明(혁혁분명)


대도는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져 있어  人人本具(인인본구)


누구나 원만하게 완전히 깨달아 있도다 箇箇圓成(개개원성)



이 원각(圓覺)의 다른 이름이 진여(眞如), 보리(菩提 깨달음), 해탈 열반(解脫 涅槃), 바라밀(波羅密)


여래, 부처, 법신, 근본성품이다. 석가모니부처는 부처가 되기 이전 자리인 인지(因地)에서부터 청정


한 깨달음의 모습을 원만히 비추는 것에 의지하여 영원히 무명(無明)을 끊고 불도(佛道)를 이루었다.



불도를 이루었다 하지만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원각(圓覺), 무한하고 원만하고 완전한 깨달음에 의지


하여 분별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났을 뿐 새롭게 원각(圓覺)을 얻은 것이 아니다. 불도(佛道)는 인과


(因果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물건, 인과법(因果法)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이루어 만들 수 있는 


것이거나 구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불도(佛道)가 아니다.



다만 범부(凡夫)의 분별 번뇌 망상이 사라질 뿐    但盡凡情(단진범정)


달리 별도로 성인(聖人)의 견해라고 할 것이 없다 別無聖解 (별무성해)


 


- 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