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으로 세상을 사는 법 / 정무스님
절 집안의 습이 몸에 배지 않으며 잘 이해가 안되는 절 집안의 말귀들이 있습니다.
절 집안, 불가(佛家))의 독특한 사고방식을 밑바탕에 깔고 전개되는 용어의 참 의미는
그것을 음미할 수 있는 사전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이는 마치 음악의 문외한이 모짜르트나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고 느끼는 것과
전문적인 음악가가 듣고 느끼는 것의 차이만큼이나 다른 이미지를 느끼게 합니다.
에를 들어 "사람 몸 받았을 때 노력하여 업(業)을 벗어라"는 절 집안의 전통적인 충고도
얼핏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려 버리면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지만 실로 이 충고보다
다급하기 짝이 없는 절실한 충고는 없습니다.
내가 사람이기에 사람인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만약 미물들이 생각이 있어서
사고한다고 가정하고 미물의 입장에서 사람을 보았을 때는 아마도 사람이라는 물건 자체가
불가사의한 해탈경계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석가모니부처님을 바라보는 것과 비교해서도
조금도 덜하지 않는 엄청난 불가사의한 대상이 사람입니다.
마음의 흐름이 조화로울 때 나타나는 감정의 미묘한 화음은 사람들을 한없이 너그럽고 편안하게
하지만 불같은 화가 나서 격동하는 마음은 얼마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모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음의 작용이 나와 남을 포근하게 감싸기도 하지만 반면에
업(業)을 짓고 괴롭게 하기도 하는 요물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나 깨달은 많은 조사들이 그토록 간절하게 한결같이 "사람 몸 받았을 때
업(業)을 벗어라"... 하며 당부하시는 이유는 흔히 젊은이들 보고 젊었을때... 하는 말의
의미와 대동소이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늙고나서나 죽고나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귀신이 해탈 열반 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죽어서 천상세계에 태어나더라도 천인의 업이
다하면 그만인 것이지 천상세계 거기서 해탈 열반의 기회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해탈 열반을
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인간세계 뿐입니다. 그래서 천상세계의 신들도 해탈 열반을 하려고 인간
세상으로 올려고 번호표 뽑아들고 기다린다고 합니다.
더구나 죽고나서 자신이 다시 사람으로 환생할 기회는 실로 태평양 한가운데서 눈먼 거북이가
오백년마다 수면 위로 고개를 한 번 내밀 때 구멍이 뚫린 널판지가 떠다니다가 거북이 머리가
그 널판지 구멍에 디밀 확률보다 작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지금 사람의 몸을 받아 있고 자기 주위에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까 마치 각자가
사람인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입니다.
자신이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나기 위하여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인연이 모이고
모여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가능했는가를 그 십억분의 일만이라도 안다면 사람들은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이 부처다" 라고 그토록 많은 선지식들이 말씀하시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인 자신을 그저 그렇고 그런 존재로 여기는 것은 부처를 그저 그렇게 여기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인연이 있어서 지금 여기에 당신이 있고 그 있음은 결코 오래가는 있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좋지 못한 업(業)의 인연을 끊지 않는다면 당신은
고해 바다에서 영원히 윤회할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인연의 기회는 보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법(法)의 세계, 즉 진리 세계의 냉엄함입니다. 부처조차도 어찌 할 수
없는 업의 불가사의입니다.
자신의 업은 자기가 스스로 끊어야 합니다. 부모도 형제도 자식도 부처도 조사도 내 업을
끊는데는 돕지를 못합니다. 단지 충고해 줄 수 있을 뿐입니다. 받아들어거나 거부하거나 간에
업을 짓는 것과 업을 끊는 것 그것은 자신의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새겨들을 귀를 가진 사람만이 부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정진의 길로 나갑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실로 얼마나 엄청난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의 참모습은
실체가 없어 모습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해바다도 지옥도 극락도 그것들의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태양과 지구와 우주와 시간 그리고 공간, 부처, 중생의 실체가 실로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불법(佛法)의 흐름이 있어서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현실감을 주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이 세상 이 현실세계의 실체를 분명하게 관(觀)하여 신구의 3업의 유혹을
물리치고 정도로 나아갑시다.
사람의 몸 받았을 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가 신구의(身口意) 3업의 유혹을 물리치고 정도로
나갈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미물은 알 수 없고 오직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도리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소식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처님의 소식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한없는 자비로 섭수하시는 부처님의 충고인 것입니다.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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